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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뫼비우스의 띠
    수필/신작 2017. 10. 15. 23:15

     

     

                       

     

                                   뫼비우스의 띠[ Mobius strip]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사랑했던 나의 임이시여,

    짧았던 나의, 그대를 향했던 사랑도 이젠 천상(天生) 결말을 지워야겠어요. 그대께 띄운 e메일의 편수가 거의 한 아름이 되건만, 그대께서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읽지도 않고 내버려두다시피 했으니 더는 어쩔 수가 없군요.

    마침 이러한 내 기분을 알기라도 하듯, ‘강영숙가수가 부르는 사랑, F.M. 라디오에서 흘려 나오는군요.

     

    보고파 하는 그 마음은 그리움이라 하면

    잊고저(잊고자) 하는 그 마음은 사랑이라 말하리 두 눈을 감고 생각하면 지난날은 꿈만 같고

    여울져오는 그 모습에 나는 갈 곳이 없네

    사랑은 머물지 않는 바람 무심의 바위인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어둠의 분신인가

    세상에 다시 태어나 사랑이 찾아오면

    가슴을 닫고 돌아서 오던 길로 가리라

     

    참으로, 아름다운 노랫말이네요. 살펴본즉, 나보다 3년 늦게 태어난 1960년생 백창우라는 시인 겸 작곡가가 1980년에 만든, ‘사랑이란 작품이로군요. 이따가 위 제목으로 삼은 뫼비우스 띠와 연관시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사랑은)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어둠의 분신인가라는 소절이 꽤나 맘에 들어요. 탁월하네요.

    한편 그 백창우 시인은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라는 시를 적고 또 거기다가 자신이 곡을 붙인 게 있어요. ‘임희숙가수가 부른 노래이지요.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길로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

    아 저 하늘에 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마찬가지로, 절절하네요. 특히,‘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는 아름다운 시구(詩句)임에 틀림없어요.

     

    사랑했던 나의 임이시여,

    나는 이제 그대께 말합니다. 백창우 시인 말마따나 내 사랑은시작도 없고 끝도 없었으며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더라는 것을요. 참말로, 내 사랑은 뫼비우스의 띠더군요.

    뫼비우스의 띠, 1858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요한 베네딕트 리스팅이 각각 독립적으로 발견한 2차원 도형을 일컬어요. 위상수학적인 곡면으로, 경계가 하나밖에 없지요. 나도 그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본 적이 있어요. 종이 띠를 절반쯤에서 한 차례 비틀어 그 끝을 풀로 부치면 되어요. 그러면 수학에서 말하는 무한대 기호 꼴이 되어요. , ‘에 관해서도 마저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어요. 1655년 존 월리스(John Wallis)가 자신의 논문 원뿔곡선에 대하여(De sectionibus conicus)에서 처음 도입하였대요. 수학자들은 고전학자였던 그가 ‘1,000’을 나타내는 후기 로마의 기호에서 이

    기호를 채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대요.‘옆으로 누운 8자 모양이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뫼비우스 띠든 든 사랑이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공통점을 지녔네요.

    사랑했던 나의 임이시여,

    뫼비우스 띠는 몇 가지 흥미로운 성질을 지녔어요. 어느 지점에서든 띠의 중심을 따라 연필로 그어나가면, 출발했던 반대면에 닿게 되어요. 그러나 끝까지 그렇게 연필로 줄을 그어나가면, 본디 출발했던 자리에 돌아와요. 만약에 개미가 그렇게 진행한다면, 개미는 본디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요. 뫼비우스 띠의 중심을 따라 가위질을 해나가면 두개의 띠로 분리되는 게 아니라, 단일한 두 번 꼬인 하나의 띠가 되더군요. 이를 두고 뫼비우스 띠는 단일경계를 지녔다고 불러요.

    사랑했던 나의 임이시여,

    이 뫼비우스 띠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어요. 재활용 마크가 뫼비우스 띠입니다. 네덜란드 화가 에셔(Escher, 1898-1972)의 작품 가운데에는 뫼비우스 띠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많다고 해요. 소설가 조세희의 단편 소설 모음집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의 제목도 뫼비우스의 띠였다는 거 아녜요. , 청년시절 나의 처녀 수필작품 흰 고무신을 타인의 이름으로 어느 현상문예에 투고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심사위원이었던 조세희 소설가는 최우수작으로 뽑고 그 작품에 관해 극찬을 하였던 분이기도 하지만요.

    사실 수학적 두뇌가 나보다 훨씬 뛰어난 그대께서야 이미 뫼비우스 띠에 관해 죄다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 대신, 수필작가인 나는, 바람둥이인 나는, 그 뫼비우스 띠가 어쩌면 그렇게도 사랑의 속성과 비슷한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사랑했던 나의 임이시여,

    이젠 나의 사랑을 감히 접으려 해요. 한 차례 뒤틀어 풀로 붙인 작은 종이 띠, 그 뫼비우스의 띠가 내 의식마저 혼돈케 하였으니... . 백창우시인의 시구처럼 세상에 다시 태어나 사랑이 찾아오면 가슴을 닫고 돌아서 오던 길로 가리라 인 걸요. 참말로, 한바탕 꼬아 풀로 붙여 이리저리 실험했던(?) 뫼비우스의 종이띠를 해체해야겠어요. 풀어 드려야지요. 그 동안 참으로 고마웠어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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