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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수련(98)
    문장이론/문장수련(문장이론) 2017. 6. 15. 15:49

    문장수련(98)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원문 읽기)

     

    서두르지 않으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프랑스인

    -서유럽 3국 여행기(1)-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

     

     

    서유럽 여행 첫날이다. 첫 번째 목적지인 퐁텐블로 성을 향해 달리는 차창 밖에 펼쳐진 널따란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 1, 2만 평쯤 되어 보이는 평원에 초지나 밀 등이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왔다.

     

    프랑스 현지 가이드 마리나 정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지역은 구름 밑에 비가 있단다. 1년에 반 이상은 비가 내리며, 오늘 날씨도 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는 것으로 보아 우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프랑스와 한국의 다른 점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물가가 비싸고, 화장실이 유료이며, 햇볕은 따뜻한데 그늘은 춥고, 마실 물도 사먹어야 한다는 말은 선진국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의심하게 했다. 어제 저녁 호텔에서도 물 한 병 주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물이 튀겨져 바닥이 젖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기에 몸을 움츠렸었다. 아직까지 수돗물 외에 먹을 물을 살 필요 없고, 가는 곳마다 쾌적한 화장실, 어떤 호텔에서도 자유롭게 샤워할 수 있는 한국에 살고 있다는 고마움을 생각해 본 일이 없어 부끄러웠다.

     

    널따란 평원을 한참 달리다보니 울창한 숲길로 들어섰다. 루이 6세가 이곳에서 사냥을 하던 도중 많은 샘터를 발견하여 이 지역을 퐁텐블루(Fontainebleau) , 샘터지역이라 불러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프랑스 3대 궁전 중 규모가 가장 큰 퐁텐블루 성이 있으며, 그 성을 찾아가고 있다. 숲길을 한참 달려 퐁텐블루 시에 위치한 성에 도착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건만 주변에는 주차장이 보이지 않았다. 기사와 돌아올 시간을 약속하고 성으로 들어서니 넓은 백마의 광장이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루이 6세 이후 이 성을 건축하게 된 이후 왕들에 의해 증축되다가 프랑스와 1세가 도읍을 정하며 왕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타 여행사의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 반가웠다. 역대 왕들과 나폴레옹이 별궁으로 사용한 이 궁은 아기자기한 아름다움과 여러 가지 건축형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다란 회랑回廊으로 된 궁전이었다. 나폴레옹 황제가 1,000여명의 근위병과 함께 황제에서 폐위되어 이 성에서 살다가 엘바 섬으로 떠났다는 초라한 건물을 보니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퐁텐블루 성을 나와 밀레의 생가가 있는 바르비종으로 향했다. 숲과 연못, 커다란 바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르비종 마을은 19세기 초반까지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으나 19세기 중반, 화가 루소와 밀레가 살게 되면서 바르비종파의 근거지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만종이삭 줍는 사람이 떠올려진다. 교회의 종소리에 기도하는 모습과 이삭을 줍는 여인의 그림은 소박한 시골사람이었는데 이 마을 풍경이 그랬다. 많은 관광객이 오갔을 테지만, 화려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밀레의 생가도 소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프랑스 3대 궁이며,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했다. 루브르가 최초로 박물관이 된 것은 1793년으로,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긴 뒤, 초기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전시하는 소극적 의미의 미술전시관이었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수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 예술품을 매입, 선물, 약탈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모하였다. 루브르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크게 인류의 4대 문명의 시원을 나타내는 고고학 유물과 그리스도교 전례 이후의 서양 문명, 중세 예술, 르네상스 예술, 근대 미술 및 극동 지역 미술품으로 나누어진다.

     

