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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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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20)
    수필/미술 이야기 2015. 11. 6. 21:50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20)            

                  ‐ 해골도 그가 가공(加工)하면 작품이라는데-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 작품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적으려 하니, 아련한 내 추억 한 자락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밤마다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곤 하였다. 어느 날 옆 좌석에 어느 의과대학 재학 중인 이가 왔다. 그 형은 가방에서 해골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걸 책과 번갈아 살피며 신경을 공부하였다. 아주 매끈하고 윤기 흐르던 해골. 내가 한번 만져보아도 되겠냐고 했더니, 그 형은 선뜻 건네주었다. 그 해골의 내력에 관해서도 질문을 하였다. 그랬더니, 13세 여아(女兒)의 해골이며, 합법적으로 구했다고 답해 왔다. 그 형은 의대생들의 교재(?)로 해골을 고가(高價)에 공급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들자면, 해골을 삶아 살점도 모조리 긁어내었을 텐데... .

     이 글의 주인공 이야기로 돌아온다. 2007, 그는 18세기에 사망한 이의 해골을 구해, 그 해골에다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라는 작품명을 붙였다. 그 가공된 해골은 그해 무려 1억 달러(우리 돈으로 1천억 원에 해당함.)에 팔렸다니, 세상천지에 과연 그런 일이 있어도 되냐고? 그를 두고 미술평론가들은 이런저런 말을 한다. ‘아슬아슬한 경계의 현대미술 전설’, ‘현대미술계의 악동(Enfant terrible)’, ‘죽음의 예술가’, ‘죽음과 삶 사이에 줄다리기를 하는 작가’, ‘크로테스크하고 엽기적(獵奇的)인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등등. 그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은 1991년에 제작한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다. 작품명은 꽤나 길고 뭔가 있어 보이도록 빙빙 말을 돌렸는데, 실상은 박제된 대형 상어를 대형의 유리관 속에 넣어둔 것에 불과하다. 포름알데히드로 방부 처리한 대형 상어. 그러함에도 그는 위와 같이 거창하게 작품명을 붙여 전시함으로써 일약 유명화가가 된다. 그 방부 처리된 상어는 무려 11천만 원에 팔려나갔다니! 미술에 관한 한 문외한인 내가 감히 한마디 아니 할 수가 없다. 상어가 활어회 횟집 주인의 수족관에 헤엄쳐 다니면, 횟감에 지나지 않는다. 송아지 뒷다리가 푸줏간 갈코리에 걸려 있으면, 곧 팔릴 정육에 지나지 않는다. 노루가 박제 제작자의 손에 의해 원형대로 복구되어 전시되면, 한낱 박제에 지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가 최초로 그러한 작업을 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태고 적부터 우리네 인류는 그러한 작업을 하며 지내왔다. 다만, 작품명을 그이처럼 현란하게 붙이지 않았을 따름이다. , 미술에 관해 문외한인 내가 시비 아닌 시비를 걸만한 게 있다. 나는 잠시잠깐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일을 도운 적 있다. 그때 내가 접했던 법전(法典)의 문장들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쉽게 표현해도 될 것을, 어찌나 말을 빙빙 돌려놓았던지! 실제로 그 변호사와 그 사무장도 나한테 실토한 바 있다. 자기네들만 아는 말로 써야 일반인들한테 뭔가 있어 보이지 않겠냐고 했다. 그것이야말로 현학(衒學)이요, 집단이기주의다. 어디 법률가들만이 그러한가. 비평가라고 하는 양반들도 젠체하기는 마찬가지다. 말을 어찌나 빙빙 돌리는지, 그 의미를 정확히 몰라 쩔쩔맬 때가 많다. 그 또한 지적(知的) 오만함에서 비롯되었을 터. 어쨌든, 이 글 주인공은 상어 시체를 그렇게 유리관 속에다 전시해두고서, <<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란 난해한 작품명을 붙였다.

         이 글의 주인공은 대체 누굴까? 그가 바로 데미안 허스트(Demien Hirst, 1965~,영국)’이다. 현존하  는 현대화가들 가운데서 가장 부자로 알려진 설치미술가. 그는 37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의 말 가운데는 이런 게 있다.

