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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버림'에 관해수필/신작 2018. 7. 11. 03:15
‘내다버림’에 관해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설치미술가)
‘내다버림’에도 돈이 든다. ‘무단 배출자’는 CCTV를 통해 끝내 잡힌다. 이번에는 신축 아파트의 경비원이 된 나. 내 업무 가운데에는 ‘대형폐기물 처리’도 포함되는데,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입주 세대들은 웬만한 ‘대형 폐기물들’을 이사 오기 전 자기네가 살던 아파트에서 죄다 버리고 왔다고들 한다. 그러함에도 막상 실어왔던 고급 장롱 등이 아파트 구조에 아니 맞는 등으로 ‘분리수거장’에 내다 놓는 일이 왕왕 있다. 아주 덩치 큰 대형폐기물들은 신고를 제대로 하여 스티커를 사다 붙이는 편이지만, 비교적 덩치 작고 애매한 물건 따위는 신고를 이내 하지 않는 편이다. 솔직히 얌체족들도 많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개 코팅된 A4용지‘대형폐기물 수수료 조견표’를 끼고 산다. 그 조견표를 다 외울 수도 없을 지경이다. 오늘은 그 조견표에 수록된 품목 및 수수료 부과 근거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 제목은 ‘대형폐기물의 품목 및 수수료 기준’, 소괄호 처리된 근거는 ‘경산시 폐기물관리 조례 제2조 제호, 제 17조 제 1항 제2호 관련’. 품목수를 세어보니, 무려 68개다. 조견표 맨 아래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고 있다. ‘주)상기 품목에서 제외된 대형 폐기물은 유사한 품목의 수수료를 적용한다.’.
이번엔 조견표에 열거된 내용을, 내 신실한 독자들께 ‘맛뵈기’로 보여 주어야겠다.
가스오븐레인지 높이 1m이상 4,000
높이 1m미만 2,000
공기청정기 2,000
냉장고 1,000l이상 15,000
500l이상 8,000
300l이상 6,000
300l미만 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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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대 입식 4,000
좌식 3,000
화분(항아리) 1,000
TV받침대 3,000
위와 같이 적힌 게 68개 품목이고, 그 수수료도 여러 종류이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아파트 경비원인 나한테는 줄자도 입주민들과 흥정토록 지급되어 있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68개 품목 가운데 상한 수수료는 15,000원, 하한 수수료는 단돈 1,000원. 스티커는 가까운 마트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그 액면가가 1,000원짜리, 3,000원짜리, 5,000원짜리,10,000원짜리로 되어 있으며 종별로 색깔이 다르다는 거.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보너스 내지 팁을 하나 드릴까 한다. 자칫, 전국 아파트 경비원들한테 욕먹을 수도 있겠으나... . 사실 가전제품이나 고철(古鐵)에는 스티커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왜 그런고 하니, 가전제품은 S사,L사를 비롯한 제조회사들이 연간 신제품 판매량을 기준으로, 폐기물 수거량을 정부로부터 할당받았다는 거 아닌가. 즉, 정부가 들어,“당신네 회사에서 올해 몇 대의 냉장고를 팔았으니, 고물 냉장고를 환경보호 차원에서 몇 대는 수거하시오.”했다는 사실. 그들 회사는 심부름꾼(?)인 수거업체로 하여금 가전제품 수거 대행을 맡겼다는데... . 지난 봄, 중국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폐플라스틱을 비롯한 폐기물 수입을 전면중단하면서 우리나라는 ‘쓰레기 대란’이 잠시 일어난 적이 있다. 그때 연일 매스컴에서 쓰레기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사실 그때 나는 위 가전제품 수거대행에 관한 뉴스도 접했다. 기가 막히게도, 1,2위를 다투는 국내 S사와 L사의 폐가전제품 수거량이 조작이 되어 있더라는 소식도 접했다. 어쨌거나,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앞으로 가전제품이나 고철에만은 ‘수수료 딱지’ 아니 붙여도 되니,이야말로 횡재 아니냐고? 윤근택 수필가의 애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보너스. 더군다나 수필작가이면서 아파트 경비원이기도 한 이를 아는 덕분일 테지.
대형 폐기물 가운데는 아까운 것들이 많기도 하다. 더러더러 ‘바이어(buyer)’들이 대형폐기물 집하장을 기웃거리는 예도 있다. 그분들은 소파나 가구를 실어가는 일이 있다. 참으로 고마운 바이어들. 나는 그렇게 무상(無償)으로 가져가는 이들을 바이어라고 부르곤 한다. 경비실에서 동료 경비원인 ‘하 시몬 형제님’이 CCTV를 통해 본 장면을 휴대전화로 곧잘 일러주곤 한다.
“윤 형, 이번에는 얼른 112동으로 이동하세요. 바이어들이 찾아온 것 같아요. 흥정을 잘 해서 아주 저렴하게 내어주심이?”
사실 그가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돈을 받으라는 뜻은 아니다. ‘주워 간다’는 말보다는 ‘사 간다’가 나을 듯해서 우리끼리 그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순회정리정돈 하면서 나는 종종 연필이며 가위며 헤어드라이며 목 부러진 선풍기며 온갖 걸 주워서 경비실로 가져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동료 경비원한테 농담을 건네곤 한다.
“시몬 형님, 이 목 부러진 선풍기 하나 사왔어요. 아주 저렴하게 드릴 테니, 댁에 가져가심이?”
그가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지만, 결국은 그 선풍기를 댁에 가져가게 된다는 사실. 왜? 나는 곧바로 지척(咫尺)의 마트로 가서, 단돈 800원에, 순간접착제를 사다가 그 부러진 선풍기 목을 붙이기에. 그러면 아주 말짱한 신제품이 된다. 사실 그처럼 간단히 수리하면 만판인 물건들도 내다버리는 예가 많다.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 이제 과감히 정리해야겠다. 내가 그 많은 폐기물 가운데에서 가장 탐나고, 가장 가슴 설레는 물건은... ‘이걸 밝힐까 말까?’... ‘에라 모르겠다. 확 불어버리자.’바로 여성용 빼딱구두와 브래이지어. 그것들 가운데 빼딱구두는 ‘의류 수거함’ 상단에 얹혀 있는 예가 많고, 브래이지어는 그 ‘의류 수거함’ 아가리에 걸려 있는 예가 많다. 자기 가슴에 차던 브래이지어만이라도 그 아가리에 깊숙하게 집어넣었으면 좋을 터인데... . 진짜로 내가 그것들 두 물건이 왜 탐나고 가슴 설렌다고 할까?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에는 온갖 물건을 다 내다버리는데, 어느 남정네라도 자기가 애용하던(?) 여자만은 내다버리지 않더라는 거. 모르긴 하여도 스티커 비용(?)이 너무 비싸서? 만약,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얼른 ... . 이 관능(官能)이여!
작가의 말)
“생활이 수필이요, 수필이 곧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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