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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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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투막
    수필/신작 2018. 8. 9. 18:57

                          

                                           반투막(半透膜)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설치미술가)

     

       ‘반토막이 아니다. ‘반투막이다. 아파트 경비실에 홀로 앉아 야간근무를 하는 동안, 심심해서 바라보는 방충망. 모기나 풀벌레로부터 몸을 보호코자 설치한 저 방충망. 바람의 소통은 원활하게 하면서도 이격(離隔)의 효과를 극대화한 게 방충망인데... .

       방충망, 저 어레미를 바라보노라니, 이 밤 온갖 어휘가 길게길게 사슬로 꿰인다. 반투막·삼투압·절반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걸러냄·한지(韓紙).

    지금부터 이들 열쇠어휘를 가지고 내 이야기를 거뜬히 꾸려갈 테다. 우선, 우리네가 너무 흔하게 쓰는 말이 있지 않은가. 유리잔에 1/2의 물이 담겨 있을 때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물이 아직도 절반씩이나 남았다고 하는 이가 있다고. 저 반투막인 방충망도 그러한 이치다. ‘()’인 듯싶어도 (;존재함,실체)’이니까. 당시 20대 후반에 불과했던 내가 그 엄청난(?) 이치를 어떻게 깨달았으며 또 어떻게 그리 제대로 실천했던 건지? 도대체 그때 나한테 어떤 일이 있었냐고? 나는 대학 1학년 2학기 때 36개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였다. 대학교 중앙도서관엘 가 보았다. 많은 이들이 그 두꺼운토플 영어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니네들, 나와 마찬가지로, 지방대학에 다니는 주제에, 그 어려운 토플 영어 수준의 영어 실력이 되기나 해? 어학 분야라면, 그래도 나는 니네들보다 기초가 튼실하다고 믿지만... .’

       나의 취직영어 공부는 색달랐다. ‘성문영어던가, 그 교재를 중고서점에서 한 권 샀다. 그리고 목표를 정했다.

      ‘이 책으로 공부하되, 맨 뒷 페이지부터 거꾸로 읽어나갈 것이다. 페이지마다 날짜를 기재해두고... .’

       다들 학창시절 경험했겠지만, 학년이 바뀌거나 담당 교사가 바뀌면, 또 다른 학습교재를 선택하였다. 해서, 영어과목의 경우, 명사·부정관사·분사구문 정도에 이르러 앞부분만 책갈피에 때가 묻어 있곤 하였다. 나는, 수학과목과 달리, 선수과정(先修過程)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게 어학임을 알았기에 그리하였던 게다. 그랬더니 결과는? 어찌 생각하면, 목표했던 날까지 한 권의 책을 떼낸 듯도 하고, 전혀 아니 읽은 듯도 하였다. 특히, 학사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신 날이나 여대생과 데이트 한 날의 그 책 페이지는 말갛기만 하였다. 그래도 역시 그 반 토막 학습법은 통했다. 내가 후일 천신만고 끝에 합격한 한국전기통신공사(KT의 전신) 초급사원 공채, 어디서 본 듯한 문제가 죄다 출제되었으니... . 오늘밤 그 일을 다시 떠올리자니,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의미와 유사한 일. 어쨌든, 군대에서 막 제대한 나는 그러한 학습법을 택하여 정진하였다. 저 아파트 경비실 유리창에 덧쳐진 방충망도 내 학습법과 통하는 게 있다. 촘촘 뚫린 구멍으로 바람은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고, 모기니 나방이니 하는 족속들은 안을 넘볼 수 없도록 하는... .

       내 연상(聯想)은 이제 반투막(semipermeable membrane)’에 닿는다. ‘다음백과는 아래와 같이 상세히 적고 있다.

       <용액이나 기체의 혼합물에 대하여 어떤 성분은 통과하고 다른 성분은 통과하지 못하는 막. 용액, 콜로이드 용액, 혼합기체 등과 같은 혼합물의 특정 성분만 통과시키고 나머지 성분은 통과시키지 않는 막을 말한다. 반투막에는 매우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는데, 어떤 물질이 통과하려면 그 크기가 반투막의 구멍보다 작아야 한다. 반투막의 재료로는 셀로판막, 황산종이, 방광막 등이 있다. 투석, 삼투압 측정 등에 이용된다. 단백질이나 콜로이드 용액을 셀로판막 또는 콜로디온막으로 싸서 물속에 두면, 단백질이나 콜로이드에 함유되어 있는 불순물인 염() 등은 이 막을 통과하여 물 쪽으로 가지만, 단백질이나 콜로이드는 통과하지 못한다. 이 방법을 투석이라 한다. 세포의 삼투압 현상도 원형질막이 갖는 반투막의 성질에 의한 것이다.>

       우리네 방광을 비롯한 여러 장기(臟器)의 벽은 죄다 반투막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 요컨대, 반투막은 생체 생명활동의 바탕이 된다는 것도 놓칠 수 없다. 선택적으로, 선별적으로 영양분 따위를 걸러내지 못할 적에는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는 점. 사실 삼투압 또는 삼투현상도 반투막이 있어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네 생활주변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투막은 한지(韓紙)이겠지. 바람과 습기가 적절하게 넘나들 게 하는 한옥 창호지로 쓰여 왔으니... . 그러한 점에서도 우리네 조상들은 지혜로운 분들이었다.

       자, 이제 두서없이 펼쳐놓은 나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아야겠다. 방충망은, 어레미는, 반투막은 선별성 투과 내지 선택성 투과를 만들어내는 물건이다. 언뜻 보기에는 ()’인 듯하나, ‘(; 실체, 존재함)’이다. 저 방충망뿐만 아니라 내가 입은 옷도 내 나신(裸身)을 가려주는 한편 바람의 드나듦도 적당히 눈감아 주도록 짜져 있다.

       이제 내 이야기 비약의 단계에 다다른다. 내 가슴에도 저 방충망처럼 생겨먹은 거름막을 하나 지녀야겠다는... . 해서, 귀에 거슬리는 남의 말도 더러는 걸러서 들어야겠다는... . 내가 즐겨마시는 막걸리도 제조과정에서 어레미에 걸러지거늘, 하물며 남의 거슬리는 말쯤이야?

     

     

      작가의 말)

      늘 한, 두 편의 신작수필이 머릿속에 있어요.

     수필작품을 거듭거듭 쓰지 않으면, 저는 산 목숨이 아닌 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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