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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르마'를 타며
    수필/신작 2018. 3. 26. 01:18

     


                               ‘가르마를 타며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모름지기, 농부는 가르마의 개념을 잘 알아야 하고, 또 가르마를 잘 탈 줄 알아야 한다. 이 무슨 소리? 농사를 수도작(水稻作), 전작(田作)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텐데, 전자(前者)는 논의 언저리에 여하히 두둑을 튼튼히 지어 물을 항시 가두어두느냐가 요체이고, 후자는 밭의 둘레에 도랑을 얼마가 깊이 잘 내느냐가 핵심이다. 대체로, 과수(果樹)를 비롯한 밭작물들은 배수(排水)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그 뿌리들이 호흡곤란으로 생명활동을 멈추게 되고, 결국은 말라죽는 일이 왕왕 있다. 작물에 따라 침수 허용시간 즉 요즘 흔히 쓰는 골든타임이 있기 마련이다. 고추의 경우, 24시간이 골든타임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남이 잦은 침수(沈水)로 말미암아 버려뒀던 두 댁 밭 두 뙈기를, 수년째 거저 얻어 부치고 있다. 내가 가르마의 이치를 너무도 잘 알고 실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리기에다 이른바 구굴기(溝掘器) 을 끼우고, 밭 둘레에 도랑을 깊이 내는 한편 물이 생기는 밭자리에다 가르마를 탄다. 내 어머니는 살아생전 면경(面鏡)을 들여다보며 참빗으로 가르마를 타서, 쪽진머리를 하곤 하였다. 그런 다음, 당신은 아주까리 기름을 머리에 반질반질 바르곤 하였다. 어쨌든, 나도 가르마 꼴의 도랑도 만들어대기에 밭농사를 멀쩡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세상이 좋아져서, 그러한 곳에다 지날 날에 설치했던 암거(暗渠)’ 대신 ‘PVC 유공관(有孔管)’을 설치해도 만판이다. , ‘(Hume)’ 형제가 발명했다 하여 이름 붙인 흄관을 매설해도 된다. 크게 과수를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통기(通氣)와 원활한 배수(排水)를 위해 과원(果園)에 요즘은‘PVC유공관을 묻는 추세다.

       다시 내 이야기다.

      “윤 과장(나의 택호), 우리 밭은 물이 생겨서 농사가 도통 안 되더군. 그러니 윤 과장이 재주껏 해서 거저 부치시게나.”

       다시 말하거니와, 살아생전 내 어머니의 가르마를 떠올렸기에 흔쾌히 수락하였다. 밭에도 당신의 머리모양으로 가르마를 타면 되리라 믿었기에. 나한테 그러한 밭을 거저 부치라고 한 분들은 내심 약이 오르겠지만... . 사실 나는 밭에다 가르마를 타되, 내 어머니 머리처럼 정중앙을 잡아 곧게 타는 것만은 아니다. 비가 내린 후 밭을 유심히 살펴보아, 추진 곳을 요리조리 찾아곡선가르마로 내게 된다. 이야말로 신세대 곡선가르마패션이다. 생긴 대로, 자연에 순응하는 곡선 가르마.

       새봄을 맞은 나는 관리기로 밭을 간다. 그런 다음 밭 둘레 도랑도 고친다. 그리고 밭의 추진 곳을 찾아 곡선가르마를 탄다. 가르마를 타지만, 언제고 그랬듯, 끝마무리는 호퍼괭이나 삽인 아닌 레이크철사 갈퀴로 행할 것이다. 오랜 경험상, 도랑을 마무리 짓는 데는 레이크나 갈퀴보다 힘이 덜 들고 효과적인 농기구는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이참에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덤으로 알려드릴 게 있다. 유목(幼木)을 심을 때에도 삽이나 곡괭이나 괭이보다는 호미가 낫더라는 거.

       밭에다 가르마를 짓는 동안, 살아생전 내 어머니가 다시 그리울 줄이야! 당신은 해마다 밭 언저리에다 아주까리를 심었고, 그 아주까리 열매로 기름을 짜서 당신의 머릿기름으로, 등잔기름으로 쓰곤 하였다. 당신은 아주까리 열매를 딸 적마다 강원도 아리랑도 구성지게 부르곤 하였다.

      ‘...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마라/ 누구를 괴자고(사랑하자고) 머리에 기름/ 열라는 콩 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 ’

       나도 당신이 부르던 그 소절을 거듭거듭 부르며 밭에다 가르마를 타리. 가르마들 타되, ‘곡선가르마를 타리. ‘곡선 가르마를 타되, 굳이 하나의 가르마마 고집하지 않으리. 당신은 머리 정중앙에 곧게, 그리고 좁게, 머릿밑이 하얗게 외길처럼 보이던 가르마를 탔더라도... .

     

     

    작가의 말)

     

     졸속으로 지었으니, 애독자들께서는 채워서 읽어주시길. 하더라도,‘: 어머니의 머리 = 도랑 : 가르마만은 제가 생각해도 놀라운 발견(?)인 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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