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병목현상'에 관해수필/신작 2014. 4. 15. 09:27
어떤 ‘병목현상’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수필작가로 오랜 동안 활동해 오면서, 너무도 잘 훈련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전혀 엉뚱한 데서 모티브를 얻어 한 편의 작품을 거뜬히 적은 예가 부지기수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늘 깨어 있으며 남들과 달리, 엉뚱한 발상도 곧잘 한다는 뜻이다.오늘 새벽이었다. 잠에서 벌떡 깨어나니, 아랫목이 아닌 윗목이었으며 군불 온돌 위가 아닌 전기패널 위였다. 어제 들일을 하면서 곤드레만드레 막걸리를 마신 탓이다. 독자님들 이해를 돕고자, 설명을 약간 보태야겠다. 나는 이 농막의 온돌방식을, 절반은 군불온돌 또 절반은 전기패널로 이원화(二元化)해 두었고, 평소 군불을 지펴 방이 따듯해질 동안만 윗목 전기패널을 이용하게 되는데, 음주로 인해 어젯밤엔 그리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깨어나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만으로도 지난 밤 군불온돌에 자지 못한 아쉬움을 상쇄(相殺)하기에 족하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기에?
요컨대, 원활한 흐름 즉, ‘소통’만이 능사가 아니며, ‘병목현상’ 곧, ‘불통’이 인간한테 때로는 이로울 적도 있다.’는 사실. 독자님들이 더욱 헷갈리게시리, 아주 엉뚱한 공식(公式)부터 제시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오옴(Georg Simon Ohm, 독일,1789~1854,대장장이 아들 출신)’ = ‘볼타(Count Alessandro Volta,1745~1827, 시와 산문에 관심 두었던 문학도 출신)/ 앙페르(Andre Marie Ampere,프랑스,루소에 심취하고 뷔퐁의 <<박물지>> 등에 영향을 받았던 이,1775~1836)’. 이를 약칭하면 ‘오옴= 볼타/앙페르’ 또는 ‘Ω=V/A(사실은 ‘I’라고 쓴다.)’가 된다. 속 시원히 풀이하자면, ‘저항’은 ‘전압’에는 비례하고 ‘전류’에는 반비례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위 물리학자 ‘오옴’이 밝혀낸 이른바, ‘오옴의 법칙(Ohm’s law)’이다. 이 공식에 쓰인 오메가(Ω )는, 그리스어의 마지막 글자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 첫 자의 음(音)을 땄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초창기에는 ‘Ω’로 쓰지 않고, 우리네 농협의 돈주머니 로고처럼 도립된 ‘Ω’로 썼다고 한다. 놀랍게도, 물리학용어는 그 원리나 법칙 따위를 최초로 밝혀낸 이의 이름을 따는 예가 많다. 위 물리학 용어도 모두 위 학자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국적은 다 달랐고 출신 배경도 다 달랐으나, 그분들은 동시대를 살았으며, 물리학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겨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였으니, 심심한 경의를 표할밖에.
