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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에 관해
이제야 온 세상이 잠잠해졌다. 지난 오월 십일, 선 거가 끝나자마자,나도 지지했던 새로운 인물이 제 19 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곧바로 취임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그 많은 인사들과, 그 많은 그들 추종 세력들. 그들은 서로 치고받고 헐뜯고 하면서 유권자들을, 아니 온 국민을 한 동안 헷갈리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구무(구멍)에 든 뱀이 짧은지 긴지는 재어봐야 안다.’고들 하지만, 취임 초 새 대통령의 행보는 기대치 이상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말로, 그분이 우리가 학수고대했던 ‘큰 바위 얼굴’이길... .
문득,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큰 바위 얼굴>이란 작품이 떠오른다. 인터넷을 통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읽어보는 ‘너대니얼 호손 (Nathaniel Hawthorne)’의 작품.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도 기억 환기를 돕고자 겅중겅중 그 단편소설 구절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어느 날 오후 해질 무렵,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자기네 오막살이집 문 앞에 앉아서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큰 바위 얼굴은 여러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눈만 뜨면, 햇빛에 비치어 그 모양이 뚜렷하게 보였다.
대체 그 큰 바위 얼굴은 무엇일까? (중략)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모두가 그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일종의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그 위대한 자연 현상에 대하여 유달리 감격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중략)
이곳 아이들이 그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자라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그 얼굴은 생김생김이 숭고하고 웅장하면서도 표정은 다정스러워, 마치 그 애정 속에 온 인류를 포옹하고도 남을 것만 같기 때문이었다. (중략) 우리가 아까 이야기를 시작한 거와 같이, 어머니와 어린 소년은 오막살이집 문 앞에 앉아서,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어니스트’였다.
“어머니!” 하고 아이는 말하였다.
그 때, 그 타이탄과 같은 얼굴은 그에게 미소(微笑)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저 큰 바위 얼굴이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렇게 친절해 보이니까, 목소리도 매우 듣기 좋겠지요? 만약에 내가 저런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정말 그를 끔찍이 좋아할 거예요.”
“만약에 옛날 사람들의 예언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언제고 저것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예언인데요, 어머니? 어서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중략)
“어머니! 어머니!” 어니스트는 손뼉을 치며 외쳤다.
“ 내가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 보았으면…….”
(중략)
그 뒤, 어니스트는 어머니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언제나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볼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그가 출생한 그 오막살이집에서 어린 시절을 지내는 동안, 늘 어머니 말씀에 순 종(順從)하였고, 어머니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그의 조그마한 손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 드렸다. 이리하여 행복스러운, 그러나 가끔 명상을 하는 이 어린아이는 점점 온순하고 겸손한 소년이 되어 갔다. 밭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햇볕에 검게 그을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유명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소년들보다 더 총명한 빛이 떠올랐다.
어니스트에게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 다만 하나의 선생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 큰 바위 얼굴이었다. 어니스트는 하루의 일이 끝나면, 몇 시간이고 그 바위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큰 얼굴이 자기를 알아보고, 자기를 격려하는 친절한 미소를 보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중략)
어니스트는 예언의 인물이 드디어 그가 태어난 고향에 나타났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몹시 설레었다. 그의 어린 마음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개더골드’가 곧 자선의 천사가 되어, 큰 바위 얼굴의 미소와 같 이 너그럽고 자비롭게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돌보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위대한 개더골드 씨가 오셨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길모퉁이를 속력(速力)을 내어 달렸다. 차 속에서 창밖으로 조금 내민 것은 조그마한 늙은이의 얼굴이었다. 그의 피부는 마치 자기 자신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빚어 만든 것 같은 누른빛이었다. 이마는 좁고, 작고 매서운 눈가에는 수많은 잔주름이 잡혔으며, 얇은 입술은 꼭 다물려 더욱더 얇게 보였다.(중략)
길가에는 때마침 먼 지역으로부터 방랑해 온 늙은 거지 하나와 어린 거지들이 있었다. 이 불쌍한 거지는 마차가 지나갈 때에 손을 내밀고 슬픈 목소리로 애걸을 하였다. (중략) 동전 몇 닢을 땅 위에다 떨어뜨렸다. (중략)
세월은 흘러갔다. 어니스트도 이제는 소년이 아니다. 그는 젊은이가 되었다. 그는 그 골짜기에서 사는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일상생활에는 유달리 뚜렷한 점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도 하루의 일을 마치고 혼자 떨어져서, 그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명상을 하는 점 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중략)그들은 그 큰 바위 얼굴이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지혜를 주며, 또 그것을 생활보다 더 나은 생활이 앞으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몰랐다. 어니스트도 들 가운데에서, 또는 화롯가에서, 그리고 그가 혼자 깊이 생각하는 어느 곳에서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상과 감정이,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더 품격이 높은 것임을 몰랐다. (중략)
이 골짜기의 태생으로 여러 해 전에 군대에 들어가 수없는 격전을 겪고 난 끝에, 이제 와서는 저명한 장군이 된 사람이 있었다. 본명은 무엇인지 잘 모르나, 병영이나 전쟁터에서는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피와 천둥의 노인)’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백전의 용사도 이제는 노령과 상처로 몸이 허약해지고, 소 란한 군대생활과 오랫동안 귓속에 울려오던 북 소리며 나팔 소리에 그만 싫증이 나서, 고향에 돌아가 안식을 얻어 보려는 희망을 발표하였다. (중략) 그는 수없는 격전과 갖은 풍상에 찌든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정력이 넘쳐흐르고, 철석과 같은 의지가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선량한 지혜와 깊고 넓고 따사로운 자비심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큰 바위 얼굴은 준엄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편에는 분명히 더 온화한 빛이 있어서 그 표정을 녹이고 있었다.
