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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똬리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내 농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동 그라인더가 탈나버렸다. 나는 그 전동기계로 삽,낫,괭이,호미,부엌칼 등 거의 모든 연장을 수시로 새파랗게 갈아 써왔는데, 막상 탈이 나서 ‘왱’ 소리를 멈춰버렸으니, 아쉽기 그지 없다. 그러한데 그처럼 탈난 전동 그라인더마저 글감 아쉬운 나한테 모티브를 이렇게 제공할 줄이야!그것은 영락없이 ‘똬리’다. 어느 전동기계든 분해해 보면, 그 안에 ‘코일(coil)’이란 이름의 똬리가 들어 있다. 도선(導線)에 에나멜을 입혀 절연(絶緣)한 걸 코일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똬리다. 똬리라면, 어린 날 내가 보았던 누이들의 똬리부터 떠올릴밖에. 누이들은 물동이를 이기에 앞서, 천으로 돌돌 틀어 만든 폭신한 머리보호대(?)부터 머리에 이곤 하였다. 그것이 똬리였고, 그 똬리는 거의 대물림이 이루어졌고, 자칫 놓칠세라, 입으로 무는 끄나풀까지 달려 있었다.
정녕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코일이다. 그것은 전동기계나 발전기한테 필수적인 존재다. 모르긴 하여도, 내 전동 그라인더는 그 코일이 타버렸을 것이다. 속화(速畵)로 그리자면, 자루 달린 석쇠 꼴인 코일 똬리로 인해 전동기가 회전하고, 또 그 똬리로 인해 발전기가 돌아가니 새삼 신기할밖에. 사실 요즘 우리네는 전동기와 발전기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 내가 이 글을 쓰느라고 밤 늦은 시간임에도 어느 연수원 사감실에 꼿꼿이 앉아 있다. 컴퓨터의 열을 식히느라, 내장된 강제공랭식 모터의 팔랑개비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린다. 그것도 그 특별한 똬리 덕분이다. 어디 그뿐인가. 연수생들이 이 늦은 시간에도 찾아와 봉창을 두드리며, “사감님, 헤어 드라이기 좀 빌려주세요.”한다. 이곳 사감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한 헤어 드라이기 대여. 그 헤어 드라이기도 전동기계이며, 그 안엔 예외 없이 코일이란 똬리가 들었다. 실로, 그 어느 것 하나 전동기 아닌 게 없다.
많은 독자님들께서도 나와 마찬가지로, 물리학이라면 따분한 학문으로 여기겠지만, 상식 수준의 이야기를 이 즈음에서 아니 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동기와 발전기는 그 구조가 똑 같다. ‘브러시’ 곧, ‘회전자’라고 하는 코일 똬리에 전류를 공급하는 장치에다 전류를 집어 넣느냐, 아니면 회전자를 어떤 힘으로 마구 돌려 그 브러시를 통해 전기를 받아내느냐에 따라 전동기가 되었다가 발전기가 되었다가 하는 것이다. 나의 독자님들이 아무리 무관심한 이라도 이것 정도는 다시 알아두는 게 살아가는 데 이로울 성싶다. 회전자와 ‘고정자(고정자석)’ 사이에는 자장(磁場)이 형성되어 서로 밀고 당기려다가 회전자가 통째로 돌아가게 된다. 더욱이, 회전자 똬리의 축은 지지대 겸 전원 공급장치 겸 전기 수급장치인 ‘브러시’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설계해 두었으니, 그 뻗치는 힘은 회전으로 나타날밖에. 도대체 그러한 원리를 어떻게 알았으며, 그러한 걸 인류의 삶에 보태 쓸 생각을 어떻게 하였더란 말인가. 이 지적(知的) 호기심이 많은 수필작가가 그냥 있었겠냐고? ‘네이버 박사(?)’한테 조금 전 이런 거 저런 거 다 여쭤 보았다. 그랬더니, 또 다른 사항까지 다음과 같이 좔좔 아주 쉽게 설명해 주셨다. 그렇다고 하여 명색이 작가인 내가, 그것도 유명 수필작가인 내가 남들처럼 곧이곧대로 들었겠냐고? 곧바로 윤색(潤色)을 하였다. 그리하여 오히려 물리학 강사보다도 더 쉽게 설명하려 든다.
꾸불꾸불 도선을 미로(迷路) 형태로, 아니 똬리 형태로 뭉쳐 놓으면, 전류조차도 미로를 타고 꼬불꼬불 흐르게 된다. 그러면 소위 저항이 생긴다. 한마디로, 도선이 열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네 목구멍에 달린 두 개의 편도(扁桃) 같은 고정자석 즉, 남극과 북극 두 녀석이 떡 버티고 서서 서로 당기고 이간질 하는 등 장난 아닌 장난을 엄청 하게 된다. 이에,회전자인 도선 꽈리는 어찌 할 바를 몰라 한다. 우왕좌왕, 좌충우돌, 동분서주… . 그러나 중심은 바로 잡는다. 그 역할을 ‘브러시’가 하게 된다. ‘회전자’는 브러시를 지지대로 삼고 마구 돌아가게 된다. 그것이 발전과 전동의 요체다. 그 운동에는 ‘플레밍의 왼손법칙’이 따르고, ‘전자유도의 원리’가 따르고,’자장(磁場)의 원리’가 따르고… 알아갈수록 복잡한 공식도 나온다. 높은 차원의 것은 전문가들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 놓는 게 예의일 것 같다. 그러나 이것만은 나와 나의 독자님들께서도 알아두는 게 이로울 성싶다. 그래야만 제법 아는 듯 보여 전기전문가나 전동기계 수리공한테서 쪽 팔리는 일이 줄어들 테니까. 고장 난 전동기계를 수리센터에 맡기면서 이런 정도의 말은 해야지 않겠나?
“기사님, 전동기계나 발전기의 회전력은 코일을 감은 수와 코일에 흘리는 전류 세기에 비례한다니 코일을 더 감아 주세요.”
그리고 전동기계를 쓰면서 진짜로 잊어서는 아니 될 인물이 있다. 바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크로아티아, 1856~ 1943)’다. 그는 에디슨 회사에서 수년간 근무하면서 발전기와 전동기를 연구하였던 기술자이며, 찰스 대학 출신이다. 그가 ‘교류 유도 전동기’를 이 지구상에서 최초로 발명하였다. 현대 문명을 누리는 우리는 그 특별한 똬리를 선물로 주고 간 그를 존경 이상으로 숭앙해야 한다고 보는데, 나의 독자님들 생각은?
삼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두서 없는 글 접기로 한다. 이제 더 이상 연수생들은 헤어 드라이기 빌려달라고 이 사감실의 봉창을 두드릴 일은 없겠지! 지금 시간이 자정을 넘은 시간이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똬리 대신 베개를 베고 잠이나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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