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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Humour)’에 관해
윤근택(수필가)
서양에서는 ‘그는 참으로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이다.’가, 상대를 크게 욕하는 말이라고 들은 바 있다. 유머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풀어주고 웃음까지 선사하기 마련이다. 꽤 다양한 나의 유머 감각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 두고... .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가운데에는 ‘드보르작(Antonin Dvorak)’도 있다. 보헤미아(체코) 출신인 그는 미국 ‘국립 콘서바토리(conservatory ; 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고국을 떠나 지낸 적 있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그때 향수(鄕愁)와 신세계인 미국에 관한 내용을 담아 적은 <교향곡 9번>과 <현악사중주 12 번 ‘아메리카’>는 아주 유명하다. 한편, 열차 여행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4년 여름에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열차 바퀴가 내는 소리에 영감(靈感)을 얻어, 총 8개의 피아노 소품을 적게 되었다는데, 그는 그 악보를 출판사에 맡기며 ‘유모레스크(Humoresque, Humoreske)’라는 이름을 붙였다지 않은가. 그 8개 소품 가운데 제 7곡은 독립적인 곡으로 종종 연주되며 경쾌한 분위기이고 매우 인기 있는 곡이다.
그 유모레스크란, 말 그대로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런 말이나 행동’을 말한다. ‘해학적(諧謔的)’, ‘골계적(滑稽的)’으로도 바꾸어 쓸 수 있는 어휘이다. 물론 그 어원은 다르겠지만, ‘human(인간미가 있는)’과 뉘앙스상으로도, 발음상으로도 비슷한 ‘유모레스크’. 사실 ‘유모레스크’는 음악 장르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경쾌한 기분의 소곡(小曲)’ 또는 ‘개념의 모호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피아노곡’을 일컫는다. 그러기에 ‘유모레스크’가 드보르작만의 전유물(專有物)은 아니다. 슈만도 ‘유모레스크’를 지어, 자기 여자 제자한테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간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는 ‘경쾌한 기분의 소곡’이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유머를 떠올리기에 족하다.
자, 이제 내가 잠시 미뤄뒀던 내 유머감각 자랑 차례다. 간혹 내 말을 들은 상대들이 미소지으며 말하곤 한다.
“참 재미있는 분 같아요.”
나는 내가 즐겨 태우는 궐련담배를 사러 단골가게에 들러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지매, ‘맡겨둔’ 담배 한 갑 주세요.”
그러면 아지매가 용케도 그 많은 담배 종류 가운데에서 ‘심플 클래식(Simple classic)’을 찾아 건네준다. 2018년 3월 현재, 그 담배는 갑당 4,300원. 거스름돈을 받아 쥘 때도 인사를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아껴 쓸 게요.”
그런가 하면, 24시간 편의점에 가서 담배를 살 때에는 또 다른 말을 건넨다.
“ 총각, 저 목소리 예쁜 아가씨가 내 나이가 19세 미만인 걸 어떻게 알고서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할까요? 요 다음부터는 신분증을 꼭 가져올 게요.”
그러면 그 깊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참, 그 예쁜 아가씨의 목소리란, 담배갑에 바코드를 읽기 위해 리더(reader)를 갖다 댈 적에 스피커를 통해 자동으로 나오는 목소리를 일컫는다.
위에 소개한 두 사례는 내 언어습관의 일부일 따름이다. 나는 순간순간 재치롭고 재미나는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편이다. 그런 다음 상대를 기분 좋게 한다. 가령, 어느 아리따운 부인을 치켜 올릴 양이면, 그가 몰고 가는 반려견을 이렇게 부른다.
“강아지님, 아니 입주자님, 몇 동 몇 호에 사세요?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어디 가세요?”
그러면 그 강아지 주인인 부인은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또, 꼬마아가씨가 자기 엄마랑 손을 잡고 경비실 앞을 지나쳐 갈 적에도 인사를 색달리 한다.
이미 그 꼬마아가씨는, “경비 아저씨, 택배 아저씨, 안능하세요(안녕하세요)? ” 인사한 터.
“꼬맹이, 어머 눈썹을 그려놓은 거 같네? 엄마 닮아서 이렇게 이쁜가 보네.”
그러면 십중팔구 그 엄마가 행복해하더라는 거.
이쯤 해두고서... . 나는 자주 드나드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살 적이면, ‘사러 왔다고’ 하지 않고 ‘맡겨둔 걸’ 돈으로 바꾸러 왔다는 점에 관해 초점을 맞춰 보도록 하겠다. 그 표현이 다분히 철학적이며 ‘상업학(商業學)’ 또는 ‘마케팅학(-學)’에 기초한 말이라는 거. 우리가 자주 쓰는 ‘賣買(매매)’라는 어휘야말로 상업학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나는 마침 ‘상업’이 선택과목인 인문계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상업 선생님이 그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었다. ‘사고 (買) 팔고(賣)’가 아니라, ‘팔기 (賣) 위해 산다(買)’는 개념이라는 거. 팔되(買), ‘士’ 즉 이문(利文)을 얹어 파는 거. 분명 ‘매매’라는 한자어는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어휘는 더러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 어휘는 아무래도 ‘出入’이 아니겠는가. 그 진행순서 내지 유통순서로 따지면야 ‘入出’이 옳겠지만... . 그러니 가령, 철물점에 진열된 그 많은 농기구들도 엄밀히 말해 철물점 사장의 것은 아니다. 최종 사용자인 나의 것이고, 그곳에 잠시 맡겨둔(?) 게 맞다.
내 이야기는 이쯤 ‘디딤판’에서 훌쩍 비약하게 된다.
내 아내마저도, 내 딸아이들마저도, 내 목숨마저도 하느님께서 나한테 잠시 맡겨둔 거라는 사실. 해서, 본디 주인이 언제고라도 “맡겨둔 거 도로 주시오.”하면 내어주어야 한다는... .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단골 가게에 가거든, 나처럼 말을 해보심이? 그러면 상대는 환하게 웃게 되리라.
“아지매, 이번에도 내가 맡겨둔 거... .”
관련 음악 듣기)
[좋은 클래식 추천] 안토닌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Dvorak : Humoresque)
12 in F major, Op.96 'America' 드보르작 <현악사중주 제12번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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