이제부터 내가 위에서 뚱딴지 같이 내뱉은 말, ‘원활한 흐름 즉, ‘소통’만이 능사가 아니며, ‘병목현상’ 곧, ‘불통’이 인간한테 때로는 이로울 적도 있다.’에 관해 적극 해명해(?) 나가기로 한다. 어젯밤 내가 몸을 덥히고 잔 전기패널은 ‘오옴의 법칙’을 십분 활용한 전기제품이다. 그 안에 설치된 도선(導線)은 저항체다. 전기의 흐름이 원활치 않도록 만든 것이라, 그 도선이 열 받게 하였다. 우리네가 승용차를 몰고 가는데, 좁은 길과 마주쳐 열을 받듯이. 소통이 아닌 불통을 고의로 설계해 둔 전기제품이다. 그 열선(熱線)은 숫제 벽창우(碧昌牛)같은 고집을 지녔다. 여기서 잠시. 문득 고등학교 시절,내가 ’한문’ 중간고사에서 딱 하나 틀린 문제가 떠오를 게 뭐람? ‘隘路’라는 한자에 음을 달라는 문제였다. ‘-路’는 ‘길 로’자임을 알겠는데, 도무지 ‘隘’자를 알 수가 있어야지! 뒤늦게 안 일이지만, 그것이 바로 ‘좁을 애’, ‘곤궁할 애’, ‘가득 찰 애’였다. 사실 동자(同字)로서는 ‘塧’도 있다. 아무튼,’애로’는 ‘좁은 길’을 일컫는 말이다. ‘좁은 문’과도 통하는 말이다. ‘애로사항 많다.’는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특히 군대생활 하는 동안, 후임병들이 띨띨하면, “너, 참 애로사항 많게 생겼어!”하며 힐난하곤 하였다. 이 ‘隘路’를 두고,요즘 우리네는 ‘병목현상’이라고 부르곤 한다. 병의 목이 조붓하듯 널따란 길이 어느 곳에 이르러 갑자기 좁아진 곳을 이른다. 놀랍게도, 영어에서도 같은 뜻을 지닌 말을 쓴다. 바로 ‘bottle neck’이 그것이다. 어쩌면, ‘병목현상’이란 말이 ‘bottle neck’에서 차용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내가 어젯밤 세상 모르고 따뜻하게 잘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전기패널 회사가 그 패널 속에다 저항체를 넣고, 전류의 흐름을 방해토록 하고, 전선(電線)이 적정하게 열 받도록 한 덕분이다. 그러니 원활한 소통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은가.
사실 나는 물리학의 기초분야인 저항과 전류와 전압의 관계에 관해서도 깊이 알지 못한다. 더욱이 나는 수(數) 개념에 어둡기 그지 없어, 공식(公式)이나 산식(算式) 등에는 깜깜하다. 그러나 저항 즉, 오옴은 도체의 굵기와 단면적에는 반비례하고, 도선의 길이와는 비례한다는 정도는 알고 지낸다. 위에서는 저항이 전기를 열(熱) 에너지로 바뀌는 걸 주로 설명하였으나, 종종 빛 에너지로도 변한다는 사실. 우리네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등(電燈)이 빛 에너지로 변환하는 대표적 실례다. 이 또한 전기의 흐름을 훼방시키는 저항체 덕분이다. 물론, 어느 경우든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불필요하게 전등을 켠다든가 전열기를 켠다든가 하면, 밝게 또는 따뜻하게는 지낼 수 있겠지만, 호주머니 사정은 나빠지게 된다. 이 또한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라고 우긴다면?
두서 없는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물 흐르듯 거침없이 지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참말로,소통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언뜻 생각하기에는 저항인 듯싶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하는 일도 있다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인간사회에서 저항의 대표적 사례는 ‘레지스탕스(Resistance)’ 내지 ‘레지스탕스 운동’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의식 있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나타났던 레지스탕스.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적인 빛과 온기(溫氣)를 갈망했던 저항체였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네 생명활동에도 ‘흐름 방해’가 오히려 이로울 때가 많다. 하느님은 우리네 복부(腹部)에다 길고 긴 창자를 사려 놓음으로써 소화를 오히려 충분히 하도록 하셨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설계하신 것이 음식물 흐름을 저해할 성싶으나… . 음식물의 흐름이 원활하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그러한 증세를 두고, 우리네는 ‘설사병(泄瀉病)’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 이야기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는 한국 수필계의 이단자이며 저항체다. 대가·중견·초보 불문하고, 기성수필가들의 글에서 문장이론에 합당하지 않는 문장을 이내이내 찾아낸다. 그리고는 후진들에게, “자네들은 이렇게 문장 짓자 말라.” 식으로 이론적 근거 제시와 함께 고쳐 쓴 후 세상에 확 까발려버리곤 한다. 그러니 많은 수필작가들한테 ‘열 받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위 ‘레지스탕스 운동’을 소개하면서 밝혔듯, 내 내부에도 언제고 저항의식 아니,반골(叛骨)이 도사리고 있음을 안다. 내가 전통적이거나 관습적인 수필, 그 전범(典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레지스탕스 즉, 저항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yoongt57)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http://yoonkt57.kll.co.kr/)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난로 앞에서(21,22) (0) 2014.04.15 어떤 '똬리' (0) 2014.04.15 진달래 (0) 2014.04.15 몸살을 앓으며 (0) 2014.04.15 돋보기안경을 닦다가 (0) 201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