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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내 맞교대자 아니, 내 파트너인 ‘장 ㅇ(이름이 외자인 관계로 ‘ㅇ’ 하나만 찍었음.)’ 사감(舍監)의 감각은 자못 뛰어나다. 사실 그는 교양도 풍부하거니와 연필화(鉛筆畵)도 내가 보기에는 프로로 데뷔하여도 될 만큼 잘 그린다. 게다가 ‘깔끔이’다. 그러한 그는 우리 둘이서 교대로 쓰는 사감실 컴퓨터의 바탕화면 사진도 계절에 맞추어 수시로 바꾸어 둔다. 지지난 번에는 죽순이더니, 지난 번에는 ‘천남성’이더니,이번엔 진달래다. 어디서 찍었는지는 모르겠으나,한 가지에 두 송이 꽃이 핀 것인데 마치 나래를 편 분홍나비 같다. 하여간, 그의 감각은 알아주어야 한다. 무리진 꽃이 아닌 나비 모양의 꽃 한 송이가 컴퓨터 화면을 거지반 차지하도록 해 놓기까지 하였으니… . 수필작가인 나한테 또 무슨 영감을 주려고 그리 하였으리라. 사실 진달래류(-類)의 꽃이라면, 내 ‘만돌이 농원’ 뒷산에도 지천이고,이 연수원에도 지천이다. 더욱이, 이 기숙사 앞뜰에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런데도 그러한 꽃들은 나한테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하였는데… .진달래류 꽃나무의 이름을 한바탕 늘어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낫겠다. 진달래·참꽃·두견화(杜鵑花)·철쭉·영산홍(映山紅)·자산홍(紫山紅)·수달래·연달래·개꽃·왜철쭉… . 이처럼 그 이름도 많다. 식물분류학상 ‘진달래목 진달래과’로 되어 있다. 다시 진달래과(-科)는 진달래종(-種)과 철쭉종으로 갈라진다. 다들 아시다시피, ‘종(種)’은 최소 분류단위이며, 종을 달리하면 교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달리 말해, 종의 개념은 꽃 가루 수정이나 접붙이기 따위로 이세(二世)를 생산할 수 있느냐 여부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진달래종과 철쭉종의 외형적 구분 기준은 이렇다.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나오면 진달래, 잎이 먼저 피고 꽃이 나중에 피면 철쭉. 독자님들께서도 이 정도는 교양으로 익혀두면 좋겠다. 사실 나야 수필작가이기 전에 임학도(林學徒)였다. 위에 열거한 꽃 이름 또한 진달래와 철쭉을 달리 일컫는데 불과함을 알게 되었으리라. 참꽃과 두견화는 진달래의 다른 이름이고, 나머지는 전부 철쭉의 다른 이름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같은 꽃이되, 김소월이한테 가면 영변의 진달래가 된다. 꽃 자체를 강조한 이름이다. 같은 꽃이되, 한의사나 우리네 어머니한테 가면 참꽃이다. 한약재로, 화전(花煎) 재료로, 참꽃술[-酒] 재료로 그 쓰임을 강조한 이름이다. 즉, 먹을 수 있는 꽃이란 뜻을 지녔다. 같은 꽃이되, 이야기꾼한테 가면 두견화다. 본디는 흰 꽃이었는데, 두견새가 피를 토하며 울어 그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는 전설이 깃든 이름이다. 다음은 철쭉군[-群] 소개다. 영산홍(映山紅)은 그 어휘가 뜻하는 바 ‘온 산을 빨갛게 물들인다’고 해서 생긴 말인 듯하다. 자산홍(紫山紅)은 마찬가지 이치로 온 산을 자색으로 물들인다고 해서 생긴 말인 듯하다. 그 자색이란, 새파랗게 질린 입술 모양을 일컬을 테지. 수달래는 철쭉이되,물가[水]에 자라는 내 고향 청송 주왕산의 특산 철쭉을 일컫는다. 연달래는 진달래에 이어 ‘연달아 피는 꽃’이란 뜻을 지녔고, 우리 고향 쪽에서 쓰는 정겨운 이름이다. 개꽃은 진달래가 먹을 수 있는 데 반해, 철쭉은 먹을 수 없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왜철쭉은 분재가들이 주로 쓰는 철쭉 이름이다. ‘일본-[倭-]’도 뜻하지만 ‘키 작은-‘과 ‘꽃 자잘한-[矮-]’도 뜻하는 듯싶다. 사실 일본인들은 육종(育種)에서도 우리보다 훨씬 앞선 기술을 지니고 있다. 요즘 우리가 자주 보는 철쭉류의 꽃들은 일본에서 들어온 게 많다. 문헌에도 조선조 세종 23년(1441년)에 일본에서 수입한 철쭉을 왕께 진상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진달래는 거의 몇 종류 아니 되는 데 비해, 철쭉은 그 종류가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다. 꽃 색상만 하더라도 얼마나 다채로운지 모른다. 우리 농장에도 노랗게 피는 철쭉, 겹꽃으로 피는 철쭉 등 다양하다. 진달래류의 꽃 이름 유래에 관해서는 얼추 소개를 다한 것 같다. 참참, 진달래의 꽃말은 ‘신념·청렴·절제’다. 철쭉의 꽃말은 ‘세상의 즐거움·줄기찬 번영’이다. 그리고 철쭉의 학명은 ‘로도덴드론 슈리판바키’다. ‘슈리판바키’는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이 꽃을 처음 발견하여 서방에 소개한 러시아 해군장교의 이름을 딴 거라고 한다.
