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문장수련(115)
    문장이론/문장수련(문장이론) 2017. 7. 19. 15:30

    문장수련(115)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이번 호에도 전주에 사시는 김학(金鶴)’ 수필가께서 e메일로 보내주신 어느 분의 글을 텍스트로 삼는다.

     

     

    원문과 문장치료 후 글과 동시 읽기)

     

    눈물

     

    꽃밭정이수필문학회 김 ○○

     

     

     

     

     

     

    눈물이란 과학적으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을 분해하기 위한 생리적 현상이라고 한다.[바람직하지 못한 첫머리에 해당한다. 사전적 정의의 인용이라는 뜻이다. 글쓴이가 최근에 ~~한 일로 눈물을 많이 흘린 일이 있다. 당시 꽤나 힘들었다. 자연히 이번의 나의 이야기는 눈물이다. 눈물이란, 과학적으로 ~~ 한다.’ 1)‘문장수련(54)’ 앞부분 참조. , 전체보기는 여기를 클릭하시면 열립니다. 문장수련(54)/윤근택 ] 감정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슬픔, 감동, 아픔, 공포, 격정, 서러움 등이 닥칠 때 자신의 감정조절능력을 상실하여 눈물로 표출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감정이 무딘 사람은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은 친구들과 싸우다 코피가 터지면 울음을 터트려, 승패가 결정된다. 자신의 몸에서 흘리는 피에 스스로 투지가 약해져버린다. 그러나 투지가 강한 성인은 피를 보면 오히려 더 흥분한다. 성인과 (이 점이 성인들과)아이들의 차이점 같다.

    어른들은 내게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의지가 강해야 세파에 휘몰리지 않도록 (강해야 세파에 휘몰리지 않는다며 그렇게 * 고친 이유 : 문장 성분간 호응이 아니 되므로.)무장을 시킨 듯하다. 부엌에도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당시엔 남자들이 할 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니, 아이들이 할 일은 공부라는 의미였을 게고, (게다. , * 고친 이유 : 뒤에 나오는 사항과 별개이므로.)날것을 (어른들은 날것을)먹지 못하게 한 것도(못하게도 했는데, 그것은) 위생관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와(어디 그뿐인가. 어른들은, 할아버지와 * 고친 이유 : 문장은 변화를 주어야 한다. 계속 같은 어조로 나가면, 독자들은 지루해진다.) 겸상하니 젓가락이 자유롭지 못했다. 식사 중에 말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 밥을 먹는 일이 매우 빨라졌다. 국에 말아 훌훌 마시다시피 금방 식사를 끝냈었다. 유교적 (이러한 유교적 * 고친 이유 : 주욱 든 사례를 이제는 하나로 묶어 결론에 닿아야하니까.)관념이 강했던 분위기에서 나의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일도 능숙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말이 별로 없는 강인한 (말이 별로 없는, 강인한 * 고친 이유 : 바로 뒤의 어휘를 꾸미지 않을 때에는 쉼표를 친다.)내성을 기르며 자랐다. 요즘으로 말하면(말하면,) 창의성을 막는 교육을 받은 셈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내 감정은 막대기처럼 요지부동이었다. 결코 감성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건 결코 좋은 습성이 아니라는 것이(것을 * 고친 이유 : 목적어인 관계로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됐다. 사람은 감성적 동물인데 [다들 너무도 잘 아는 사항이지만, 사람은 감성적 동물인데, * 고친 이유: 진부하고 상식적인 사항을 적을 떼에는 독자들로 하여금 무언(無言)의 양해를 구하는 말을 앞세우면 좋다. ] 행동의 자유를 억제시키는 것은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측면이 많다. (당시 우리네 조상들이, ‘눈물 흘리지 말기를 비롯한 위 여러 금기사항들로 행동의 자유를 억제시켰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한 통제가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과 사뭇 달랐다.) 울고 웃는 자유만이 아니라 행동과 언어에도 자유분방한 자기표현이 충만해야 행복의 성취감도 높아지고 사고력도 높아진다는 현대교육의 지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가는 다들 익히 아는 사항을, 지극히 상식에 불과한 사실을 적어서는 곤란하다. )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의식의(비로소 의식의) 변화가 온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만, 세상의 변화에는 예리함이 없었다. 나는 제사 때마다 불평 아닌 불평을 하곤 했다. 조상숭배에 대한 예절이 형식에 치중되고 시대의 흐름과 접목될 문화의 부조화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집은 내가 개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에는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할아버지와는 대화가 쉽지 않았다.

