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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신작 2020. 1. 7. 13:34

     

                                    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요즈음 승용차 뒤편에 무로 장식된 ‘안테나볼(antenna-ball)’을 심심찮게 본다. 파란 무청까지 달린, 실물과도 같은 무. 잘은 모르겠으나, 그 실물과도 같은 ‘무’가 ‘없을 無’와 그 발음상 같기에, ‘무사고(無事故)’를 기원하는 일종의 부적(符籍)의 개념에서 출발했을까. 사실 민간에서는 이사 때에 무를 비방(祕方)으로 쓰는 예도 있기에 그렇게 추측해보는 것이다. 미신을 좋아하는 부인들은 이사하기에 앞서, 무속인을 찾아가 길일(吉日) 따위를 두둑한 복채(卜債)를 들여 묻게 된다. 그러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올해는 동남간(東南間)이 삼살방(三煞方)이오. 그러니 부득이 동남간으로 이사를 해야할 거면, 이삿짐 나르기 전에 미리 그곳에 가서 무청을 자른 무를 방마다 네 모서리에 거꾸로 세워두시오. 그러면 무탈·무사할 거외다.”

      사실 ‘무’는 오랜 동안‘무우’로 불러 왔다. 그러다가 ‘문교부고시 88-1’한글맞춤법 개정으로 졸지에(?) 외자인 ‘무’가 되었다. 작가인 나는‘무우’가 ‘무’로 바뀐 진짜 이유를 참말로 모르겠다. 짚이는 게 영 없지는 않지만... . 그 ‘짚이는 게’란 대체 뭐냐고? 지금 ‘교육부’의 전신(前身)인 ‘문교부’는 학부형들로부터 ‘무우’로 말미암아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 그래서 아예 ‘무우’를 ‘무’로 바꾸어버린 건 아닐까 하고서. 요즘 우리네가, 상대가 대단히 못마땅하다고 여길 적에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엿 먹어라.”가 그것이다. 그 말의 유래는 ‘무’의 옛말인 ‘무우’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

      60년대에는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렀다. 사실 거슬러, 나도 당시 시골 마지막 한 회수 앞 중학교 입학시험 세대다. 이미 대도시는 두 해 전에 중학교 입학시험이 사라진 뒤였다. 어쨌든, 1965년도 중학교 신입생을 선발하는 경기중학교‘자연’ 과목 시험 문제 가운데 엿과 관련된 문항이 있었다. 엿기름 대신 엿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 출제자인 문교부에서 원하는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다. 녹말을 분해하여 소화하는 효소로서, 우리 침 속에도 들어 있다. 그런데 문제의 보기 중에 ‘무우즙’도 들어 있었다. ‘무우즙’이라고 답을 적은 고관대작의 자제들이 그 한 문제로 말미암아 명문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이가 38 명. 사실 무우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고, 엿을 만들 수 있다고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도 버젓이 적혀 있는 터. 치맛바람이 드세던 그 시절, 그 한 문제로 입학시험에 탈락한 학부형들은 무우즙도 정답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행정소송까지 하게 이르게 된다. 극성스런 어머니들은 기어이 무우즙으로 조청을 만들고 그것으로 엿을 만든 다음 교육부 수장한테 들고 간다.

      “장관님, 저희가 무우즙으로 엿을 만들어 왔어요. 어디 한 번 저희가 무우즙으로 만든 엿 잡수어보시겠어요?”

      당시 문교부 책임자는 그 일로 사임하고, 그 38명은 정원 외 추가 입학이 허락되었으며, 그때 판결에 인용된(?) 문헌은 ‘브리태니커백과’였다는데, 그 아름드리 되는 백과사전에서 그 작은 문자들은 또 어떻게 찾아냈을까 싶다. 사실 ‘엉겅퀴’란 의미를 지닌 ‘브리태니커’는 나의 첫 직장 아닌 첫 직장이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외판원이었으나, 나는 단 한 권도 팔지 못했으니까.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계속 “엿 먹으시오.” 또는 “엿이나 먹으시오.”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 나는 파[蔥] 못지않게 무를 좋아한다. 가족과 떨어져 산속 외딴 농막에 사계절 독거노인처럼, MBN의‘나는 자연이이다’출연자들처럼 살아가는 나. 나한테는 무가 아주 좋은 반찬거리이다. 겨우내는 밭에다 ‘무 구덩이’를 파고, 거기다가 몇 접의 무를 묻어두곤 한다. 그 무를 쇠창으로 찔러 꺼내 반찬을 하게 된다. 무시래기와 총총 썬 무를 넣고 청약고추를 썰어넣고...... 멸치 몇 마리를 넣고...... 그렇게 끓여낸 된장찌개. 그 맛으로 논하자면, 그 어느 요리보다도 맛난다는 거. 더러는 막걸리 안주로 생무를 깎아 썰어 씹곤 한다. 그렇더라도, 내가 아쉬워하는 무가 든 요리가 영 없지만은 않다. 갈치나 꽁치나 고등어의 조림에는 무가 필수 식자재 아니었던가. 무를 제법 길쭉하고 굵게 썰어 냄비에다 받침(base)로 깔고, 그 위에다 이런저런 양념과 더불어 당해 해물을 얹어 끓여 내면, 그 모든 맛이 무에 집약된다고나 할까, 응집된다고나 할까 그러한 맛을 즐겼던 기억. 사실 조림 요리는 무만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도 그만이었다. 또, 어릴 적 시골에서 내 양친은 겨우내 항아리를 땅에 묻고, 거기다가 김장김치를 담그곤 하였는데, 그 김장 속에 무를 세로로 절반씩 썰어넣곤 하였다. 온갖 양념의 즙이 녹아있던 그 무는 왜 그리 맛있던지. 그리고 그리고 겨울방학 동안 호롱불 아래서 이른바 편윷을 놀았던 기억. 지는 편이 낮 동안 미리 봐 두었던 숙선이네 무우 구덩이에서 무를 ‘훔쳐오기’였으니까.

      ‘아, 모두 다 ‘메리 홉킨(Mary hopkin)’이 노래한, ‘지나간 시절(Those were the days)’인 걸!’

    여기서 잠시. 아래를 클릭해보세요.

    메리 홉킨(Mary Hopkin) - Those were the days(지나간시절) 가사/해석

    2018.11.24

      끝으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무와 관련된 이 성인유머를 도저히 빼 놓을 수가 없다.

    문제다.

      “무와 여자의 공통점 둘은 ?”

      그 답은, ‘무와 여자는 바람 들면 아무짝에도 못 쓴다.’와 ‘무나 여자는 고추(고춧가루)와 버물어 먹어야 맛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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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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