이번엔 이들 두 무리의 번식능력 소개를 해야겠다. 생명력이 둘 다 강하다. 우리네는 녀석들을, 보기 좋게 하려고 회양목과 더불어 정원석 사이에다 심곤 한다. 사실 그러한 바위틈은 녀석들한테마저도 척박한 환경이다. 그러함에도 군소리 않고 자란다. 아니, 키만 멀쑥하게 자리지 않아 그 자체가 분재 꼴로 남게 된다. 지혜로운 독자님들께서는 나의 이 말을 듣게 되면, 굳이 화분에다 마사토를 담아 이들 무리 가운데 몇을 선택하여 심을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을 금세 하게 되었으리라. 아무튼, 척박한 토양에도 잘 견디는 편이다. 그 뿌리 엉킴도 특이하다. 뿌리를 뽑아보면 숫제 시꺼먼 연탄덩이 같다. 자칫, 말라버린 부리로 착각하게까지 한다. 서로 엉켜 있어 굳이 분[盆;하찌]을 뜨지 않아도 된다. 겨우내 한데다 방치했다가 심어도 만판 잘 산다. 꺾꽂이도 썩 잘 되는 꽃나무다. 여름날 장마철에 햇가지가 제법 목질화(木質化) 되었을 적에 반 뼘 내지 한 뼘씩 잘라서 흙에 묻어두면 이내 뿌리가 내린다. 그런가 하면, 휘묻이도 잘 된다. 공원길에 나섰다가 진달래류와 마주치거든, 발치에 썩은 낙엽이 쌓인 곳이라면 처진 가지를 들어보시라. 그러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뿌리가 돋아나 있을 것이다. 마침 꽃을 탐스럽게 피우는 녀석이면, 그처럼 땅에 처지고 뿌리내린 가지를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한 두 가지 꺾어다가 뜰에 심어보셔도 되겠다. 혹 공원 관리인이 나타나 구지람하거든, 그때에는 수필가 윤 아무개가 그렇게 시키더라고 하셔도 좋다. 왜 그리 하여도 되느냐고? 이쁜 꽃을, 그것도 가지 일부를 그렇게 분양받아 가서 꽃을 피워보겠다는 것은 큰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부러진 가지에서 새순이 우렁차게 나온다는 사실. 내가 찬찬히 지켜본 바 진달래류는 감나무와 마찬가지로 잠아(潛芽;潛伏芽;줄기에 숨은 눈)능력이 빼어난 나무였다. 부러진 가지에 전혀 눈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새싹이 돋더란 뜻이다. 분재를 즐기는 분이시라면,야생의 철쭉 고목(古木)을 바탕나무[臺木] 삼아 고운 철쭉의 접수(接穗)를 접해보시라. 그러면 고태미(古態美)가 나는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할 것이다. 사실 나는 여태 시도해본 적 없어,진달래와 철쭉이 서로 접이 되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아니 될 성싶다. 왜냐고? 위 두 번째 단락에서 설명하였던 ‘종(種)의 개념’과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가장 알기 쉽게, 잊지 않도록 설명을 덧보태겠다. 사람과 원숭이가 섹스를 한다고 하여 이세(二世)가 태어나는 법은 없다. 그러기에 사람과 원숭이는 같은 종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를 두고, 생물학에서는 ‘종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덤으로, 우리네가 사람을 일컬어 ‘인종(人種)’이라고도 부르는데, 바로 그것이 생물학적 용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겠다. 아무튼, 진달래류은 번식이 잘 되고, 생명력이 강한 꽃나무다.
이번엔 진달래와 관련해서 재미나는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드린 다음에 이 글 정리토록 해야겠다. 나는 어느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나와 같은 科, 같은 屬,같은 種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몇 가지 시험(?) 끝에 금세 알아본다. 가령,내가 어느 봄날 어느 공원에서 어느 분을 맨 처음 만난다면, 그 공원에 핀 진달래류의 꽃 속 수술 두 개를 뜯어 하나는 내가 갖고, 하나는 그에게 건네게 된다. 그러면 그가 시골 출신인지 도회지 출신인지 금세 알게 된다. 뭘로? 만약에 그가 그 수술 양 끝을 양손으로 잡고서 고리를 만든 후 나더러 서로 걸어 끊기 내기를 하자고 하면, 그는 볼 것 없이 시골이 고향인 사람이다. 그러지 않고 얼떨떨해 하면, 그는 그러한 추억도 없이 삭막한 도회지에서 자라난 사람인 것이고. 이 말조차도 모르는 독자님도 볼 것 없이 도시가 고향인 사람이다. 나는 그처럼 진달래 한 송이, 아니 진달래 수술 하나에도 추억이 있는, 아주 부자인 사람이라는 걸 지금 자랑하고 있다.
끝으로, 독자님 여러분, 언제 저희 ‘만돌이 농원’에 놀러 오시지 않겠습니까? 진달래 수술로 ‘코걸이 싸움’도 해보고, 참꽃화전(-花煎)을 해서 막걸리도 마셔보면 좋을 텐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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