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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접[芽椄]의 계절에
    수필/신작 2017. 9. 13. 21:46

     

                                            눈접[芽椄]의 계절에

     

     

     

                                                                                     윤근택(수필가)

     

    존경하는 당신,

    구월 중순입니다. 과일나무 눈접 적기(適期)입니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복숭아 눈접을 하곤 합니다. 바탕나무[臺木] 가지의 내 키 높이마다에다 예리한 접도(椄刀)로 대문자 ‘T’꼴로 그어 껍질을 목질부(木質部)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까지 벗겨 벌리게 됩니다. 한편, 내가 원하는 종류의 신품종 복숭아 햇가지에서 튼실한 겨울눈[冬芽]을 기술적으로 도려내게 됩니다. 그걸 그 ‘T’에다 꽂아 넣고 비닐테이프로 꽁꽁 묶으면, 나의 복숭아눈접은 끝이 납니다만... . 사실은 그 접수(椄穗)에서 겨울눈을 딸 때에도 식물에 관한, 아니 좁혀 말해, 잎에 관한 기본지식이 바탕이 되어야합니다. 이따가 다시 상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떨켜[離層, abscission layer]’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나는 겨울눈을 따되, 잎자루와 잎이 달린 채로 겨울눈을 따곤 합니다. 그런 다음, 잎자루는 다치지 않게 그대로 달아두고, 잎은 반절만 남기고 잘라냅니다. 잎을 반절만 남기는 이유는, 잎의 수분 증산작용(蒸散作用)을 줄이고자함입니다. , 수분의‘in-put’보다 ‘out-put’를 줄이고자함입니다. 그 잎자루와 절반의 잎은 눈접의 활착 여부를 검증하는 표지(標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접을 한 후 일주일가량 지나면, 나는 눈접 성공여부를 금세 알 수 있게 됩니다. 손가락으로 잎자루를 가볍게건드려 그 반절의 잎이 잎자루와 함께 미련 없이 떨어져 나가면 활착이 된 것이고, 잎이 말라 있거나 잎자루가 말라비틀어져 있으면 접이 실패한 것입니다.

    내 온 정성을 다해 사모하는 당신,

    신기하지 않아요? 놀랍지 않아요? 언뜻 생각하면, 위와 반대일 거 같으니까요. , 이제 찬찬히설명하기로 하지요. 그 많은 작가들이, 그 많은 일반인들이 잘도 써먹는 떨켜의 역할과 관련된 진실인 걸요. 늦가을이 되어도, 아니 한겨울이 되어도 가지에 악착같이 붙어있는 마른 잎들을 당신께서는 본 적 있을 겁니다. 그 잎들은 대개가 후사(後嗣)를 보지 못한 잎들인 걸요. , 자신이 달렸던 가지에 어린 겨울눈을 달지 못한 잎들인 걸요. 이는 마치 그리운 자식을 못 봐서 눈을 감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어느 어버이의 영혼 같지 않아요?

    아버님, 저 왔어요. 이젠 눈을 감으세요. 편히 가세요.”

    자녀가 고인의 두 눈을 손으로 쓰다듬자 눈을 그제야 감더라는 ... .

    당신, 너무도 그리운 당신,

    잎사귀들도 그러해요. 잎들은 자신이 달렸던 가지의 겨드랑이에다 떨켜라는 세포조직을 형성해서, 홀가분하게 자연의 순리를 따라 떠나가거든요. 사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재탕(再湯)에 불과합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대학 재학시절,‘이파리라는 수필을 적어 캠퍼스내 현상문예에 당선한 바 있지요. 이파리에 이미 위 내용이 다 들어있었거든요.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에도 실려있을 텐데, 당신께서는 그 책을 읽은 적이 없을 테죠.

    해서, 지금부터는 잎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를 더 해보고자 합니다. 단풍이 드는 이유는, 기온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군요. 기온이 떨어져 엽록소가 파괴되고, 그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노란색을 띠는 색소가 드러나면 노란 단풍이 된다는 거 아닙니까? 또 마찬가지 이유로 엽록소가 파괴되고, 붉은 색을 띠게 하는 색소가 만들어지면 붉은 단풍이 된다는군요.

    내 이야기가 어느새 엽록소에까지 와 닿았네요.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대학에서 임학(임학)을 전공한 나. 나는 엽록소라는 이름보다는 클로로필(chlorophyll)’이란 이름에 더 익숙한 걸요.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 가지는 동화색소의 일종또는 식물의 녹색 색소를 일컫는 이 이름. 광합성에 필수적인 색소이지 않아요? 거슬러 국민학교 자연시간으로 올라가면, ‘광합성탄소동화작용이라고 했잖아요? 이 엽록소와 물과 탄산가스(이산화탄소)가 어우러져 화학반응을 일으켜, 녹말을 만들어낸다지 않았어요? 우리네 먹을거리가 되어주는 각종 열매며 뿌리며... . 잎들은, 아니 클로로필은 우리네 먹을거리를 한없이 만들어내는 화학공장이니 기특하지 않아요? 또 늘 푸른 빛을 띠어 우리한테 살맛나게 해주기도 하고요. 어디 그뿐이던가요? 우리가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호흡하고 그걸 재료삼아 탄수화물을 만들어내는 한편 화학반응에서 발생하는 산소를 고스란히 동물들한테 되돌려주고 있으니... . 엽록소 a, 엽록소 b, 엽록소 c... 이들은 살균작용, 악취방지, 피부질환 및 궤양 치료, 화상회복 촉진 등에도 유용하다고 했어요.

    당신, 내가 존경하는 당신,

    당신은 자가면역결핍증으로 무척 고생을 하고 계신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가슴 아파요. 그러니 숲속으로 자주 가시길 바랍니다. 산림욕(森林浴)을 자주 즐기시기를. 1937년 저 러시아 레닌그라드 대학 식물학 박사 토킨이 발견해서 명명한 파이톤사이드(phyton-cide; ’식물이 내뿜는 살인자란 뜻임.)’가 그곳에는 무궁무진하다고요. 그러니 자주 숲으로 가십시오.

    내 사랑하는 당신께서 숲으로 가시게 되면, 그곳에서 파란 나뭇잎들을 한껏 보시게 될 겁니다. 그 잎들에는 엽록체라는 화학공장이 있어요. 그 엽록체에는 위에서 소개한 엽록소뿐만 아니라 황색을 띤 크산토필(xanthophyll) 색소와 항균작용이 강한 안토시아닌(anthocyanin)색소도 다 들어있는 걸요. 그밖에도 카로티노이드(carotinoid) 색소와 리코펜(lycopene) 색소까지도 다 들어 있을 겁니다. 당신은 그곳 숲속에서, 지난 날 임학도였던 글벗, 윤근택 수필가도 다시 만나실 수 있을 걸요? 그리고 그곳에서 칭찬도 한번은 하셔야겠지요.

    그 양반, 썩 괜찮은 학문을 익혔어. 아니, 아주 유용한 학문을 익혔어. 그러니 남다른 수필가가 될 수밖에 없었어.’

    너무도 사랑하는 당신,

    그리고 이 가을에, 나뭇잎들이 시나브로 진다고 하여 우리 둘 다 서러워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한숨지을 일이 없습니다. 내가 과원(果園)에서, 이제금 눈접을 마친 복숭아 겨울눈들은, 내년 봄이면 자랑스레 새순과 새 꽃으로 분화(分化)함을 아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남을 아는 까닭입니다.

    , 당신께 편지를 쓰겠습니다. 다음까지 안녕히.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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