    검은 베일을 걸친 복장의 부인이, 먼 산하를 배경으로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앉아 있는 반신상,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였다. 상체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얼굴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포즈, 두 손을 교차하여 의자의 팔걸이에 올려놓은 표현은 절묘했다. 면모에 못지않게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다. 또 배경의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스푸마토))이 구사된 아련한 산악풍경도 독특하다. 프랑스와 1세가 12천 프랑으로 구입했는데, 1911년 도난당했다가 1913년 피렌체에서 발견, 루브르로 되돌아온 사연이 있다. 모나리자 상 앞은 카메라 물결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황혼이 물들기 시작한 세느강 유람선을 탔다. 강 좌우로 펼쳐지는 황혼녘이 너무 아름다웠다. 황혼이 사라지고 어둠이 물들 즈음 에펠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에펠탑 꼭대기까지 켜진 불꽃은 황홀지경이었다. 우리 부부도 남들에게 질세라 교대하며 스마트폰 셔터를 터트렸다. 189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구조물로, 세계 박람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서도 박람회 위치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당시 파리의 예술과 문학계 명사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1909년엔 철거 약속을 했지만, 최신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이상적이라는 또 다른 이유로 위기를 모면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구스타프 에펠의 설계로 세워진 에펠탑은 높이가 320m나 되며, 네 곳의 탑승구에 관광객이 장사진을 이루어 프랑스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튿날이었다.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해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섰다. 궁전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관람객 행렬이 수백은 될 성 싶었다. 이곳에서도 많은 한국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마리나 정의 잔소리가 따가웠지만, 어깨에 가로로 멘 가방을 왼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2002년 월드컵 응원 함성인 대한민국!”, 한국인의 속성인 빨리빨리!”를 외치며 다가오는 검둥이 장사꾼에게 짜잔 짠 짠 짠하고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손사래를 쳤다. 시커먼 구름이 덮였나 싶더니 빗방울이 떨어져 우산을 펴들었으나 이내 방긋 웃는다. 팔 아프게 우산을 들고 있는 처지를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나?

     

    화려함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호화스런 궁전을 짓고 이를 바탕으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루이14세가 이 궁전으로 옮겨 살게 된 것은 1682년이며,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 공작, 후작 등 작위를 하사하고, 이 궁전 안에서 살게 하여 약 4천여 명의 궁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이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말을 듣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수많은 궁인들은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에 배설물을 처리했다고 한다, 이는 베르사유 궁전만의 일은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와 조각가, 화가, 조경가, 공예가 등 다양한 거장들을 불러 모아 지은 베르사유궁전. 이곳도 회랑 형식으로 되어 있어 거울의 방, 전쟁의 방, 별궁인 그랑 다 빠르망, 오페라의 방, 트리아농 등 화려했던 프랑스 왕정시대를 읽을 수 있었다. 2층에서 창 너머로 내려다본 분수가 솟는 정원이 아름다워 나오는 길에 들러 카메라에 담았다.

     

    점심으로 프랑스 정통요리 에스까르고라는 달팽이 요리를 먹었는데, 달팽이를 잘게 썰어 이빨사이에 끼일 정도여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어제 관광했던 에펠탑에 가서 승강기를 타고 2층까지 올라가 세느강이 흐르는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어 나폴레옹이 1806년 오스텔리츠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세웠다는 개선문을 둘러봤다. 전승한 장군의 이름이 나폴레옹부터 차례로 새겨져 있었다. 용케도 이날은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제25대 대통령 취임식이 개선문에서 있어서 축하의 불꽃이 바닥화로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에 치러진 611일 총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신당 앙마르슈70%를 넘는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출구조사가 나왔다. 기존의 사회당이나 공화당에 대한 환멸을 느껴 한 사람의 의원도 없이 창당한 앙마르슈신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것이다. 30대의 젊은 대통령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프랑스를 새롭게 발전시키길 기원했다. 탄핵정국으로 새롭게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가슴에 새길 때다. 또다시 국민을 우롱한다면 지난번보다 더 큰 시련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세 곳의 궁과 밀레의 마을, 개선문, 에펠탑, 세느강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프랑스 관광을 마치고 리용 역에서 스위스 벨포트 역을 향해 고속철 TGV에 몸을 실었다.

     

    보수하는데 수년이 걸려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프랑스인들이기에 고대 왕정의 문화유산을 잘 보호해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석회암 지형으로 수려한 자연이 일품이지만 물이 좋지 않은 환경을, 석회암인 대리석을 이용한 건축문화는 동양의 화강암 문화와는 또 다른 면이 있었다. 먹는 물과 화장실 문화, 그리고 소매치기만 개선되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문장치료사 윤쌤의 문장치료)

     

     

     

     

     

     

     

    서두르지 않으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프랑스인

    -서유럽 3국 여행기(1)-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

     

     

    서유럽 여행 첫날이다. 첫 번째 목적지인 퐁텐블로 성[퐁텐블루(Fontainebleau-castle; -)’]을 향해 달리는 차창 밖에 펼쳐진 널따란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향해 달리는 차, 창밖에 펼쳐진 널따란 평원이 눈에 들어 온다. 향해 달리는 차의 차창 밖. 널따란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향해 달리는, 차창 밖에 펼쳐진 널따란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바로 뒤의 어휘를 꾸미지 않을 때에 쉼표 삽입! * 고친 이유 : 문장은 리듬을 타야 한다. 소리 내어 읽을 때에 출렁출렁하는 맛! * 그리고달리는 차창이란 말은 없다.)1, 2만 평쯤 되어 보이는 평원에 초지나 밀 등이[초지며 밀이며 ~며 모두가 *‘abc모두가(온갖)’.(두 사물은 가급적 세 사물 이상 열거! 초지, 밀밭, 옥수수밭 등이 * abc:‘선택을 나타냄.)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왔다.

