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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判官) 이야기수필/신작 2017. 12. 25. 08:28
판관(判官)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법원 청사(廳舍) 전면상단(前面上端)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걸려 있다. 그 여신은 그리스 신화 ‘디케(Dike)’로,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천칭저울을, 또 다른 손에는 칼을 든 형상이다. 천칭저울은 ‘공정함’을, 칼은 ‘엄격함’을 각각 나타낸다. 이 ‘Dike’가 로마신화로 가면, ‘유스티티아(Justitia)’가 되고, 정의를 뜻하는 ‘Justice’의 기원이 된다는데... .
나는 지금부터 역사 속 명판관(名判官)들 이야기로 이내 옮겨가고자 한다.
1. 포청천(包青天)
그는 중국 송나라 때 명판관이다. 그가 최초로 세상에 널리 명판관으로 알려지고, 명쾌한 판결을 내린 사건. 바로 소[牛]에 관한 판결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범인을 잡아달라고 재판관인 그에게 와서 애원했다. 농부는 지난밤에 어느 범인이 마구간에 매어놓은 자기 소의 혀를 잘라가 버려서, 소는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생각에 잠겨있던 포청천은 그에게 이른다.
“ 돌아가서 곧바로 소를 잡으시오. 그런 연후에 그 소고기를 팔아 한 마리의 송아지를 사서 기르시오. ”
엉뚱한 판결에 의아해 했으나, 농부는 판결대로 행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또 어떤 농부가 포청천한테 가서 고발을 하였다.
“국법에 따라, 사인(私人)이 도축할 수 없음에도 내 이웃 농부 하나가 자기 소를 잡았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포청천은 그를 잡아가두라고 명한다.
과연 명판결이었다. 소 주인과 원수지간인 그 농부가 법인이었던 것이다.
2. 註1)어느 원님
산골 청년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읍내에 나와 주막집에 들렀는데, 술 취한 원님의 종이 들어와 주인에게 행패를 부렸다. 젊은이는 그 종더러, “그 녀석 관상을 보아 하니 이틀을 못 넘겨 저승엘 가겠구먼.” 했다.
공교롭게도 원님의 종은 이틀째 되는 날 죽고 말았다. 산골 청년은 원님 앞에 불려 갔다.
원님은 으름장을 놓았다.
“ 네 이 놈, 너는 언제 죽을 관상을 타고 났느냐?”
젊은이가 대답했다.
“ 네, 나으리, 저의 관상과 나으리의 관상을 보니, 제가 나으리보다 이틀 앞서 죽을 듯합니다.”
원님은 속히 젊은이를 풀어 주도록 명령했다.
그 원님도 명판관이었다. 원님은 ‘논증학’에서 말하는, ‘정언적(定言的) 판단’ 이 아닌 ‘가언적(假言的) 판단(조건적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즉, “만약 저 젊은 녀석을 죽이면, 이틀 뒤에 내가 죽을 것이다.”는 판단을 하고 원님은 모골이 송연했다는 거.
3. 솔로몬
솔로몬왕에게 두 여인이 송사를 올렸다. 아이 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가 아의의 어머니라고 맞섰다.
그러자 솔로몬이 판결을 내렸다.
“ 두 여인은 들으라. 나의 이 칼로 아이를 반 토막 내어서 각각 나누어 가지라.”
판결이 나자, 한 여인은 칼을 집어서 아이를 베려 하고, 다른 여인은 울면서 호소하였다.
“대왕이시여, 제가 저 아이를 포기할 터이니, 칼로 베라는 분부만은 부디 거두어 주소서.”
과연 명판결이었다. 위에서 소개했던 대로 솔로몬은 ‘가언적 판단’을 했던 것이다. 즉, ‘참 어머니라면, 저 아이를 칼로 베는 말은 아니 할 것이다.’라고.
4. 어느 어리석은 사또
옛날 아주 어리석은 사또가 있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사또가 되고, 영특한 아내까지 얻었다. 신관 사또로 부임한 그는 난처한 첫 송사를 맞게 된다.
한 농부가 남의 소를 빌려 밭을 갈다가 언덕에 잠시 매어두고 접심을 먹는 동안 소가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주인은 소를 당장 사내라 하고, 농부는 돈을 모아 차차 변상하겠다고 하여 송사가 벌어진 것이다.
어리석은 사또는 아버지가 평소 일러준 대로 영특한 아내와 의논하여 판결을 내리게 된다.
“ 여봐라, 소는 이왕 죽었으니 가죽을 벗겨서 나라에 바치고, 고기와 뼈는 팔아서 그 돈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소를 대체하도록 하여라.”
그 다음 날은 이런 송사가 들어왔다.
노인 둘이 장기를 두다가 한 수만 물려 달라느니 안 된다느니 하다가 격분한 한 노인이 메어친 장기판에 얼굴을 맞고 다른 노인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신관 사또는 이번에는 아내한테 의논할 것도 없이 죽은 노인의 아들에게 판결을 내리게 된다.
“여봐라, 네 아비는 이왕 죽었으니... .”로 시작된 판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판결의 오류다. 아니, 명판결이었다. 왜냐고?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햇으니, 우리네 판관들이 더는‘판단의 착오’가 없기를.
사실 내가 이 에피소드를 느닷없이 이 글에 적는 이유가 있다. ‘국민의 법 감정’과는 동떨어진 판결을 우리가 얼마나 자주 보아 왔던가. 해서, 어느 개그맨의 유명한 멘트이기도 한, “그때그때 달라요!”를 자주 겪는 것도 사실. 허두에 소개한 대로‘정의의 여신’ ‘디케’는 천칭저울과 칼을 들고 있건만... .
5. 윤석열(尹錫悅, 1960~ ~ )
‘위키백과’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 대한민국의 법률가이다. 사법연수원 23기 수료 후 1994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서 근무 중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직원을 체포해 국민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2016년 12월 1일 특검 수사팀장에 지명되어 수락하였다. 제39대 검찰총장 채동욱은 ‘검사 윤석열’을 ‘치밀하고 해박한 법률 이론가이자 자기헌신적 용기를 가진 예리한 칼잡이’라고 평가했다.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에 관한 정보를 더 챙겨보다가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되었다. 그는 무려 아홉 차례 사법고시 끝에 합격을 하였으며, 정의를 구현코자 상사의 지시명령도 거역했고, 그 일로 한직(閒職)에도 한 때 내몰렸다는 거. 그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는 거 아닌가.
“나는 사람한테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는 위에서 소개한 명판관들처럼,‘천칭저울’과 ‘칼’을 든 ‘디케’로 끝까지 남기를.
註1) 어느 원님
김득순, 이야기 속의 논리학(서울: 새날,1992), 56~57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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