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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구지를 옮겨 심고
    수필/신작 2014. 4. 21. 11:16

                     

             정구지를 옮겨 심고(1)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따금씩 나의 만돌이 농원에 찾아 드는 아내. 그는 자주 나한테 나의 백씨(伯氏) 못잖은 (농토) 욕심쟁이라고 흉을 본다. 내 토지만 하여도 꽤 되는데, 둘레의 묵정밭이나 언덕받이 등을 그냥 보고는 지나치지 못하는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연휴(連休)를 틈타, 아내의 비아냥도 아랑곳 않고 이번에는 농막 옆 산비탈을 개간하였다. 곡괭이로 박힌 돌을 하나하나 뽑아 돌둑을 짓고, 괭이로 잡초와 잡목을 캐내 감나무 발치에다 거름으로 수북 넣어주고 . 그러다 보니 어느새 널따란 화단이 되었다. 처음엔 그곳에다 기왕의 튜울립, 백합 등속의 꽃들을 포기나누기 하여 옮겨 심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의 농장에는 튜울립과 백합만 하여도 여러 종류이며 꽤나 번져 있다. 그러나 그곳을, 지난 날 내 양친이 그러했듯, 정구지 채전(菜田)으로 삼고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당신들은 밭 귀퉁이에다 조그맣게 채전을 만들어 온갖 채소를 재배하곤 했다. 당신들의 그 알뜰함도 알아주어야겠지만,그렇게 하면 본밭에 치는 농약으로부터 안전한 채소를 얻을 수 있었으니 여간 지혜로웠던 게 아닌 성싶다. 하여간, 새로 다듬은 그곳에다 정구지를 심을 요량이었다.

    정구지,부추를 일컫는 우리 쪽 사투리다. 정월부터 구월까지 거듭거듭 그 비늘줄기를 베먹을 수 있다고 하여 정구지란다. 정구지를 심는 데는, 씨를 사다가 심는 방법도 있겠고, 기왕에 자라는 놈들을 솎아다가 옮겨 심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후자(後者)를 택했다. 후자는 이내 수확을 할 수 있기에 그리 하기로 마음 먹었다. 여기서 잠시. 독자님들한테 도움이 되길 바라며,정구지 씨앗갈기 요령부터 알려 드려야겠다. 줄뿌림[條播]과 점뿌림[點播]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해도 좋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씨앗을 한 군데에 여러 알씩 소복소복 넣는다 싶으리만치 심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주셔야 한다. 정구지는 외동보다는 동기(動氣)가 많은 가운데서 유년시절(?) 더 힘차게 자라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구지한테도 긴장과 경쟁심을 부추겨 주어야 한다. 또 하나의 프리미엄이다. 정구지 씨앗을 노지(露地)에다 그냥 심는 것보다는 비닐멀칭(vinyl-mulching)을 한 후 구멍을 뚫어 심는 게 낫다. 발아율, 생장속도 증진 등은 물론이려니와 향후 김매기의 수고로움도 덜어주게 된다. 이는 지난 번 나의 백씨(伯氏)한테서 들은 이야긴데, 정구지도 포트묘(pot)로 키워서 본밭에 옮겨 심으니, 금세 포기당 한 움큼씩 벌더라고 하였다.

    이쯤 해두고, 내가 정구지를 어떻게 캐다 옮겼으며, 그렇게 옮겨 심다가 대체 무엇을 새삼 깨달았는지 이야기를 해나가야겠다. 몇 해 전 저 아랫녘 남의 밭을 임차한 적이 있었고, 그 밭에는 우리 내외가 씨앗으로 갈았던 정구지가 제법 있다. 그것들은 크게 돌보아주지 않았음에도, 벌서 여러 해째 싱싱하게 자라는 편이다. 게다가 그 종자가 좋았던지 몰라도, 비늘잎이 여느 정구지와 달리, 넓고 맛도 좋았다. 나는 승용차를 몰아 그곳으로 갔다. 그 조밀한 정구지 무리들 가운데서 제법 많이 솎아서 삼태기와 고무다라에 가득 담아 내 농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일찍이 본 바는 있어서, 포기에 묻은 흙을 탈탈 털어내고 적당한 개체수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다시 조편성을 한 것이다. 그러면 그것들은 새로운 경쟁체제로 들어가 동반 성장할 테니까. 거기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가위를 집어 들고, 흰 머리카락처럼 생겨먹은 실뿌리를 가차없이 잘라내었다. 나의 작업은, 마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단발머리를 만드는 행위와 같았다. 사실 나는 지난 날 내 양친과 이웃 농부들이 그렇게 자르는 걸 보고 그리 하였을 뿐이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얼핏 생각해보면, 실뿌리 하나 다침 없이 옮겨 심으면 이내 생기를 되찾을 것 같은데, 막상 그 반대로 행하니 말이다. 이 아둔함이여! 시골 출신이며,명색이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기까지 한 나. 그렇게 하는 진짜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다니! 그것이 바로 정구지를 회춘(回春)케 하는 행위다. 실제로, 정구지는 다년생 식물이다. 최초 한 자리에 씨를 뿌리게 되면, 해마다 봄철이면 소생한다. 그러나 분가(分家)를 않고,한 곳에 살면 대()가 늘어 대식구가 되고 만다. 그러면 선대(先代)는 후손들한테 치여 노쇠화하게 마련이다. 바로 그러한 때에, 농부는 새로운 터전을 장만하여 정구지를 패 옮기되, 하얀 머리털 같은 수염뿌리를 화끈하게 자르는 것이다. 문득,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브람(후일 아브라함이 된다.)이 떠오를 게 뭐람? 하느님의 분부 하나만 믿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노쇠한 몸을 이끌고 이주를 감행한 아브람. 사실 정구지한테만 회춘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네가 자주자주 원용(援用)하는 독수리의 회춘법은 아주 특별했다. 고령에 이르면, 저 높은 바위산 꼭대기에 날아올라 고독과 싸우면서, 자기 부리를 바윗돌에 부딪쳐 깬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이후에 새로 부리가 돋아나고 수명을 연장한다고도 하였다. 회춘과는 관련 없더라도, 뱀은 자신의 허물을 벗을 때마다 성장한다고 하였다. 허물을 벗지 못하면, 그것은 곧 죽음이라고도 하였다.

    위 사항은 반거들충이 농부가 오늘 정구지를 옮겨 심으면서 새삼 깨달은 사실이다. 정구지는 기양초(起陽草), 장양초(壯陽草) 등으로도 부른다. 첫 정구지는 그 누구도 주지 않고 남편한테만 준다.는 말과 통하는 이름이다. 심지어, 벽파초(壁破草)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정구지를 먹고 오줌을 갈기면, 벽조차도 뚫린다는 뜻이니 .  아무튼, 오늘 내가 옮겨 심은 정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쯤 가서 정구지를 옮겨 심고(2)를 다시 적을 요량이다. , 남은 자료가 너무 많아 부득이 그리 할밖에.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바로가기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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