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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천재들
윤근택(수필가)
본디부터 나의 수학실력은 엉터리였다. 국민학교 때부터 산수과목만큼은 ‘나머지 공부’를 했으니까. 도대체가 흥미롭지 않은 과목이었다. 당시 대학 예비고사, 대학 본고사에는 수학과목이 큰 비중을 차지했으니, 그마마도 세칭 따라지 국립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에 입학하여 무사히 졸업한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환갑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두 수학자의 이름만은 잊을 수 없다.
제 1화)
때는 정확히 1787년, 장소는 독일의 어느 초등학교 교실. 수학 선생님은 어느 학부형의 방문으로 인하여서였던지, 자기 개인 볼일 때문이었던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칠판에다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를 하나 내놓게 된다. 아이들이 떠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문제는, ‘1+2+3+... 98+99+100 = ?’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그 답을 구하려고 끙끙댔다. 그런데 웬일로, 선생님이 교단에 돌아왔을 때에 한 녀석이 문제풀이는 않고 유난히 떠들어댔다. 선생님은 그 녀석을 추궁했다. 그랬더니, 그 열 살짜리 꼬맹이는, 암산을 해본즉 그 답이‘5050’라고 이내 대답했다. 정답이었다.
“너, 그걸 어떻게 계산해낸 거야?”
꼬맹이는 설명했다.
1+ 2+ 3+ ... 98+ 99+100
100+ 99+ 98 ... 3+ 2+ 1
-------------------------
(101+101+101 ... 101+101+101)/2
수학 선생님인 ‘뷔트너’는 그 꼬맹이를 더 가르칠 게 없다 여기며, 차원 높은 수학책을 선물했다는데... .
그가 대체 누굴까? 그는 말년에 이러한 농담을 곧잘 했다고 한다.
“나는 말보다 계산을 먼저 배웠어.”
또 그는 이러한 말도 남겼다.
“과학의 여왕은 수학이요, 수학의 여왕은 수론이다.”
그가 바로 ‘카알 프리디리히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 1855)다. 그는 위와 같은 ‘등차수열(等差數列)’을 만들어냈다. 그는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의 가난한 석공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와 뉴튼과 함께 인류가 낳은 ‘수학의 3대 거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데, 어려서부터 불가사의할 정도로 계산에 통달하여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보통의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거의 암산으로 척척해내어 어른들을 경탄케 하였다.
그의 계산력과 관련된 일화는 더 있다. 가우스가 세 살 때의 일이다. 그의 아버지는 석공들을 거느리고 석공업을 하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임금을 지불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임금을 계산하고 있는데 가우스가 대꾸했다.
“아버지, 계산이 틀려요.”
맹랑한 꼬마 같으니라고!
그렇게 자라난 가우스가 수학이며 물리학이며 천문학이며 이룩한 업적은 대단한 걸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나머지 부분은 채워 읽으시기 바란다.
제 2화)
본인의 또 다른 수필작품 ‘지[枝]’와 ‘피보나치 수열’의 일부를 자기표절 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나뭇가지 뻗음에 관해서는 아주 기막힌(?)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새삼 떠올린다. 전공필수과목이었던 ‘수목학(樹木學)’의 앞부분 총론(叢論) ‘잎의 구조’, ‘가지의 구조’에는 아주 잔글씨로, ‘Fibonacci 수열’이란 말이 적혀 있었다. 어느 학자가 연구해본즉, 잎이 달리는 데, 가지가 뻗는 데는 ‘1,2,3,5,8,13,21... .’의 ‘피보나치 수열’ 법칙이 통하더라는 거. 거기서 말하는 ‘Fibonacci’는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 1170~1250)를 일컫는다. 그는, 외국에 상업과 관련된 업무로 파견된 관리(官吏)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을 드나들었다는 거 아닌가. 호기심 많은 그 꼬맹이는, 다달 한 쌍의 새끼토끼를 낳는 양친토끼가 연말에 가면 식구가 얼마나 불어날까 궁리하다가, 그 유명한 ’1,2,3,5,8,13,21... .‘의 피보니치수 수열을 발견했다는데... . 사실 세상만물 거의 그의 법칙대로 되어 있다니, 새삼 흥미로울밖에. 피아노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의 배열이 그러하고, 해바라기 ’씨 박힘‘이 그러하고, 암모나이트 조개의 나사선이 그러하고... . 그 피보나치 수열은 ’황금비율‘로도 달리 부른다. 심지어, 내가 즐겨 태우는 담배곽 가로 세로 비율조차도 피보나치 수열에 근거한 ’황금비율‘과 관련된다는 사실. 요컨대, 피보나치 수열 두 수의 비의 극한값은 황금비이다. 내 이야기가 제법 장황했다. 그러니 뒤늦게나마 나뭇가지 뻗음으로 다잡아 피보나치 수열을 소개해야겠다. 회초리 같이 생겨먹은 유목(幼木)을 심을 적에는 가지가 ’1‘이였지만, 그 이듬해에 가면 ’2‘가 되고, 3년차에 가면 ’3‘이 되고,4년차에 가면 ’5‘가 되고... . 그러니 나뭇가지 뻗음도 피보나치 수열에 근거한 ’황금비율‘이 적용된다는 거. 참으로 자연의 섭리가 놀랍지 아니한가.>
요컨대, 이탈리아의 피보나치는 한 쌍의 토끼가 매월 2마리의 새끼를 치면, 연말에 가서 몇 마리의 토끼로 늘어날까를, 도해(圖解)까지 해가면서 연구해 낸 것이 ‘1,2,3,5,8,13,21... .’이다. 이를 풀이하면, ‘전전항 더하기 전항은 현재항이다’가 된다.
학창시절, 지지리도 수학과목 공부를 못하였던 나.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예술가로 성장해오는 동안, 타산적이지 않다든가 세상물정을 모른다거나 셈에 어둡다거나 하는 말들이 나한테 늘 따라다녔지만, 그다지 싫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개척시대 미국의 정신을 노래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Lee Frost, 1876-1963)’의 ‘가지 않은 길’도 물론 좋은 시였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나 있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하략)’
하더라도, 내가 살아온 60여 년을 돌이켜보니,수학과목 공부를 못하였다고 하여, 크게 달라진 길을 들어섰던 것만은 아니다. 보다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로 끝내는 접어들더라는 거. 설령, 미로를 헤맸더라도, 언제고 길은 길로 이어져,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바로 그 길로 끝내는 접어들 수 있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추억은 추억으로 이어져, 행복은 더해지더라는 것을. 그러한 것들이 마치 가우스의 등차수열처럼 전전항 더하기 전항은 현재항으로 차츰 불어나는 것과도 같았다. 또, 그러한 것들이 마치 피보나치 수열처럼 전전항 더하기 전항은 현재항으로 차츰 불어나던 이치와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참말로, 나는 살아갈수록 점차 행복해진다. 피보나치수열, 그 황금비율 즉 ‘1:1.618…’로 수렴(收斂)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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