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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련(83)문장이론/문장수련(문장이론) 2017. 1. 22. 13:27
문장수련(83)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 ‘문장수련(83)’을 적기에 앞서, ‘문장수련(81)’과 ‘문장수련(82)’에 이어 다음과 같이 다시 밝혀둘 게 있다.
나는 몇 해 전에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이다. 그리고 지난 연말 ‘어버이 성경대학’을 졸업한 이다. 4년 동안 매주 목요일 한 차례씩 수녀원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일이었는데, 실은 직장관계상 격주 간격으로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마저도 농땡이를 치느라 결강한 적이 많다. 이에, 참다못한 우리의 근엄한 교수, ‘황 마리스텔라 수녀님’이 나를 따로 불러 숙제를 내었다.
“윤 요셉 형제님, 도대체 졸업을 하실 겁니까? 마지막 기회를 드릴 테니, 이번 마지막 겨울방학 동안에 성경 가운데 맘에 와 닿는 성경구절을 적으시되, 작가답게 ‘묵상 글’을 곁들여 적어 졸업식날 성전(聖殿)에 즉 하느님께 봉헌(奉獻)하세요.”
해서, 성경 구절구절을 노트에 적어대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이럴 수가?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였다는데, 이번 개정판 성경개정 작업에도 무려 26인의 전문가가 참여했다는데... .’
이 무슨 이야기냐고? 내가 익힌 ‘문장기술론(文章技術論)’의 잣대를 갖다대니, 성경 문장에 결함이 의외로 많더라는 말이다.
해서, 위험(?) 무릅쓰고 내 나름대로 발견한 부분을 앞으로 몇 차례 이 ‘문장수련’ 시리즈물에 갈라 싣고자 한다. 벌 받을 준비도 되어 있다.
한나스의 신문과 베드로의 부인
(요한복음 18장 12절~27절)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①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여서, 예수님과 함께 대사제의 안뜰에 들어갔다.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는데, 대사제와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②들어갔다. ③그때에 그 문지기 하녀가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요?” 하자, 베드로가 “나는 아니오.”하고 말하였다. 날이 추워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놓고 ④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⑤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게 무슨 말을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대사제께 그 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파야 대사제에게 보냈다.
시몬 베드로는 ⑥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도 저 사람의 ⑦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하고 물었다. 베드로는 “나는 아니오.”하고 부인하였다. 대사제의 ⑧종 가운데 하나로서, 베드로가 귀를 ⑨잘라 버린 자의 친척이 말하였다. “당신이 정원에서 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베드로가 다시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
ㅇ(문예문에서는) 일반어가 아닌 특수어(구체어)를 쓰라.
쉬어가기)
- 일반어 : 집
- 특수어 : 초가집, 슬레이트집, 기와집, 양철지붕집
- 청과시장엔 많은 과일이 쌓여 있다. (일반어)
- 청과시장엔 사과·배·귤·감 등이 쌓여 있다.(특수어)
‘②들어갔다.’와 ‘③그때에 그 문지기 하녀가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요?” ’의 호응관계에 다소 문제가 있음.
* 정황상, 베드로가 또 다른 예수님의 제자의 안내로, 문지기 하녀의 출입허가를 받고 대문을 통과한 상태임. 즉, ‘완료형’이란 뜻임. 그러한 베드로의 뒤통수에다(?) 대고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인지?
☞ 대문 안으로 막 들어서려 하였다. 그때에 그 문지기 하녀가 ~~
* 논리적인 문장이 되기 위해서 밑줄 친 부분처럼 고쳤음.
ㅇ 부적절한 표현에 관해서
‘④서서’와 ‘⑤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즉, 문맥상 ‘(앉지 않고) 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뜻임.
④서서 ☞둘러서서
⑤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베드로도 그들 사이에 서서
ㅇ부적절한 표현에 관해
⑥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 위 글의 앞부분에 이미 베드로가 경비병들 사이에 서서 불을 쬐고 있었음을 두 차례씩이나 동일어로 표현했음.
☞ 여태 그들 사이에 서서 불만 쬐고 있었다.
* 밑줄친 어휘를 삽입함으로써 베드로의 무기력함 즉 ‘하릴없음’을 실감나게 함.
ㅇ 단수와 복수를 정확히 구별하여 표현하는 문제
* 사실 우리말은 단수와 복수의 개념은 명확치 않으나...
⑦제자 ☞제자들
⑧종 ☞종들
ㅇ보조용언(보조동사)은 본용언(본동사)에 띄어 쓰기를 원칙으로 한다. 붙여쓰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버리다’는 원래 동작 동사인데, 비유적으로 쓰이는 보조동사이기 때문에, 이들이 합쳐진 ‘잘라버리다'(동사+동사)’ 꼴로 써야하는 경우 있음.
⑨잘라 버린 ☞잘라버린
잘라 버리다 : 잘라서 (내다) 버리다.
잘라버리다 : ‘자르다’의 강조
따름과 보상(마르코복음 10장 28절~31절)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⑩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⑪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ㅇ열거나 비교를 할 적에는 일정한 질서를 지켜야 한다.
* a나 b나 c나 d나 ~~ a'나 b'나 c'나 d'나
* a, b, c, d~~ a', b', c', d'
* a와 b, c와 d, e와 d ...
