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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난로 앞에서(77)
    수필/신작 2019. 12. 30. 07:15

                * 이 글은 이미 적은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봐’의 ‘랑데부 작품’임.

                 아래를 클릭하시면... .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봐

                       2014.04.15


                   나무난로 앞에서

               -일흔 일곱 번째, 일흔 여덟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77.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 녀석. 녀석은 그 작은 손에다 핀란드산 ‘자일리톨(xylitol) 껌’한 봉지가 들고 있다. 그 자일리톨 껌은 녀석의 에미가 충치를 앓지 말라고 택배로 부쳐준 것이다.

      녀석이 모나고 작은 껌을 그 봉지에서 꺼내 씹는다. 그러다가 이 할애비한테도 두어 개 꺼내 건네며 말한다.

      “한아버지, 한아버지도 으뜸이처럼 이 껌을 씹으면... .”

      그러나 안타까운 일. 이미 이 할애비는 왼쪽 오른쪽 아래 위 어금니가 ‘어긋매끼게’ 빠져나간 터. 껌을 씹기에는 틀렸다. 녀석이 그 걸 모를 리 없지만, 어른에 대한 배려심으로 그리한다.

      “으뜸아, 그 자일리톨 껌은 무엇으로 만드는지 아니? 그리고 왜 하필 핀란드겠니?”

      다행스레(?) 녀석이 속속들이 모른다. 해서, 내 노변담화(爐邊談話)는 또 이어갈 수 있게 생겼다.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설명해 준다.

    핀란드는 빼어난 삼림국(森林國)이고 그 나라에는 자작나무가 많다. 그 자일리톨은 자작나무 추출물로 만든다는 설(設)이 있다. 사실은 여타 나무에서도 자일리톨 성분을 추출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추출물‘자일로스’를 가공하여 만들게 된다. 다만, 핀란드의 껌 사업이 워낙 유명하니까. 자일리톨은 설탕 대용품이며 그 효능으로는 중이염을 예방하고 당뇨병 환자를 위한 설탕 대체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일리톨은 칼로리가 적고 일반 설탕보다 건강하게 당을 섭취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아이스 바’에 꽂힌 나무젓가락(?)도 거의 자작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녀석이 즐겨 사먹고 즐겨 얻어먹는 ‘H제과’의 ‘아이스쿨’에 쓰인 막대는, 전량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그 회사 ‘생산이사’로 지내는 이 할애비의 생질(甥姪)이 자랑한 바 있다.

      “한아버지, 아하, 그러쿠나(그렇구나)! 자작나무가 그렇게 사람한테 유용할 줄이야!”

      이에 임학도(林學徒)였던 할애비는 힘을 얻어, 자작나무에 관해 좔좔 이야기를 이어가게 된다.

      자작나무는 창호지 같은 그 얇고 하얀 껍질을 태울 적에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예전에는 아주 지체 높은 분들이, 귀한 손님을 맞거나 배웅할 적에 그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로 불을 밝혀다는데... . 그처럼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고급 초로 불을 밝히는 일을 ‘화촉(樺燭 ; 여기서 ‘樺’는 자작나무를 일컬음.)’이라 한다. 상서로운 결혼식을 일컬어 ‘화촉을 밝힌다’는 말이 거기서 유래한다. 한편, 자작나무 껍질은 왁스 성분 등으로 하여 방부와 방습이 잘된다고 한다. 게다가 재질이 아주 단단하다고 한다. 경주 천마총 출토 그림의 재료를 조사해본즉,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종이로 밝혀졌단다. 팔만대장경의 재료도 자작나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어디 그뿐인가. 이 할애비는 자작나무를 생각할 적마다 러시아도 떠올린다. 영화 ‘의사 지바고’에서 끝없이 펼쳐진 설원(雪原)과 거기 늠름하게 섰던 나무들. 그게 바로 자작나무숲이었다. 영화 속 ‘라라’의 모습과 그 백옥(白玉) 같던 자작나무의 수피(樹皮)가 왜 그리도 자주자주 겹쳐지던지. 그 얼음궁전(?) 둘레에 섰던 자작나무들. 사실 영화 ‘차이코프스키’에도 그러한 경치가 배경이라는데, 아쉽게도 그 영화는 여태 본 적 없다. 자작나무는 추위를 잘 견디는 강한 수종이다.

      이 할애비는 또 놓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거제수(巨濟水)’다. 그것은 자작나무과(-科)에 속하는 거제수·자작나무·사스래나무 등에서 채취하는 물을 일컫는다. 이 거제수는 고로쇠물보다 빼어난 물로도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수액의 황제’로도 통한다.