     

    프랑스 현지 가이드 마리나 정이[마리나 정()’] 마이크를 잡았다. 이 지역은 구름 밑에 비가 있단다. 1년에 반 이상은 비가 내리며, 오늘 날씨도 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는 것으로 보아 우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good!) 프랑스와 한국의 다른 점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물가가 비싸, 화장실이 유료이, [good! * a, b, c, d(변화를 줌.)]햇볕은 따뜻한데 그늘은 춥고, 마실 물도 사먹어야 한다는 말은 선진국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의심하게 했다.

    [ 물가가 비싸고, 화장실이 유료라고 한다. 게다가 햇볕은 따뜻하나 그늘은 춥단다. 그리고 심지어 마실 물도 사먹어야 한단다. 이러한 점들이, 프랑스가 과연 선진국인가 의심하게까지 한다.* 고친 이유 : 열거시에는 그 구조가 똑 같아야 한다. * 대등구와 대등절의 개념임. ~~a,~~b, ~~c(대등구). a~~하고, b~~하며, c~~하다.(대등절)]어제 저녁 호텔에서도 물 한 병 주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물이 튀겨져 바닥이 젖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기에 몸을 움츠렸었다.( 나는 가이드 마리아 정의 안내 이전에 실제로 요상한 일을 겪었다. 어젯밤 호텔에서다. 마실 물 한 병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호텔 관계자는, 화장실 밖으로 물이 튀겨 바닥을 적시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해서, 용변을 보면서도 몸을 움츠려야만 했다.) 아직까지 수돗물 외에 먹을 물을 살 필요 없고, 가는 곳마다 쾌적한 화장실, 어떤 호텔에서도 자유롭게 샤워할 수 있는 한국에 살고 있다는 고마움을 생각해 본 일이 없어 부끄러웠다. (내가 잠시 두고 온 고국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수돗물 외에는 먹을 물을 따로 살 필요도 없으며, 가는 곳마다 쾌적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수 있고, 또 어느 호텔에서든 마음껏 샤워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외려(오히려) 그 동안 고마움도 모르고 지낸 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널따란 평원을 한참 달리다보니(쉼표 삽입! * 절과 절 사이에는 쉼표를 친다.) 울창한 숲길로 들어섰다. 루이 6세가 이곳에서 사냥을 하던 도중 많은 샘터를(샘터* 드러냄표(방점) 대용의 작은따옴표임. 주변 어휘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표현.) 발견하여 이 지역을 퐁텐블루(Fontainebleau)[퐁텐블루’* 위에서 이미 한 차례 프랑스어로 병기(倂記)했으므로.] , 샘터지역이라(샘터혹은 샘터지역이라] 불러지게(부르게 * 이런 종류의 어휘는 가급적 피동형을 피하라. *‘-지게꼴의 피동형 동사 사용주의! )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바로 이곳에 * 강조하고 적시(摘示)하는 어휘인바로’!] 프랑스(이미 위에서 소개한 바 있지만, 프랑스) 3대 궁전 중 규모가 가장 큰 퐁텐블루 성이(퐁텐블루캐슬) 있으며, 그 성을( 있어, 우리 일행은 그 웅장미를 보고자)그 성을 찾아가고 있다. (*여기서 단락 바꾸기! * 단락의 시간적 배열에 관한 사항임. 이 글은 걸음걸이를 따라 적은, 즉 추보식(趨步式) 구성이니... .)숲길을 한참 달려 퐁텐블루 시에 위치한 성에 도착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건만( 쉼표 삽입! 절과 절 사이에 쉼표를 친다. 쉼표 앞부분은 종속절이다.)주변에는 주차장이 보이지 않았다. 기사와 돌아올 시간을 약속하고 성으로 들어서니(쉼표 삽입! 절과 절 사이에 쉼표를 친다.) 넓은 백마의 광장이(백마의 광장* 고유명사일 테니, 드러냄표 대용의 작은따옴표 처리!)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주었다.) 