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탁란(托卵)
윤근택(수필가)
정말로, 내가 해준 일은 없다. 모두 그들 스스로 태어났다.
정확히 21일 만에 차례차례 부화한 노란 병아리들. 어찌나 하는 짓이 귀여운지, 어찌나 털깃이 보드라운지, 어찌나 ‘삐약!삐약!’하는 소리가 듣기 좋은지... . 내가 기거하는 농막 방안에다 담요를 펴고, 미리 장에서 사온 한 되[升]의 좁쌀 가운데 한 줌을 첫모이로 뿌려주는 한편, 목을 축이라고 접시에다 맑은 물도 채워주었다. 요 며칠째 다섯 녀석들은 동기간(同氣間)에 서로 몸을 부비고 잠들곤 한다. 나의 ‘병아리 바라지’는 재미가 어지간하다. 특히, 앞니로 ‘톡’깨뜨려 후르르 빨아당기면 한낱 한 모금 음식에 불과했던 달걀이, 새로운 생명체로 ‘삐약!삐약!’하니 신비스럽기까지 하고.
이제부터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녀석들의 출생 비밀(?)에 관해 소상히 알려드려야겠다. 나는 지난해에 이른바 폐계(廢鷄)를 마리당 2000원에 열 마리 샀다. 그 녀석들을 닭장 안에 가두어 먹이게 되었다. 기왕지사 ‘폐계’이야기를 끌어들였으니, 그것에 관해서도 마저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양계장 주인들은 닭을 먹이되, 운신(運身)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좁은 케이지(cage) 안에 가두어 알만 빼먹는다. 그러다가 그 산란계들이 ‘산란 휴지지(休止期)’를 맞이하게 되면, 털이 빠지는 등 마련 없이 된다. 한 달가량 영양보충을 시키면 원기를 회복하여 털갈이를 하는 등 예전 모습으로 멀쩡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모이만 축낸다고 하여 즉 채산성(採算性)이 떨어진다고 하여, 그렇게 폐계업자들한테 헐값에 팔거나 아예 공짜로 준다. 사실 이러한 사정은 다들 아는 바다.
다시 내 닭장의 닭 이야기도 돌아온다. 그 동안 자연사(自然死)로, 혹은 강아지들 습격으로 인해 최근에는 장닭을 포함해서 다섯 녀석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네 녀석이 바지런히 알을 낳아주는 덕분으로, 우리 가족이 먹고도 남곤 하였다. 마침 조류독감으로 온 나라가 계란난리를 겪고 있어, 계란값도 만만치 않으니, 아내는 그렇게 모이는 계란을 가져가서 이리저리 인심도 써왔을 것은 사실.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이르렀다. 저 건너편 ‘김씨 형님네’가 오골계를 많이 키우고 있으며, 자동부화기에 의한 자가생산(自家生産)한다는 걸 알기에. 해서, 그 댁에서 쓰는 20여 만 원짜리, 40알 부화용 자동부화기를 빌리기로 약속까지 마친 상태였다. 나는 알뜰히 알을 모아나갔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부화가 아니 될세라, 종이로 된 난좌(卵座)에다 차례차례 모아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직장관계상 하루 걸러 하루씩 농장에 올라가곤 하는데, 아내가 남의 속도 모르고, 그 달걀을 야금야금 다 가져가곤 했다는 거 아닌가. 해서, 은밀한 장소에 난좌를 두고 겨우겨우 23개의 알을 모았다. 사실 내가 평소 이런저런 농사일을 벌여 아내를 성가시게 하니, 내 새로운 계획에 관해서는 말도 못 꺼냈다. 그리고는 성급한 나는, 자동부화기를 빌려다가 그 알들을 탁란하게 되었다.
잠시, 내가 빌려다 쓴 자동부화기도 소개하기로 하자. 가정용 전기를 이용하며, 그 안에 두 개의 백열전구가 달렸고, 소형 환풍기도 달렸으며, 센서에 의해 섭씨 37도~38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어미닭처럼 알을 간헐적으로 굴러주는 장치까지 곁들여져 있다. 농장주인 내가, 아니 탁란자인 내가 해준 일은, 사흘 걸러 한 번씩 그 부화기 속 접시에다 물을 채워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병아리의 부화기간이 21일이라는 점은 국민학교때부터 알고 지낸다. 그러함에도 달력에다 최초 탁란일도 표시해두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안이한 태도일 수도 있다. 그저, 때가 되면 병아리가 나오겠지 여겼다. 그러나 호기심만은 끝끝내 버리지 않았다. 드나들며 부화기 안을 들여다보곤 하였다.