“예언의 인물이 아니다.”
어니스트는 군중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홀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
또다시, 여러 해가 평온한 가운데 흘러갔다. 어니스트는 아직도 그가 태어난 골짜기에 살고 있었고, 이제는 이미 중년의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미미한 정도나마 차차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예전과 같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여전히 순박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많은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였고, 생애의 가장 좋은 시절의 태반을, 인류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해보겠다는 신성한 희망으로 보내 왔었다.
어느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전도사가 되었다. 그의 맑고 높고 순박한 사상은, 소리 없이 그의 덕행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또 그의 설교 중에서도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감명을 받고 새로운 생활을 이룩해 나가게 할 진리를 토했다. 청중은, 바로 자기네의 이웃 사람이요 친근한 벗인 어니스트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어니스트 자신은 꿈에도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개울물의 속삭임과도 같이 한결같은 힘으로, 그의 힘에서는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도 말해 보지 못한 사상이 술술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제 또다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은 얼굴이, 어떤 저명한 정치가의 넓은 어깨 위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신문에는 그것을 확인하는 많은 기사가 실렸다. 그는 ‘개더골드’ 씨나 ‘올드 불 러드 앤드 선더’ 씨와 마찬가지로, 이 골짜기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그 고장을 떠나 법률과 정치에 종사하여 왔었다. 부자의 재산과 무사의 칼 대신에, 그는 오직 한 개의 혀를 가졌을 뿐이었으나, 그것은 앞의 두 가지를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이었다. 그의 언변은 놀랄 만큼 유창하여, 그가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이든, 청중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그른 것도 옳게 보고, 정당한 것도 그르게 여기게 되었다. (중략)
이런 사실로써 이 신사는 ‘올드 스토니 피즈(늙은 바위 얼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친구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을 때, 그는 자기 고향인 이 골짜기를 방문 (訪問)하려고 출발하였다. (중략)
그러나 그 산 중턱의 얼굴을 빛나게 하며 그 육중한 화강석 물체를 정신적인 것으로 영화시키고 있는 장엄이나 위풍이나, 신과 같은 사랑의 위대한 표정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무엇인지 원래부터 결핍되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있던 것이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이 놀랄 만한 천품을 지닌 정치가의 눈시울에는 지친 우울한 빛이 깃들여 있는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어니스트는 아주 낙심한 것같이 우울하게 그 곳을 떠났다. 예언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할 의사가 없는 것같이 보였기 때문에 그는 슬펐다.