루이 6이후 이 성을 건축하게 된 이후(루이 6세가 이 성을 건축한 이후,) 왕들에 의해(여러 왕들이 대를 이어) 증축되다가(증축하게 된다.) 프랑스와 1세가(그러다가 프랑스와 1) 도읍을 정하며(이 도시를 도읍으로 정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퐁텐블루캐슬은) 왕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타 여행사의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 반가웠다.(이 문장은 전체 내용에 이바지하는 바가 없으니 뺌이 낫다.) 역대 왕들과(이 성은 프랑스와 1이후에는 여러 왕들과) 나폴레옹이 별궁으로 사용한(사용했다.) 이 궁은 아기자기한 아름다움과 여러 가지 건축형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다란 회랑回廊으로 된 궁전이었다. (이 궁궐은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건축형태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미적 요소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긴 회랑(回廊)의 궁궐이었다.)나폴레옹 황제가 1,000여명의 근위병과 함께 황제에서 폐위되어 이 성에서 살다가 엘바 섬으로 떠났다는(떠났다는데... .) 초라한 건물을 보니(어떤 건물?)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퐁텐블루 성을 나와 밀레의 생가가 있는 바르비종으로(바르비종으로) 향했다. 숲과 연못, 커다란 바위들이(숲과 연못, 바위들이 * 열거시에는 그 구조가 같아야 한다. ~~a,~~b,~~c * 달리 말해, 균형잃은 병렬문은 곤란하다.)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르비종 마을은 19세기 초반까지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으나 19세기 중반, 화가 루소와 밀레(루소와 밀레’)가 살게 되면서 바르비종파의 근거지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만종이삭 줍는 사람이 떠올려진다.(떠오르게 했다.* ‘-지다꼴의 피동형은 아주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교회의 종소리에 기도하는 모습과 이삭을 줍는 여인의 그림은 소박한 시골사람이었는데(그 당시, 국어교과서에서는 그 그림을 통해 어디에선가 저녁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고, 부부는 그곳을 향해 경건히 기도를 드리는 걸로 소개하고 있었다.) 이 마을 풍경이 그랬다.(막상 이 늘그막에 찾아든 이곳 밀레의 마을풍경이 그랬다.) 많은 관광객이 오갔을 테지만, 화려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밀레의 생가도 소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프랑스 3대 궁이며,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했다. 루브르가 최초로 박물관이 된 것은 1793년으로,(1793.루브르는)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긴 뒤, 초기에는 (이곳을 미술전시관으로 삼았다.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전시하는 소극적 의미의 미술전시관이었다. 나폴레옹이(그러다가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명실상부 대형 박물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나폴레올 군대는) 수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수많은 원정전쟁을 통해) 예술품을 매입, 선물, 약탈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모하였다.(고가의 예술품들을 매입하기도 하고, 선물로 받기도 하고, 약탈도 하여 그러모음으로써 그리 된 것이다.)루브르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크게 인류의 4대 문명의 시원을 나타내는 고고학 유물과 그리스도교 전례 이후의 서양 문명, 중세 예술, 르네상스 예술, 근대 미술 및 극동 지역 미술품으로 나누어진다.

