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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치기
    수필/신작 2017. 10. 31. 20:47

     

     

     

     

                                              꼬리치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가끔씩은, 아주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이 신비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마치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알이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의 진리를 터득했듯이.

    내가 깨달은 걸 결론부터 말하겠다.

    꼬리는 치라고 달린 것이다. 그리고 꼬리치는 여자와 꼬리치는 강아지가 더 눈에 잘 띄고 더 이쁘다.’

    사실 나부끼는 물체가 미동(微動)도 않는 물체보다 눈에 잘 띄는 법이다. 이를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인터넷을 온통 뒤졌으나, 그 답을 끝내 얻지는 못하였다. 태극기든 만국기든 만장(輓章)이든 데모꾼들의 깃발이든 바람에 나부끼면, 더 잘 보이는 게 사실이다. 여기서 잠시, 유치환(柳致環)의 시를 한 편 감상하고 다음 이야기 이어가도록 하겠다.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다시 내 이야기다. 나는 한 때 국영기업체의 총무과장을 지낸 적 있다. 어느 해 오월, 이른바 춘투(春鬪)’에 합류하겠다며, 서울 여의도 광장으로, 나를 제외한 내 휘하의 노조원들도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다 올라가고 말았다. 그러자 본부에서는 각 지점 총무과장이 책임지고 뒤따라가서 말리든지, 데려오든지 하라고 명령이 떨어졌다. 그 너른 여의도 광장, 전국 그 많은 사업장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노조원들. 깃발은 또 왜 그리도 많던지. 깃발은 또 왜 그리도 나부끼던지. 그 깃발은 군중심리를 유발하기에 딱 좋았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생길 지경이다. 또 한 번은 금강산 관광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현대그룹 예하 전자업체의 휴대전화를 많이 팔아주어, 공짜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그때 북한주민들은 공동작업장인 벼 못자리 등에 예외 없이 구호가 적힌 붉은 깃발을 꽂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군용차량 등에도 예외 없이 구호가 적힌 깃발이 꽂혀 바람에 펄럭였다. 솔직히, 위에 소개한 유치환의 시,‘깃발의 속뜻을 잘 모르겠다. 더더군다나 내가 시인이 아닌 수필가인 까닭에, 그 시인이 무얼 노래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깃발은 바람에 나부껴야 깃발이며, 그렇게 나부껴야 눈에 잘 띄고 마음도 들뜨게 한다는 것을. 하여간,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데는 깃발보다 좋은 물건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위에서 흘려놓은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일이 남았다. 위에서 말한꼬리치는 여자자못 감성적인 여성으로 바꾸어 말하고프다. 무덤덤하기가 목석(木石)같은 여성보다는 애교 있고 발랄한 여성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특히, 수필창작에 열정적이거나 내 수필작품을 유난히 좋아하는 여성이면, 그의 연령과 생김새와 상관없이 사랑스럽더라는 사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꼬리치는 강아지에 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광견병(狂犬病)에 걸린 개는 꼬리를 치지 않고 늘어뜨린다고 하였다. 으르릉대는 개도 마찬가지였다. 꼬리를 살래살래 흔드는 강아지는 귀엽기만 하였다.

    이제 내 이야기는 꼬리를 치는 문장(文章)’에까지 닿았다. ‘도미문(掉尾文)’으로 번역되는

    ‘periodic sentence’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장 끝에 이르러 비로소 글의 뜻이 완성되는 문장을 일컫는다. 문장성분상으로 말하자면, ‘주어절 또는 주어절의 술부(述部)가 문장 끝에 오는 문장을 뜻한다. 도미문의 예를 몇 개 들어보겠다.

    그는 그의 부모님과 다른 친척들이 그의 형기를 복역하는 동안 사망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논평은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정기적으로 실시되며, 재소자들은 종종 낮은 보안 범주로 격하된다.’

    그는 음주 운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난폭 운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최소한 14개월의 구류 처분을 받았다.’

    위 예문들에서 생생히 보여주듯, 도미문은 자칫 잘못하면 횡설수설이 되기 십상이고, 난해해지기도 쉽다. 잘 훈련되지 않은 이들은 도미문 짓기를 가급적 피하라고들 권유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바람에 ) 흔들리는 물체는 눈에 잘 띈다. 그 많은 수종(樹種) 가운데 미루나무, 은수원사시나무 등의 이파리가 흔들리는 데는 으뜸이다. 바람에 그렇게 팔랑댈 수가 없다. 여름날 짤랑짤랑하는 그 나뭇잎 그늘은, 여느 나무 아래보다 더 시원하게 느껴지도록 하지 않던가. 그렇게 팔랑대는 이파리를 지닌 수목이면, 볼 것 없이 사시나무속(-). ‘사시나무 떨 듯 한다.’라는 말이, 사실은 사시나무속의 나무들 잎사귀가 떠는 걸 이르는 말이다. 그 나뭇잎들 잎자루의 단면(斷面)이 둥글지 않고 편형(扁形)으로 생겨먹어 균형 잡히지 않아 그리 된다는 거. 설령, 바람이 일지 않아도 사시나무속의 이파리는 떨리기 마련이다. 사시나무속의 수목들 이파리처럼 예민한 감성을 지닌 이를 나는 좋아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이라고 했고,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나부끼더라.’라는 노랫말도 있지 않던가. 연봉홍치마와 노랑 저고리를 입고 얄랑대는, 야지랑스런 여인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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