    2때 미국에 사시는 이모님으로부터 비행기 표만 사서 미국에 와서 공부하라 했었는데(했었는데,)소극적 대처로 말을 못하고 때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래지향성이 없었다. 아니, 힘든 살림에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게 마음 한 구석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때가 내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을지도 모를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삶의 기회는 새로운 변화를 동반할 수도 있는데 (있는데,)중요한 시점을 움켜잡지 못한 것이다.

    그럴 때 의논해 볼 멘토(Mentor)절실히 필요했다. (했는데... . * 고친 이유 : 아쉬움이 묻어나도록 표현함.) 그런 경험이 교직에 있는 동안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내 교육의 지침이 되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꿈과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다. 그것은 내 교육의 지침이었다. * 고친 이유 : 문장은 간결하게, 뜻은 명료하게! 지름길을 두고 에움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우리 집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가훈처럼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자립심을 기르기 시작했다. 가급적이면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모아갔다. 꿈은 사관학교를 가려고 했지만 (꿈은 사관학교 진학이었지만 * 고친 이유 : 문장 성분간 호응이 아니 된다.)수학과목이 결격사유가 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교내에서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영자신문 위클리지독자를 140명이나 모집하여 900원이 넘는 아르바이트 수입을 얻었다. 신문 값은 월 15원이었다. 수업료가 월 300원일 때 일이다. 대학에 가서도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할 때까지는 학교, 도서관과 집을 오갈뿐 대학생활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군대생활에서부터 활기가 붙기 시작했고, 3학년에 복학하고서부터는 2년간 자취방을 무려 8번이나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로 학교를 마쳤다.

    내 삶에도 뜨거운 눈물을 흘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첫 번째는 어머니와 언쟁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사춘기적 반항이었지 싶다. 아버지는 내게 어머니를 이기려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뒤부터는 나의 독단적 결정이 시작 됐다. 두 번째는 대학 때의 일이다. 숙모 집에서 대학 초에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 내게는 가련하게 느껴졌다. 망가진 자존심은 가슴을 저미는 슬픔으로 서러움에 지친 뜨거운 눈물이 힘없이 흘러 내렸다. 같이 기거했던 고종형도 거처를 옮겼다. 집에 만원을 요구하면 오천 원만 보내주는 형편이었으니 집안 사정을 감안해서 어떻게든 자립하려는 굳은 결심으로 독학의 길을 걸었다.

    깨어있는 삶에서 흘리는 눈물은 슬픔이라기보다 미래의 마중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눈물은 가슴 속의 깊은 울림이 있을 때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따지고 보면,) 눈물은 눈이 흘리는 물이 아니라 가슴에서 솟구치는 것이다. 눈물은 슬픔이라기보다 내 영혼을 씻어준 것이어서 감사와 사랑에 진정 아름다운 눈물이 되 수 있을 것 같다. (돌이켜본즉, 그때마다 흘린 나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표출이기보다는 영혼을 맑게 씻어준 물이었다.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었었던 눈물!

    * 고친 이유 : 원문의 문장은 우왕좌왕이다.) 씻서양 격언에 눈물은 인생을 위로하고 땀은 인생에 보람을 준다.”고 했다. 삶에는 눈물이 필연이다. 왜냐면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웃음과 눈물은 삶의 공통된 언어이며 표정이기 때문이다. 삶의 눈물이 고뇌의 흔적이 되어 무지개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삶에서 느끼는 고귀한 희열이 아닐까?