     

    검은 베일을 걸친 복장의 부인이, 먼 산하를 배경으로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앉아 있는 반신상,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였다. 상체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얼굴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포즈, 두 손을 교차하여 의자의 팔걸이에 올려놓은 표현은 절묘했다. 면모에 못지않게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다. 또 배경의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스푸마토))(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 ; Sfumato(스푸마토) 기법] 구사된 아련한 산악풍경도 독특하다. 프랑스와 1세가 12천 프랑으로 구입했는데, 1911년 도난당했다가 1913년 피렌체에서 발견, 루브르로 되돌아온 사연이 있다. 모나리자 상 앞은 카메라 물결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하 문장치료는 생략함.)

    황혼이 물들기 시작한 세느강 유람선을 탔다.(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 본문 대로 두면, 유람선에 황혼이 물들었다고 오해하기가 쉽다.) 강 좌우로 펼쳐지는 황혼녘이 너무 아름다웠다. 황혼이(우리 일행은 * 주어의 무리한 생략을 피하라. 이따금씩 주어를 살려봄이 좋다.) 사라지고 어둠이 물들 즈음 에펠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에펠탑 꼭대기까지 켜진 불꽃은 황홀지경이었다. 우리 부부도 남들에게 질세라(질세라,) 교대하며 스마트폰 셔터를 터트렸다. 1899(에펠탑은삽입!)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구조물로, 세계 박람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서도 박람회 위치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당시 파리의 예술과 문학계 명사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1909년엔 철거 약속을 했지만, 최신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이상적이라는 또 다른 이유로 위기를 모면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구스타프 에펠의 설계로 세워진 에펠탑은 높이가 320m나 되며, 네 곳의 탑승구에 관광객이 장사진을 이루어 프랑스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튿날이었다.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해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섰다. 궁전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관람객 행렬이 수백은 될 성 싶었다. 이곳에서도 많은 한국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마리나 정의 잔소리가 따가웠지만, 어깨에 가로로 멘 가방을 왼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2002년 월드컵 응원 함성인 대한민국!”, 한국인의 속성인 빨리빨리!”를 외치며 다가오는 검둥이 장사꾼에게 짜잔 짠 짠 짠하고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손사래를 쳤다. 시커먼 구름이 덮였나 싶더니 빗방울이 떨어져 우산을 펴들었으나 이내 방긋 웃는다. 팔 아프게 우산을 들고 있는 처지를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나?

     

    화려함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호화스런 궁전을 짓고 이를 바탕으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루이14세가 이 궁전으로 옮겨 살게 된 것은 1682년이며,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 공작, 후작 등 작위를 하사하고, 이 궁전 안에서 살게 하여 약 4천여 명의 궁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이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말을 듣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수많은 궁인들은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에 배설물을 처리했다고 한다, 이는 베르사유 궁전만의 일은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와 조각가, 화가, 조경가, 공예가 등 다양한 거장들을 불러 모아 지은 베르사유궁전. 이곳도 회랑 형식으로 되어 있어 거울의 방, 전쟁의 방, 별궁인 그랑 다 빠르망, 오페라의 방, 트리아농 등 화려했던 프랑스 왕정시대를 읽을 수 있었다. 2층에서 창 너머로 내려다본 분수가 솟는 정원이 아름다워 나오는 길에 들러 카메라에 담았다.

     

    점심으로 프랑스 정통요리 에스까르고라는 달팽이 요리를 먹었는데, 달팽이를 잘게 썰어 이빨사이에 끼일 정도여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어제 관광했던 에펠탑에 가서 승강기를 타고 2층까지 올라가 세느강이 흐르는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어 나폴레옹이 1806년 오스텔리츠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세웠다는 개선문을 둘러봤다. 전승한 장군의 이름이 나폴레옹부터 차례로 새겨져 있었다. 용케도 이날은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제25대 대통령 취임식이 개선문에서 있어서 축하의 불꽃이 바닥화로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에 치러진 611일 총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신당 앙마르슈70%를 넘는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출구조사가 나왔다. 기존의 사회당이나 공화당에 대한 환멸을 느껴 한 사람의 의원도 없이 창당한 앙마르슈신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것이다. 30대의 젊은 대통령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프랑스를 새롭게 발전시키길 기원했다. 탄핵정국으로 새롭게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가슴에 새길 때다. 또다시 국민을 우롱한다면 지난번보다 더 큰 시련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세 곳의 궁과 밀레의 마을, 개선문, 에펠탑, 세느강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프랑스 관광을 마치고 리용 역에서 스위스 벨포트 역을 향해 고속철 TGV에 몸을 실었다.

     

    보수하는데 수년이 걸려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프랑스인들이기에 고대 왕정의 문화유산을 잘 보호해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석회암 지형으로 수려한 자연이 일품이지만 물이 좋지 않은 환경을, 석회암인 대리석을 이용한 건축문화는 동양의 화강암 문화와는 또 다른 면이 있었다. 먹는 물과 화장실 문화, 그리고 소매치기만 개선되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2017. 06. 12.)

     

    문장치료사인 윤쌤의 충고)

     

    대체로, ‘기행수필은 문학성이 떨어진다. 왜 그럴까? ‘~~에 가서 ~~을 보고, ~~한 토속음식을 먹고등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 기행수필은 기록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예가 많다. 글쓴이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온 가슴으로 명승지의 사물을 바라보고,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케 하는 문장기술(文章技術)이 아쉽다.

    참고적으로, 문장치료사 윤쌤은 가지도 않은 외국 명승지에 관해 여러 편의 기행수필을 적은 바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다 잉카의 석공’, ‘엘 카스티요 북쪽 계단에서’, ‘못 생긴 아소카’, ‘찬드라굽타의 발등을 쳐보시기 바란다. 편편의 본인 기행수필을 읽고 나면, 기행수필을 과연 어떻게 적어야 할는지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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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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