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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지에 관해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설치미술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으나,수십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으니... . 그게 바로 흑표지다. 나는 요즘도 ‘경비일지’라는 이름이 붙은 흑표지를 펼쳐, 그날의 날씨를 시작으로 간단한 일지를 적곤 한다.
‘거, 참 신통방통한 물건이단 말이야!’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이 너덜너덜한 흑표지를 도대체 몇 대(代)에 걸쳐 써왔을까 하고서.
대체로, 1년 고용계약으로 이뤄지는 아파트 경비인데, 그 1년도 채 채우지 않고 본의로든 타의로든 떠나는 예가 많지 않은가. 이직률이 비교적 높은 아파트 경비이니, 꽤나 많은, 나 이전의 할배들의 손때가 묻어있을 터.
이 흑표지는 그 색깔로 말미암아 어떤 ‘흑역사 [黑歷史]’란 신조어를 생각하기에 족하다.즉,‘없었던 일로 치거나 잊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과거’. 어떤 이는 이 흑표지로 철(綴)된 ‘경비일지’를 팽개치며 어떤 갑질로 인하여 이곳을 쓸쓸히 떠났을 것이다.
“ 에라, 빌어먹을 ... . 여기 아니면 어디 일자리가 없나?”
언젠가는 나도 유사한 사유로 이곳을 떠날지 모를 일이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은 이 흑표지로 철된 경비일지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리!
흑표지에 관한 흑역사는 실로 여러 곳에 있었다. 말썽꾸러기 동급생들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출석부로 볼따구니나 머리를 얻어맞곤 하였다. 그 출석부 안에는 60~70명의 이름이 내리 배열된 출석부가 철해진 것으로, 상철(上綴)이 아닌 좌철(左綴)이었다. 그 출석부 표지도 어김없이 마분지에다 망사(網紗)를 오버래이(overlay)한 것이었다. 1년 여 동안 국어,영어,수학 ... 체육,미술, 음악 등 여러 교과목 교사들이 두루 썼기에 그 모서리가 너널너덜할 지경이었다. 물론 착해빠졌던 나는 그 어느 교과목 선생님으로부터도 그 출석부로 맞은 적은 없다.
흑표지와 관련된 내 아픈 추억은 대략 둘. 그 가운데 하나는 교생실습 때의 일이다. 모교인 시골 중학교에, 그해 11월에, 농업 과목 교생실습을 간 적 있었다. 이른바 교생일지를 매일 적어 상우단(上右端) ‘교생(담당)·학생과장·교감’으로 이뤄진 이른바 ‘삼단결재인’에다 서명을 한 후 순차적으로 결재를 받아야 했다. 그러함에도 며칠씩 일지 결재를 미뤄두다가 매번 교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그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B학점을 받고말았다. 아주 일상적이고 뻔한 일을 매일 적는다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내가 후일 국영기업체에 초급사원으로 취직하고부터는 그 흑표지를 일상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그 많던 각종 점검부는 대개 흑표지로 철되어 있었다. 괴팍한 상사들은, 겨드랑이에 잔뜩 끼고 가서 결재를 받는 동안, “일을 이 따구(따위)로밖에 못해?”하며 자신의 집무실 바닥에다 내던지곤 하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다시 생각에 잠겨 본다.
‘참말로, 강산이 수 없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흑표지다.’
초창기 공무원 공개시험에, 흑표지 철에 쓰이는 철끈을 비비는 실습문제도 출제되었다는 소리도 들은 바 있다. 출제자는 창호지를 응시생들한테 건네주고, 그것으로 철끈을 만들어 보라고 했단다. 어느 고위 공직자 은퇴자가 우스갯소리로 나한테 들려준 적 있다.
“여보게, 나는 그때 창호지로 철끈을 잘 비벼서 공무원에 합격했다네.”
실제로, 세월이 흘러가도 흑표지는 변하지 않았지만, 철끈도 좀체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철끈은 그 끝을, 양초를 녹여 빳빳하게 먹인 것도 있고, 아예 플라스틱류의 재질로 가락지를 씌운 것도 있다. 종이를 끼우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흑표지와 철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물건. 사실 이런저런 ‘파일링시스템’이 나오긴 했으나, 그 기능면에서 흑표지와 철끈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손을 거쳐도 쉬이 닳지 않는, 세월이 거듭 흘러도 쉬이 퇴색되지 않는 ... . 흑표지는 전통이며 고전이고 권위이다.
끝으로, ‘성조기여 영원하라’에 빗대 말하노니, ‘흑표지여, 영원하라.’
작가의 말)
다들 흑표지로 된 일지류를 결재받던 추억을 더듬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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