     

    (2017. 7. 10.)

     

     

    문장치료사 윤쌤(윤근택)의 말]

     

    글쓴이는 지극히 상식에 불과한 내용을 적고 있다. 수필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예술적 수준까지 글을 끌어올려야 한다. 종종 교편생활을 한 분들의 글에서 느끼게 되는 교시적(敎示的) 문장을 또 읽게 되었다.

    요컨대, 아쉽다.

     

    * 공지사항 :

    나는 여태도록 이 문장수련시리즈물 100회분까지 공짜로 많은 독자들한테 제공해 왔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나는 농부이면서 수필가이다. 특히, 나는 농부인 관계로, 농주(農酒)와 비료와 농약이 늘 필요하다.

    이제 감히 요청하오니, 적정 문장치료비(文章治療費)’를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나.

    성심성의껏 농주값,비료값, 농약값에 보태쓸 돈을 앞으로는 부쳐주시길.

    재치있고, 용기있는 분은 혼잣말을 이렇게도 할 것이다.

    어머, 그러면 되겠네. 그분한테 나의 글도 부쳐드려 문장치료를 받으면 되겠는 걸!’

    계좌 : 703967-02-028696(우체국,윤근택)

     

    1) ‘바람직하지 못한 첫 머리에 관해

     

    문장수련(54)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수필의 성패(成敗)는 첫 문장에서 거의 결정 난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너무나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 무수한 광고와 홍보 문구 등에 지친 우리들. 시쳇말로, ‘삼빡하지않는 문장에는 둔감(鈍感)해진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수필의 첫 문장은 솔깃하여,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한다. 첫 문장을 읽고 난 뒤, 다음 문장을 도저히 읽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면? 그렇다면, 글쓴이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 그는 제대로 글을 적을 줄 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독자의 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해야 할 것이다. 마치 수수께기내지 스무고개와 같은 문장도 그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작가인 내가 늘 염두에 두고, 늘 실천하는 바이기도 하다.

    사반세기 작가의 길을 걸어온 나.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봉군(金奉郡) 박사. 그의 저서, <<문장기술론>>에서는 바람직한 첫머리(useful beginning)’바람직하지 않는 첫머리(poor beginning)’에 관해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분명히 기술(記述)해 두고 있었다.

    우선, 바람직한 첫머리다. ‘사실의 직접 진술’, ‘과제에 대한 간략한 소개’, ‘솔직성이 독자를 감동시킴’,’의문형의 적절한 제시 내지 열거로 주위를 불러일으킴’, ‘짧고 참신한 관련 어구나 사항의 인용등을 들었다.

    다음은, 바람직하지 못한 첫머리다. ‘상식에 불과한 인생론을 과장하게 꺼내 놓음’, ‘지시작문의 경우, 주어진 관해 대해 불평함’, ‘개인적 변명을 늘어놓음’, 사전적 정의의 인용 등을 들었다.

    대체로, 작금(昨今)의 수필작가라고 하는 분들의 글들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이 문장치료사한테 감동을 거의 주지 못한다. 왜일까? 내가 너무 까다로운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이 영 시원찮은 글 스승한테서 배워, 콩나물 자라듯 했거나 혹은 조장(助長; 벼나 보리 등을 채 익기도 전에 새꽤기를 잡아당긴 데서 유래함.)’되었거나 했기 때문이거나 할 것이다. 수필계의 양적 팽창도 좋기는 하지만, 보다는 질 향상을 위해 우리 모두가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그저 대가(大家)입네 폼 잡는다 하여 될 일이 아니다. 특히, 연세 잡수셨다 하여 모두 다 대가가 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번 호에는 특히 바람직하지 못한 첫머리에 초점을 맞추어 시비(是非)를 걸고자 한다. 이번 호의 텍스트도, <<월간문학>> 2013.2월호로 삼았음을 밝혀둔다.(이하 생략)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