    내가 위와 같이 자작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자, 녀석은 꽤나 놀라워한다.

      “한아버지, 한아버지는 ‘나무박사’! ”

      그러면서 녀석은 봉지에서 자일리톨 껌을 또 꺼내 깨물어 먹는다.

    나무난로 불문[火門]을 열어, 자작나무 장작을 하나 더 넣는다.

     

      78.

      내가 어제 녀석한테 자작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그랬더니, 녀석이 오늘은 또 다른 나무의 수액(樹液)으로 만드는 사탕물 내지 사탕은 없는지 묻는다.

      “으뜸아, 저 캐나다의 국기 그림은 뭘로 되어 있던?”

      녀석이 잠시 오른 검지로 머리를 자기 머리를 콕 누르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답한다.

      “한아버지, 단풍나무 이파리 한 장이 달랑 그려져 있던데?”

    옳은 말이다. 캐나다 국기문양은 바로 단풍나무 이파리 한 장이다. 그 나라에는 사탕단풍이 있고, 그들은 그 단풍나무에서 사탕을 추출하여 시럽을 만들어 즐긴다. 도심 단풍나무숲에서 해마다 4월 초에 열리는 캐나다 ‘메이플 슈거 축제(Maple Sugar Festival)’가 그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생각하기에는, 국기에조차 그 단풍나무 문양을 새겨 넣은 듯.

      다음은 녀석한테‘고로쇠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아니 이어갈 수가 없다.

      “ 으뜸아, 지난 해 봄에 저 이웃아저씨로부터 우리가 얻어 마셨던, ‘나무에서 얻은 물’ 기억나니? 그게 뭐였더라?”

      녀석은 용케도 그걸 기억해낸다. 이 할애비가

      이번에는 그 고로쇠 물의 유래 내지 전설에 관해 녀석한테 들려준다.

      가) ‘도선국사道詵國師)’의 골리수(骨利樹) 설

      통일신라 말 고승인 도선국사가 오랜 수도 끝에 득도하여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펴지질 않아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려는데 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부러진 가지에서 물방울이 ‘똑똑’떨어졌다. 스님은 그 물을 받아먹자 무릎이 이내 펴졌다고 한다. 그래서 ‘골리수(骨利樹)’ 즉, ‘뼈에 이로운 나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골리수’가 변해 ‘고로쇠’가 되었다고 한다.

      나) 신라와 백제의 전투에 얽힌 이야기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대이던 지리산에서 전투 중에 병사들이 갈증으로 샘을 찾지 못하던 중 화살이 꽂힌 나무에서 흐르는 물(골리수)를 마셨더니, 갈증이 풀려 전투에 다시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지리산에 고뢰쇠나무가 많다는 걸 반증하기도 한다.

      다) 반달곰에 얽힌 이야기

      지리산 반야봉의 반달곰이 포수의 화살에 맞았을 때 산신령의 계시에 따라 골리수 수액을 마시고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도 있다. 몸이 허약해진 변강쇠가 이 이야기를 듣고 뱀사골에 찾아와 고로쇠 수액을 마시고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위 세 가지 전설을 차례차례 들려주자, 녀석은 꽤나 흥미로운지 눈빛이 반짝인다.

      “한아버지,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이 으뜸이는 한아버지랑 뒷산에 올라 고뢰쇠물을 받아와야겠는 걸! 한아버지는 요즘 무릎이 아프다면서 늘 주무르고 있으니깐.”

      고 녀석, 효심(孝心)하고는!

      사실 한방에서는 고뢰쇠나무에서 얻은 즙을 ‘풍당(楓糖)’이라 하여 위장병·폐병·신경통·관절염 환자들에게 약수로 마시게 한다.

      “한아버지, 자작나무나 캐나다 단풍나무나 고로쇠 나무밖에도 사탕을 얻을 수 있는 식물들 많다? 어디 으뜸이가 맞혀 봐? 사탕수수·사탕무·사탕야자.”

      이 할애비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하더라도, 녀석이 하나하나 대어주는 식물 이름을 듣자니, 가슴이 아려오는 식물이름,‘사탕수수’. 우리네 노인들을 괴롭히는 노인병인 당뇨병도 당뇨병이지만, 그보다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는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적 있어서다. 내 귀여운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그러한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이냐?

      또 다시 이 산마을 외단 농막에는 해거름. 조손(祖孫)은 또 많은 이야기를 남겨둔 채 털고 일어나 농막 안으로 들어온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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