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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개념(缺性槪念)’에 관해수필/신작 2019. 12. 27. 03:51
‘결성개념(缺性槪念)’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개념을‘적극개념’,‘소극개념’,‘결성개념’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밝음·광명·금속·유기체·출생·성공’처럼 일정한 내포를 긍정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적극개념이라고 하고, ‘어둠·비금속·무기질’처럼 내포를 부정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소극개념이라고 한다. ‘소경·벙어리·배고픔·죽음’등 적극개념인 듯하면서 사실은 소극개념인 것을 특히 ‘결성개념’이라고 한다.
내가 왜 위와 같은 이야기를 깔아두느냐고? 요즘 거의 온 국민이 모국어를 함부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는 거 아닌가? 대체, 어떤 종류의 모국어?
1. ‘비장애인(非障礙人)’
장애인(障礙人)들 무리에 섞여 있는 ‘몸이 성한 이들’을 ‘비장애인’내지 ‘비장애인들’들이라고들 칭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분명 ‘장애인’은 위에서 밝혔듯, 결성개념의 언어다. 사지(四肢) 멀쩡한 이들을 ‘非-’라는 부정적 접두어를 붙여 불러서야 되겠는가. 그렇다면 장애인들과 섞여 있는 ‘몸이 성한 이들’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그래, 내가 방금 쓴 말, ‘(몸이) 성한 이들’이라고 하면 큰 무리가 없겠다. ‘정상인’·‘온전한 이’ 따위로 부르면 장애인들한테 반감을 일으키겠지만.
2.‘비싸다’
값이 더 나가는 걸 두고 ‘비싸다’고 한다.
아마도 ‘싸다’ 앞에 ‘非-’가 붙었다가 ‘비-’로 굳어진 말일 듯한데... . 물론 ‘非-’는 소극개념 내지 결성개념의 어휘이다. 마케팅학 내지 상업학에 기초하면, 아니 판매자 기준이면, 물건이 질 좋고 값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게 바람직하다. 즉, 적극개념의 언어가 필요하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지 아니한가. 싼 것은 왠지 조악(粗惡)한 듯 여겨지니까. 앞으로,‘비싸다’를 ‘값어치 있다’거나 ‘값 나간다’거나 할 만하다.
3. 말 마디마다 ‘아니!’를 버릇으로 붙이는 경우
사실 내 둘레에는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습관적으로 ‘아니!’를 붙여 쓰는 이들이 많다. 어느 개그우먼의 말마따나 ‘짜증 지대로다(제대로다).’이다. 아주 고약한 언어습관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주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결성적(缺性的)인 개념만 가득 찬 듯. 나는 그런 언어습관을 지닌 이들을 부를 때 ‘아니 어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대꾸를 곧잘 하게 된다.
“‘안’이(아니) 뒤집으면(뒤집히면) ‘겉’이 되어요. 이야기 어서 이어가보세요.”
사실 습관적으로 ‘아니!’를 자주 쓰는 이들의 이야기는, 축구경기에서 수비수가 상대선수한테 ‘백태클’을 하는 듯하다. (둘 사이) 대화의 갈 길은 먼데, 백태클하고 ‘토를 다는’ 듯싶어 그런 언어습관을 지닌 이들과 대화는 다시 말하거니와 짜증스럽다.
최근 나는 이 ‘아니 알레르기 증세’가 유독 심한데, 엊그제 내 아내한테서도 그 ‘아니 증후군’을 발견하고 말았다.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아파트 보일러가 탈났는데, 전기주임이 점검결과를 알려주기를... .”
나는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뜸 A/S센터에 전화하라고 일렀다.
사실 나는 그 전기주임으로부터 미리 전화를 받아 내용을 알고 있었으며, 또 내가 1년 반 아파트 전기주임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어, 응급조치 요령도 터득한 터. 그러함에도 아내는 거듭거듭 “아니, 그게 아니고 ...... 아니, 그런데 저런데...... .”
한마디로 훽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낮 동안 아파트 경비실에서도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그 눔의 ‘아니 어른들’ 때문에 지쳐 있었는데... .
4. ‘-었었다’, ‘보여지다’, ‘저희 나라’, ‘가장 위대한 작곡가들 가운데 한 분’
사실 위 ‘4’에 소개하는 어휘들은 결성개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생각 없이, 그야말로 요즘 아이들 말마따나 ‘개념없이’ 쓰기에 다뤄본다.
가) ‘-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동문학가 이오덕의 주장이다. 우리 말에는 대과거시제가 없고, 이는 영어에서 따온 것이라고. 그러니 ‘갔었다’따위로 쓸 필요가 없다. ‘간 적이 있다’로 쓰면 무난할 듯.
나) ‘보여지다’
자동사 ‘보다’의 피동형은 ‘보이다’이다. ‘보여지다’ 등은 불필요한 이중피동형이니 ... .
‘진다, 된다, 되어진다, 불린다’와 같은 불필요한 피동형은 능동형으로 고쳐 씀이 낫다.
다) ‘저희 나라’
‘저희’는 ‘말하는 이가 상대방을 대하여 자기 자신을 포함한 자기와 관련되는 여러 사람들 겸손하게 가리키는 말’이다.
이른바 저명인사라고 하는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저희 나라는 ......” 하며 딴에는 겸손한 척 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화면 속에는 외국인이 없다. 말 그대로 우리끼리인데 ‘저희 나라’라니!
라)‘가장 위대한 작곡가들 가운데 한 분’
도대체 이런 말버릇이 어디 있나. ‘가장 위대한’이면 말 그대로 ‘오로지 하나(the only)’이거늘.
모국어를 제대로 쓰는 버릇을 들인다는 거.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모국어를 제대로 못 쓰면 의원도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히, 작가이거나 작가지망생이거나 모국어를 제대로 부려 쓸 역량을 갖춰야한다. 신문기자도 마찬가지이고 방송인도 마찬가지이고.
특히, ‘아니’라는 말을 자주 섞어 쓰는 내 신실한 애독자들만이라도 그 언어습관을 제발 고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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