예) 그 슈퍼마켓에는 사과와 배, 문어와 꽁치, 돼지고기와 소고기 모두를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
* 대체로, 이러한 구조의 열거 때에는 공통인자 내지 공통분모인 양 ‘모두가’ 또는 ‘모두’로 받는다.
⑩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⑪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 온통 두서가 없다. * '상관개념'과 '상대개념'에 관한 사항도 포함됨. * 성격 같은 어휘로 그룹화해야 함.
* 상관개념 :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선생과 제자, 학교와 학생. 한 개념의 내포가 다른 개념의 내포를 필연적으로 예상하는 개념.
* '상대개념' : 다른 어느 개념과 관계가 비교적 깊어서 그것과의 대조, 비교를 통하여 그 의의가 분명해지는 개념. 예) 하늘과 땅, 낮과 밤, 임금과 국민.
☞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자매, 아들과 딸, 토지와 집을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종속절 다음의 쉼표 삽입!)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자매, 아들과 딸, 토지와 집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 이미 한번 갖췄던 순서대로 어순(語順)을 정한다.
* 사람이 물건보다 중한 것이고, 사람도 어른부터 아이 순으로! (長幼有序!)
버림과 따름 (루카 14장 25절~ 35절)
ⓐ(제1단락)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⑫“누구든지 나에게 ⑬오려면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마저 ⑭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제2단락)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할 것이다.
ⓒ(제3단락)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다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제 4단락)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ㅇ 일찍이 ‘윌리엄 와트’는 ‘좋은 글 12개 척도’를 제시한 바 있다. 그 가운데에는 ‘강조성’, ‘일관성’, ‘통일성’, ‘충실성’, ‘성실성’, ‘자연스러움’ 등이 들어 있다. 본인이 위 ‘버림과 따름’을, 독자들께서 알아보기 쉽게 ‘ⓐ(제1단락)’, ‘ⓑ(제2단락)’, ‘ⓒ(제3단락)’, ‘ⓓ(제 4단락)’으로 구분 표시해 두었다.
우선, 산문에서 단락이 갖춰야 할 덕목(?)부터 설명해야겠다. 단락 내에서는 중심사상이 있어야 하고, 여타 문장들은 그 중심사상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어야 한다.
단락마다 중심내용을 살펴보면,
-제 1단락 : 다 버리고 제 심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오라.
-제2단락 : 경비가 있는지 사전 계산하라.
-제3단락 : 적과 맞설 수 있는지 사전 검토하라.
-제4단락 : 제1단락~ 제3단락 내용을 요약하는 단락.
* 바로 이 점(위와 같이 끊어 분석한 점)이 위 본문의 결정적 흠결이다. 제2단락의 중심사상과 제3단락의 중심사상은 관련성이 매우 적다. 잡다한 세속적 욕망을 다 버리고, 오로지 예수님 당신의 뜻만 따르라는 가르침인 모양이나... . 다시 말해, 제2단락과 제 3단락에 각각 에피소드(삽화)는 ‘버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 위와 같은 산문을 두고, ‘엉터리글’이라고 한다. 논조가 한결같아야 한다. 삼베결이면 끝까지 삼베결, 비단결이면 끝까지 비단결!
* 위와 같이 바람이 숭숭 드나들 만치 엉성한 글을 짓는 이유 : 글쓴이의 사고가 정리정돈 되지 않음에 기인함.
* 전체 단락과 전체 문장이 중심사상에 수렴되어야 한다.
참고)
‘윌리엄 와트’의 ‘좋은 글 12개 척도’
1. 충실성
2. 방법과 기교
3. 정확성
4. 정직성
5. 성실성
6. 경제성
7. 명료성
8. 일관성
9. 완결성
10. 독창성
11. 타당성
12. 자연스러움
위 루카복음 ‘버림과 따름’은 위 척도 ‘일관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관성(consistency)란, 글의 시점(視點),난해도, 형식의 요건- 어조, 문체, 내용 등이 일률적인 것을 뜻한다. 특히, ‘버림과 따름’은 내용의 일관성이 없다.
* ‘일관성(consistency)’에 관한 ‘맥크리먼’의 정의
“일관성이란, 충실한 결합을 뜻한다. 단락은 문장끼리 빈틈없이 짜이거나 서로간 자연스러이 결합되어 있을 때 일관성이 있다. 독자는 문장을 쉬이 차례로 읽어나갈 수 있고,단락을 독립된 문장의 혼집(混集)이 아닌, 하나의 통일된 덩어리로서 파악한다.”
* ‘통일성’에 관한 ‘리드’의 말
“ 단락은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통일성은 단 하나의 화제(topic)만 논함으로써 달성된다.”
ㅇ‘㉮이와 같이~~’로 도출하기 위해서 제1단락, 제2단락, 제3단락이 쓰였다면, 4개 단락이 서로 ‘긴밀한 결합’이라고 볼 수 있을 터인데, 실상은 그러하지 못하다.
ㅇ기타 지적사항
㉠심지어 자기 목숨마저 ⑭미워하지 않으면 : 분명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더러 ‘자기 목숨조차 미워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터.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 너희는 심지어 자기 목숨조차 아깝게 여기지 말고 초개(草芥)처럼 버릴 줄 알아야 나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자기 목숨조차 미워하라니 말이 될 법?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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