세월은 꼬리를 이어 덧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어니스트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다. 이마에는 점잖은 주름살이 잡히고, 양쪽 뺨에는 고랑이 생겼다. 그는 정말 늙은이가 되었다. 그러나 헛되이 나이만 먹은 것은 아니었다. 머리 위의 백발보다 더 많은 현명한 생각이 머릿속에 깃들여 있고, 이마와 뺨의 주름살에는 인생행로에 서 시련을 받은 슬기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니스트는 이미 무명한 존재(存在)는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쫓아다니는 명예가, 찾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그를 찾아오고야 말았고, 그의 이름은 그가 살고 있는 산골을 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어니스트가 이와 같이 늙어 가고 있을 무렵에, 인자(仁慈)하신 하느님의 섭리로 새로운 시인 한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도 역시 이 골짜기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꿈같이 그 골짝을 멀리 떠나, 일생의 태반을 도시의 잡음 속에서 아름다운 음률을 쏟아 놓고 있었다. 또 그는, 큰 바위 얼굴의 웅대한 입으로 읊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장엄한 송가로 그 바위를 찬양(讚揚)한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이 천재는 훌륭한 재능을 몸에 지니고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중략)
이 시인의 시가는 마침내 어니스트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늘 노동이 끝난 뒤에, 자기 집 문 앞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서, 그 시가들을 읽었다. 그 자리는 오랫동안 그가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사색에 잠기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기의 영혼에 강력한 충격을 주는 그 시가들을 읽고서, 그는 눈을 들어, 인자(仁慈)하게 자기를 보고 있는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 장엄한 벗이여!” 그는 큰 바위 얼굴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야말로 그대를 닮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 얼굴은 미소짓는 것 같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한편, 이 시인은 그가 그렇게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어니스트의 소문을 들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인격에 대하여 사모하는 나머지, 배우지 아니한 지혜와 그의 생활의 고아한 순수성이 일치되고 있는 이 사람을 몹시도 만나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어느 여름 아침에 기차를 타고, 며칠 후 어니스트의 집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서 내렸다. 전에 개더골드의 저택(邸宅)이었던 호텔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그는 손가방 을 든 채 어니스트의 집을 찾아가서, 거기서 일박을 청(請)하려고 생각 하였다.
문 앞에 가까이 가서, 점잖은 노인이 책을 한 손에 들고 읽다가는 그 책갈피에 손가락을 끼운 채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고 또 책을 들여다보고 하는 것을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지나가는 나그네올시다. 하룻밤 머물러 갈 수 있겠습니까?”하고 그 시인은 말을 건넸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하고, 그는 웃으면서,
“저 큰 바위 얼굴이 저렇게 다정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본 일이 없는데요.”하고 말하였다.
시인은 어니스트 옆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시인은 전에도 가장 재치 있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과 이야기해 본 일이 있었으나, 어니스트와 같이 자유자재하게 사상과 감정이 우러나오고, 소박한 말솜씨로써 위대한 진리를 매우 알기 쉽게 말하는 사람을 대하여 본 적이 없었다.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어니스트에게는, 그 큰 바위 얼굴이 몸을 앞으로 내밀고 귀를 기울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열심으로 시인의 광채 있는 눈을 들여다보았다.
“손님께서는 비범한 재주를 가지셨으니, 대체 뉘십니까?”하고 어니스트는 물었다.
시인은 어니스트가 읽고 있던 책을 가리키며, “당신께서는 이 책을 읽으셨지요? 그러면, 저를 아실 것입니다. 제가 바로 이 책을 지은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니스트는 다시 한 번 전보다 더 열심으로, 그 시인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그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고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더 손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머리를 내흔들며 한숨을 내뿜는다.
“왜 슬퍼하십니까?”
하고 시인은 물어 보았다.
“저는 일생 동안, 예언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시를 읽을 적에, 이 시를 쓴 분이야말로 그 예언을 실현시켜 줄 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시인은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띠면서 말하기를,
“주인께서는 저에게서 저 큰 바위얼굴과 흡사한 점을 찾기를 원하셨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지금 보니 개더골드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나, ‘올드 스토니 피즈’와 마찬가지로, 저에게 대하여서도 실망을 했단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 정도밖에 아니 됩니다. 저 역시 앞서 나타난 세 사람들과 같이, 당신에게 또 하나의 실망을 더하여 드렸을 뿐입니다. 정말로 부끄럽고 슬픈 이야기입니다마는, 저는 저기 있는 인자하고 장엄하게 생긴 얼굴에 비할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왜요? 여기 담긴 생각이 신성하지 않단 말씀입니까?“하고, 어니스트는 시집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시인은 ”그 시에는 신의 뜻을 전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노래의 먼 반향쯤은 들릴 것입니다. 친애하는 어니스트 씨여! 그러나 나의 생활은 나의 사상과 일치되지 못하였습니다. 나 역시 큰 꿈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만 꿈으로 그치고, 나는 빈약하고 천한 현실 속에서 살기를 택하게 되고,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때로는, 터놓고 말씀을 드리면, 나의 작품들이 자연 속에, 또는 인생 속에 그 존재를 더 확 실히 나타냈다고 하는 장엄이라든지 미라든지 선이라든지에 대하여 나 자신이 신념을 가지지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순순한 선과 진을 찾으려는 당신의 눈이 나에게서 저 큰 바위 얼굴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슬프게 대답하였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 이 어리어 있었다. 어니스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저녁 해가 질 무렵에, 오래 전부터 흔히 해 온 관례대로, 어니스트는 야외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와 시인은 아직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팔을 끼고 그 곳으로 걸어갔다. 그 곳은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구석진 곳이었다. 뒤에는 회색 절벽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많은 담쟁이덩굴들이 무성하여 울퉁불퉁한 벼랑으로부터 줄기줄기 덩굴이 내려와, 험상궂은 바위를 마치 비단 휘장처럼 덮고 있었다. 그 평지보다 약간 높게 푸른 나뭇잎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이 있으니, 그 곳은 한 사람이 들어가서 자기의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몸짓을 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어니스트는 이 천연적인 연단에 올라가서, 따뜻하고 다정한 웃음을 띠며 청중을 돌아다보았다. 그들은, 설 사람은 서고, 앉을 사람은 앉고, 기댈 사람은 기대고 하여, 저마다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서산에 기울어져 가는 해는 그들의 모습을 비춰 주고, 햇빛이 잘 통하지 않는, 고목이 울창하고 엄숙한 숲 속에 다소 명랑한 빛을 던져 주고 있었다. 또 한쪽을 바라보면, 그 큰 바위 얼굴이 예나 다름없이 유쾌하고 장엄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으로 보였다.
