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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받침[花托]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대부분의 꽃받침은 꽃잎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또, 꽃받침은 꽃잎보다 아름다워서도 곤란하다. 본연의 몫대로 꽃잎을 아름답게, 처지지 않게 받쳐주는 걸로 만족해하며 수수해야 한다. 다들 너무나 잘 알다시피, 꽃의 핵심은 암술과 수술이다. 아니, 씨방이다. 꽃이파리는 암술과 수술의 연애를 돕고자 존재하는 거. 아름답게 차려입고 중신아비인 벌을 비롯한 온갖 곤충들을 혼인잔치에 초대하지 않는가. 그 모두가 씨를 맺도록 하느님께서 정교하게 설계하신 거. 그러니 꽃받침은 말 그대로 꽃을 온전히 떠받드는 게 본디 몫이다.
내 농장의 밭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쓸어안고 있는데, 그 개울가에는 감나무가 늘어서 있다. 그 나이가 스무 살은 넘었을 감나무들. 감나무들은 해마다 여름이면 감꽃을 피우고, 그 감꽃들은 땡감을 맺게 되고, 그 땡감들은 차츰 굵어, 가지마다 주렁주렁 풍성한 가을을 달게되는데... . 그 일련의 과정을, 떨어지는 걸로 기준 삼아도 그런대로 흥미롭다. 별 모양의 감꽃이 즐비하게 떨어지는 것은 열매를 맺었다는 증거다. 그러다가 땡감이 감꼭지와 함께 꽤나 떨어진다. 감나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보육능력에 부치는 땡감을 그렇게 과감히 버린다. 이를 ‘1차 생리적 낙과’라고 한다. 해서, 여느 과수와 달리, 따로 알솎기를 해 주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가 또 더러는 말라버린 감꼭지도 더는 쓸모없는 계급장인양 떨어뜨리는 예가 있다. 끝까지 남아 익은 감을 따게 되면, 으레 ‘사각 리본’ 같은 감꼭지까지 붙어있다. 그 감꼭지야말로 ‘꽃받침’으로 보아야 할 터. 그 감꼭지는, 엄밀히 따져, 참나무류·국화·민들레·해바라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총포(總苞, involucre)이겠지만, 나는 이것들을 뭉뚱그려 꽃받침으로 말하고 싶다. 감꼭지나 참나무류의 깍정이[殼斗]는 특별하다. 쟁반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참말로, 자신이 각각 떠받들고 있는 감과 도토리를 더 가치롭게, 더 소담스레 보이도록 한다. 사실 졸참나무든 갈참나무든 상수리나무든 굴참나무든 참나무류의 깍정이는 베레모(beret)처럼 생겨먹어, 그 자체가 이쁘기도 하다. 하지만, 그 깍정이는 언제고 자신이 품은 도토리를 온전하도록 보호하는 데 만족해한다. 깍정이는 깍정이일 뿐. 해서, 미련 없이 탈각(脫殼)되어 작으 베레모처럼 풀숲에 떨어진다.
늦가을 내내 하늘을 쳐다보며, 감집게로 감나무 가지마다에 달린 감을 따 내리는데, 앞으로 그것들을 깎아 감말랭이를 만들자면, 그 많은 감꼭지를 또 어떻게 다 칼로 도려낼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성당 교우(敎友)의 말이 떠오를 게 뭐람?
“요셉 형님, 요즘은 감보다 감꼭지를 찾는 이가 많다는 거 아세요? 여러 가지 다당류가 들었고, 항혈전작용을 하며,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하여 감 대신 꼭지만 찾는 이들도 생겨났거든요.”
오늘에야 인터넷 등을 통해 그 교우의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되었다. 감꼭지에는 ‘스코폴리틴(scopoletin)’이란 유용한 성분이 들어 있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위에서 언뜻 소개한 참나무류의 깍정이에도 정작 도토리보다 더 유용한 성분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글 첫머리에서 꽃받침 본연의 임무를 다소 얕잡아보았지만... . 사실 꽃받침이 있음으로써 꽃잎은 처지지 않고, 온전한 꽃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꽃잎 아래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꽃받침.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의 자식들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떠올리기에 족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 꽃받침 자체가 꽃인된 예도 있다는 거 아닌가. 맨드라미·할미꽃·자귀나무·산딸나무 등속은 꽃받침이 변해 꽃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나는 생각을 가다듬는다. 감꼭지 없는 감을 더 이상은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다. 참말로, 눈에 보이는 꽃이파리만 아름다운 게 아님을.
작가의 말)
너무 피곤해서 더는 글을 다듬을 수가 없다. 하오니 애독자 여러분께서 모자라는 부분을 마저 채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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