        “나는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에 정면으로 돌파하라고 배웠다. 죽음이 그 중 하나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회는 어리석다. 죽음에 관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영원히 피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느끼는 것과 같다.”

       사실 위의 말도 결코 신비스럽거나 철학적이거나 하지 않다. 일반인들도 그러한 생각을 다들 하고 있으니까. 대신, 내가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그가 어찌하여 해골, 죽인 상어, 죽인 송아지, 죽인 돼지 등을 혐오스러우리만치 그렇게 전시할까를 알아보게 되었다. 실은, 그 거대한 동물 시신 전시도 혼자가 아닌 아이디어 스텝까지 두어 산업화한다고 한다. 하여간, 살펴보았더니, 짚이는 게 몇 가지 있었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도 미술가였단다. 꼬맹이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호기심과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자연 차원 높은 그림을 그려 이웃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숨을 거둔 어떤 늙은이의 얼굴을 쓸어안고 함께 찍은, 웃는 얼굴 사진도 있었다. 죽음은, 어린 데미안 허스트한테 주요 관심사항이었음을 알 수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시절, 영안실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꽤나 많은 시신을 목도(目睹)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가 그러한 일련의 죽음 테마 설치미술을 하기까지는 생물학· 인체학 등 모든 학문을 통달하였다고 전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 작품이 탄생했으니... . 그는 ‘Y.B.A.’ ‘Young Britsh Artists(젊은 영국 화가들)’이라 부르는 집단의 대표작가라고 한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내가 관심 있게 본 것이 몇 된 다. 수천 마리의 실제 나비  의 날개를 갖다 붙인 작품, 도트(dot) 곧 점 ()으로 실크스크린하여 꾸민 작품, 구더기가 우글대는 소의 시체, 착시 현상을 방불케 하는 정신병 치료제인 바륨(valium) 등이 그것들이다. 사실 실크스크린도트기법만은 그가 최초로 한 게 아니다. 그이보다 일찍 태어났던 미국 현대작가 리히텐슈타인도트 기법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였으니까!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도 도트 기법이었으 며, 그 작품으로 하여 한때 우리나라 화단(畵壇)에 시끌벅적했다. , 실크스크린도 앤디 워홀이 즐겨 썼던 화법(畵法)이다.

       그러한데도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요약한다.

      ‘ 사랑·삶과 죽음·종교의 주제를 다루는 작가. 아름다움과 공포, 매혹 과 혐오의 감정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작가.’

        미술에 관해 문외한인 나, 농부이며 수필작가인 나. 무식한 까닭에 오히려 이러한 글도 호기롭게 적을 수 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숲속에 들어가면 숲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 화단(畵壇)에서야 뭐 색다른 게 없을까, 뭐 새로운 시도는 없을까?’ 늘 초조히 기다릴 테지! 그러다가 어떤 화가가 전혀 기대치 않았던 기법을 !’ 터뜨리면 찬사를 보내게 될 테지! 그리하여 이른바, 엽기적인 작품을 소더비(Sothby’s) 경매에서 고액(高額)에 낙찰되지 않겠냐고?

        엄연히 수필작가로 돌아온 나. 30여년 수필창작을 해오고 있으나, 과연 변별력(辨別力) 있고, 개성 충만한 수필작품 단 한 편이라도 적었을까 고민해보게 된다. 나도 데미안 허스트처럼 어디 해골을 한번 예찬해 봐? 데미안 허스트가 그랬듯, ‘해골을 두고 작품 제목을 <<해골>>이라고 정해서는 재미가 적겠지! 작품 제목을 정하되, 적어도 118자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조선 문조(文祖)의 시호(諡號)117자로 되어 있다니, 그보다 한 자가 더 많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

       이번 글도 이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이야기’ 14화의 마지막 단락을 다 시 아래와 같이 갖다 붙이는 걸로 이 글을 매듭짓기로 한다.

       하여간, 나는 괴짜 같은 미술작가들을 여럿 보아 왔다. 또다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였던 고() 백남준 선생의 살아생전 말을 떠올릴밖에.

       “ Art is just fraud(예술은 사기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것을 그 냥하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을 쓰는 내내 도움 줬던 음악 함께 듣기

    Kurt Bestor - Stradivarius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2)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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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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