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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에 만난 사람
    수필/신작 2018. 3. 8. 00:35

     


                                                 새벽에 만난 사람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새벽 6시 무렵 퇴근하여 곧바로 그 ‘24시 할매 돼지국밥앞에 승용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나의 지정석(?)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 많은 식탁을 두고서도 굳이 내가 그 자리를 곧잘 차지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 곁에는 셀프 추가반찬이 자리하기에. 사실 다진양념이며 새우젓이며 마늘이며 청양초며 김치며 깍두기며 온갖 반찬을 기본으로 내어놓지만, 내가 본디 음식을 맵짜게 먹는 식성(食性)이다 보니 ... .

      “여기요, 돼지국밥 말아서 한 뚝배기요.”

       그렇게 주문을 하고 앉아있으려니, 마침 미리 와서 내 바로 옆 식탁 앞에 앉은 남자가 자꾸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곤 하였다. 그는 나와 달리, ‘따로국밥(돼지국밥에 말지 않고 따로 밥 한 공기 차려주는 국밥이며 그냥 국밥보다 500원이 더 비싸다.)’에다 소주병도 놓고 있었다. 그는 이제 두 번째 소주잔을 채워 자작(自酌)할 태세였다. 왠지 서글퍼 보여, 내가 막 말을 걸고 싶었으며, “선생님, 제가 한 잔 따라 드릴 게요.”제의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그가 말을 건네 왔다.

      "선생님도 저처럼 어디 경비 서고 퇴근하신 거 같군요.”

       그는 내가 입은 점퍼를 보고서, 아파트 경비원 복장임을 눈치 챈 모양이다. 물론 나는 경비원 모자를 눌러 써서 일그러진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그 모자 대신 빵모자를 쓰고 있었으나... .

        그는 나한테 소주를 권했다. 너무도 반가운 동지. 그는 스스럼없이 말을 붙여 왔다. 이번엔 내가 내 밥상째로, 즉 오븐째로 들고 그의 맞은편으로 갔다. 통성명에 이어 각자 근무하는 아파트 등을 서로 소개하게 이르렀다. 나는 내 평소 습관대로 그에게 차례차례 물었다. “고향은요?”,“ 연세는요?”, “전에는 무엇 하셨어요?”“고등학교는요?” . 물론 그때그때마다 나의 신분도 차례차례 밝혀나가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둘 다 아파트 경비원이며, 나이는 그가 나보다 한 살 아래. 내가 이 바닥에서(?) 5년차인데 비해 그는 2개월차. 그 다음이 놀랄만했다. 그는 중학교까지밖에 못 다녔다는데,‘대구청구중학교출신이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나는 청구고등학교 10회 졸업생이며, 해마다 600여 명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습니까?” 응답했다.

       그 이른 새벽, 한 울타리 안에서 시간차는 다소 있으나 , 같은 선생님들한테서 글을 배운 동지를 만났던 게다. 그는 <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자기 중학교 동문 김윤복을 비롯해서 축구 국가대표선수가 되었던 변병주’, ‘박경훈등의 이야기까지 좔좔 꿰고 있었다. 참말로 반가운 동지!

       사실 그의 행색은 안타까웠다. 가방공장을 하였다던 그. 그는 멋모르고 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했다는데, 손가락에는 반창고를 바르고 있었다. 그 혹한(酷寒)에 파지(破紙) 정리며 음식물 쓰레기통 씻기며 낙엽쓸기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느라고 그리 되었을 터. 신출내기 티를 어찌나 그리도 잘 내던지? 사실 내 양 검지 손가락 마디도 터지기는 했지만, 나는 그 터진 부위를 물 페이퍼나 수세미로 간[硏磨] 다음 연고를 바르고 털장갑을 낆으로써 티를 아니 내는 편이건만...

       그는 어느 입주민이 택배를 부쳐달라며 초소로 와서, 택배료 4,000원과 주소를 적은 메모를 맡겼던 일에 관해 거듭거듭 볼멘소리를 나한테 하였다.

      “선배님, 저는 그 갑질 더는 견딜 수 없어요. 가뜩이나 하수구 청소까지 하며 바빠 뒈지겠는데... .”

       나는 경비원 잔밥()’을 내세워 나직 충고해 주었다.

      “전형(全兄), 그런 거 정도는 유연하게 서비스한다고 여겨야 해요. 이 바닥에서 밥 빌어먹으려면, 그런 거 정도는 선하게, cool하게. 특히 전형은 경비원 견습 기간이니... .”

       나는 휴지통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제법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전형, , 입가와 눈가를 닦으세요. 눈가에 눈곱이 ... .”

        그는 그 두꺼비 등 같은 두 손으로 내 손을 움켜잡았다.

       “선배님, 한 울타리 학교 선배님, 인생 선배님, 경비 선배님, 길을 잘 인도해 주이소.”

       나는 그에게 몇 가지 묻고 몇 가지 당부하였다.

       그는 사비(私備)경비신임교육을 나처럼 이수했다고 답했다. 일단 조건을 갖춘 듯하였다.

       “전형, 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입니다. 그곳을 속히 빠져 나오세요. 아파트 경비원은 세대수입니다. 700여 세대에 경비원 둘은 벅차요. ‘경비원 신문이 있어요. ‘대구 교차로대구 벼룩시장구인광고를 들여다보는 것은 경비원 기본 업무에요. 본인과 맞는 아파트가 분명 있을 거에요. 정히 힘들면 ‘ ooo 용역회사또는 ㅁㅁㅁ 용역회사에 이력서 제출해보세요. , 고무줄 늘리듯, 이력서에다 ‘ ooo아파트 경비원으로 12개월 근무라고 적으세요.”

       순진해빠진 그는 나의 충고 가운데, 근무경력을 고무줄처럼 늘려 잡는 데 대해 은근히 걱정을 하였다.

      “전형, 그건 사기(詐欺)가 아니고 사기(士氣)에요. 면접관으로 하여금 의지를 보여주는 거니까요.”

       나는 그 남자의 휴대전화번호를, 내 휴대전화 주소록에 입 력했고, 그도 나의 번호를 자기 휴대전화 주소록에 입력하였다. 본디 음식점이란, ‘자리 보전시간(?)’이 있는데다가, 지랄같은 주방 할매가 윽박아대는 통에 우린 자리를 선선히 뜰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가 ‘S.O.S.’를 타전해 오면, 백방(百方)으로 애를 써서 자리를 옮겨줄 요량이다. ?

      ‘어차피 인생은 줄 서기이고, 경비도 줄 서기인 까닭에.’

       사실 세상사 그러하지 않은가. 재벌들은 2, 3, 4세까지 손끝 하나 까딱이지 않고 그 부()가 세습되고, 가난뱅이들은 2, 3, 4세까지 그 빈곤이 세습되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똑똑히 보아왔으니... . 그가 나와 처지가 비슷한데다가 나보다 가방끈도 꽤 짧으니, 어떻게든 야메(뒷거래)로라도 앞으로 도와주어야하지 않겠냐고?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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