어니스트는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바를 청중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은 자신의 사상과 일치되어 있었으므로 힘이 있었고, 자신의 사상은 자기의 일상생활과 조화되어 있었으므로 현실성과 깊이가 있었다. 이 설교자가 하는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요, 생명의 부르짖음이었다. 그 속에는 착한 행위와 마치 윤택하고 순결한 진주가 그의 귀중한 생명수 속에 녹아 들어간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시인은, 어니스트의 인간과 품격이 자기가 쓴 어느 시보다 더 고아한 시라고 느꼈다. 그는 눈물어린 눈으로 그 존엄(尊嚴)한 사람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 그 온화하고 다정하고 사려 깊은 얼굴에 백발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야말로 예언자와 성자다운 모습이라고 혼자서 생각하였다. 저 쪽 멀리, 그러나 뚜렷이, 넘어가는 태양의 황금빛 속에 높이, 큰 바위 얼굴이 보였다. 그 주위를 둘러싼 흰 구름은 어니스트의 이마를 덮고 있는 백발과도 같았다. 그 광대하고 자비로운 모습은 온 세상을 포옹하는 듯하였다.
그 순간, 어니스트의 얼굴은 그가 말하려던 생각에 일치되어, 자비심이 섞인 장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시인은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팔을 높이 들고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 씨야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니스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안목 있는 시인의 말이 사실인 것을 알았다.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할 말을 다 마친 어니스트는 시인의 팔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직도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 같은 용모를 가지고 쉬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었다. >
사실 내가 더 적을 이야기도 없어져 버린 듯하다. 작품 속 어니스트가 말과 몸가짐과 행동으로 보여준 진실성 내지 진정성. 마치 나이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예수님께서 그 많은 군중 앞에서 설교하던 모습도 연상되고... .
여태 미뤄뒀으나, 이 글의 제재인 ‘깜냥’에 관해 몇 마디 하고 글을 맺을까 보다. ‘깜냥’은, ‘어떤 일을 가늠해 보아 해낼 만한 능력’을 일컫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능력’으로 바꾸어 말 할 수 있는 어휘이다. 흔히 ‘깜도 아니 되는 주제에... .’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 바로 이 말 ‘깜냥’에서 비롯된 말인 듯. 그러한데 우리 둘레에는 그 ‘그릇 됨’ 은 ‘종지’에 불과하면서 과분하게 ‘대접’이나 ‘양푼’에 담을 양만큼 욕심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반대로, 그 풍채(風采)로는 ‘범털’이면서도 하는 짓이 한낱 ‘좀팽이’인 이들도 있다. 이러한 이들을 두고서, ‘고기값’ 제대로 못한다거나 덩치값 제대로 못한다거나 한다. 사실 선거철만 되면, 자기가 대통령이 아니 되면 혹은 국회의원이 아니 되면, 나라가 쫄딱 망할 듯이 열변을 토하는 입후자들이 생겨났음을. 또, 어찌어찌 해서 ‘궁민(窮民)’혹은 ‘우민(愚民)’으로부터 표를 얻어 뽑힌 이후에는 애민(愛民)은커녕 사욕(私慾)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일이 어디 한 두 번 있었던가.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깜냥’에 관해 아주 귀중한 말을 남겼다. 바로“너 자신을 알라.”가 그것이다.
이 즈음에서 나는 감히 말한다.
“모름지기, 위정자들은 애민(愛民)을 기본으로 삼을 일이며, 고용주들은 피고용인들에 대한 자애로움을 기본으로 삼을 일이며... 작가는 특히 나와 같은 수필작가는 철저히 생활을 기본으로 삼을 일이며... 요컨대, 깜냥껏 살아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