엊그제 퇴근을 하여 농장으로 가서, 농막의 문을 열고 그 부화기 안을 들여다본즉, 마침내 23개의 알 가운데에서 최초로 한 녀석이 그 여린 황구(黃口)로 뚫고 나오고 있었다. 신비스런 생명의 탄생 순간이여! 나는 턱을 괴고 엎디어 밤새껏 스물셋이 차례차례 모조리 태어나길 고대했다. 하지만, 새벽녘까지 일곱 녀석만이 태어났다. 나머지는 아직 때가 덜 되었으려니 여기고 출근을 서둘러야만 했다. 그 이후 이틀, 사흘 지나도 더는 병아리가 태어나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태어난 일곱 녀석 가운데 두 녀석은 숨을 거두어 매장해주어야만 했다. 이제 최종적으로 건강히 태어나 재잘대는 병아리는 다섯. 나머지는 흔히들 말하는 ‘썩계란’이 되어버렸으니, 부화 성공률로 따져서는 실패작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번에 색다른 경험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내가 뻐꾸기류도 아니면서 탁란을 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얻었다. 그것도 빌려온 부화기로 생명체를 얻었으니! 하지만 내가 얌체족은 아니다. 내가 조류(鳥類)가 아닌 포유동물이니, 알을 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다 하여 똑 같은 조류이면서도 탁란의 습성을 지닌 뻐꾸기류의 산새들을 비난할 처지도 못된다. 다들 알다시피, 그들은 ‘붉은머리오목눈이’뿐만이 아니라 개개비나 지빠귀의 둥지도 활용한다. 여지껏 많은 이들이 그들을 얌체족이라고만 몰아세워 왔다. 실로, 남의 아픈 속사정도 모르고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는 것을.
“붉은머리오목눈이님, 저흰들 왜 둥지를 손수 틀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희 ‘뻐꾸기과(-科)’ 또는 ‘두견이과(-科)’ 새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지니고 있었던 걸요.”
이 무슨 이야기냐고? 그들 종족은 나뭇가지에 앉기가 아주 불편한 발 구조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둥지를 쉽게 틀 수가 없어서 부득이 그처럼 탁란한다는 거 아닌가.
다음은, 내가 최초 탁란일을 기록해 두지 않았더라도, 병아리 부회기간은 여축없이 21일이라는 거. 다들 아시다시피, 동물마다 나름의 임신기간을 갖고 있다. 햄스터 14일, 쥐 20일, 토끼 33일... 개 60일, 호랑이 100일, 돼지 114일... 사람 280일, 소 284일,말 330일, 범고래 420일, 아프리카코끼리 600~760일. 이 어떤 경우이든 저마다 날수를 채워야 새로운 개체가 된다는 것도 신비스럽다. 그 가운데에서 닭의 임신기간 내지 부화기간 21일도 꽤나 흥미로운 숫자다. 흔히 나쁜 머리를 지닌 이들을 ‘닭대가리’라고 빗대서 말하지만... . 부화기간 21일은, 우리네 ‘습관고치기 21일’또는 ‘습관들이기 21일’이라는 ‘마법(魔法)의 숫자’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 의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네 뇌가 습관을 각인하는 데에 21일이 걸린다고. 이른바,‘뇌간(腦幹, brain stem)’이 그 일을 맡아한다고 한다. 계란에 빗대서 말하자면, ‘(나쁜) 습관의 껍질을 깨고 허물마저 벗고, 좋은 습관으로 거듭 태어나는 데는 21일이 걸린다.’가 될 터. 한낱 한 모금 음식에 지나지 않던 달걀이 예쁜 병아리로 태어나 재잘댈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정확히 21일.
다다음은, 많은 이들이 하도 자주 써서 식상(食傷)하기까지 한 ‘줄탁동시(啐啄同時, 啐啄同时)’이긴 하지만, 나마저도 이번만은 아니 쓸 수 없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미닭이 알을 품은 지 정확히 21일째 되는 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양자(兩者)가 껍질을 쪼아야 하거늘... . 인간인 나는, 막상 이번 병아리 자동부화 때에는 이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였다. 어떤 녀석한테는 도와준답시고 시간을 늦춰 깨어주는 바람에 사산아(死産兒)가 되었다. 또 어떤 녀석한테는 도와준답시고 시간을 당겨 깨어주는 바람에 깨어난 이후 이내 비실비실 죽도록 한 예도 있다. 그래서 매장한 병아리가 여섯 마리나 된다. 이를테면, 나는 어설프게 알고서 함부로 덤벼든 조산원(助産員)이었다.
이제 내가 뻐꾸기과의 새도 아니지만, 탁란에 일부나마 성공하고 보니, 은근히 욕심이 생겨난다. 제법 근사하게 닭장을 현대식으로 짓고, 부화기 사용요령도 더 익히고... 청계(靑鷄)이니 금계(金鷄)니 ‘동촌홍’이니 하며 온갖 닭을 길러 보면 어떨까 하고서. 물론, 그러자면 모든 작물재배 집어치우고 닭 사료용 옥수수 재배만 해야 되겠지! 하지만, 아내 말마따나 생고생을 더 이상 사서 해서는 아니 되겠거니.
끝으로, 수필작가로서 한 마디만 더 보태고 글을 맺을까 보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 장르이다. 탁상맡에서 적어대는 글을 나는 늘 경멸한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적은,‘삶의 현장 글’을 늘 중시한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 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