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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난로 앞에서(85)수필/신작 2020. 1. 17. 01:49
나무난로 앞에서
-여든 다섯 번째, 여든 여섯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85.
나무난로 뚜껑 위에는 스테인리스주전자가 얹혀있고, 그 주전자의 뚜껑이 들썩이며 물이 끓고 있다. 이젠 제법 우러난 듯하여 두 개의 컵에 차례로 따라 조손(祖孫)이 각각 하나씩 들게 된다.
“한아버지, 지난번엔 헛개나무차였는데, 이번엔?”
이 할애비는 ‘영지버섯’으로 만든 거라고 일러준다. 녀석은 이 할애비처럼 ‘후후’ 불어 차를 식힌 후 한 모금 마시더니, 금세 ‘퉤퉤’ 뱉어낸다.
“한아버지, 완죤(완전) 써.”
나는 아랑곳 않고 영지버섯차를 연거푸 따라 마신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으뜸아, 본디 몸에 좋은 약들은 쓰다고 하지 않던?”
그러면서 영지버섯에 관해 좔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준다.
기원전 26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 전, 중국 진(秦)나라 황제 진시황(秦始皇)은 오래오래 살고자 동남동녀(童男童女) 500명을 풀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명했다. 그들 일부는 제주도에까지 와서 불로초를 기어이 구하고자 애썼다. 그들이 들고 간 것은 불로초가 아닌 전복과 오분자기(떡조개)였다는데... . 그렇게도 불로장생하고자 애썼던 진시황도 정작 49세까지밖에 못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진시황이 구하고자 한 불로초는 다름 아닌 영지버섯. 사실 영지버섯의 정식학명(正式學名)도 불로초. 영지버섯은 각종 암· 동맥경화·위염·혈전증 등등 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이어가자, 녀석이 한마디 거든다.
“한아버지, 그라뭐(그러면) 영지버섯이 진짜불로초 맞네? 근데(그런데) 영지버섯은 어디에서 자라?”
녀석의 질문이 용하다. 해서, 나의 노변담화는 또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 대개의 버섯과 마찬가지로, 영지버섯도 죽어가는 나무 또는 죽은 나무에서 자라. 이 점 놀랍지 않니? 어떤 버섯이 자라면, 그 나무는 죽어가거나 죽은 것임을 나타내니까 말이야! 바꾸어 말하자면, 나무한테는 버섯이 암(癌) 같은 존재인데, 그러한 암덩이가(?) 인간한테는 암을 낫게 하다니!”
영리한 녀석은 금세 말귀를 알아차린다.
“한아버지, 동물과 식물은 완죤(완전) 반대네? 동물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다고 했으니... .”
녀석은 언젠가 이 할애비가 들려준 적 있는 식물의 탄소동화작용 즉, 광합성의 메커니즘[機作]을 떠올린 모양이다. 사실 나는 녀석한테 녹색 이파리를 지닌 식물들은 이산화탄소와 물과 햇빛을 합성하여 녹말을 만들어낸다고 일러준 적이 있다. 그때 녹색식물은 이산화탄소를 쓰고 산소를 버리게 된다. 해서, 우리가 햇빛이 쨍쨍한 낮에 숲속에 가면, 맑은 산소를 한껏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준 바 있다. 대신, 밤에는 식물들도 광합성을 멈추고 산소를 많이 마시는 관계로, 방에 화분을 그대로 두면 그것들과 산소를 갈라마셔야하므로... .
녀석한테 재차 똑똑히 일러준다.
“으뜸아, 영지를 비롯한 많은 버섯들은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식물에 자라. 나무한테는 버섯이 암적인 존재야! 그런데 사람한테는 그 많은 종류의 버섯들이 암병을 낫게 하는 등 좋은 약이 된단다.”
이 말을 듣던 녀석이 나름대로 새겨듣는다.
“한아버지, 나무는 죽어서도 사람한테 이로운 일만 한다?”
녀석이 기특하여 영지차 한 잔을 더 따라주자, 이번에는 쓰다달다 말없이 잘도 마신다.
86.
조손은 다시 나무난롯가. 어제(85화)에 이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나는 녀석한테 질문부터 하게 된다.
“으뜸아, 우리가 숲속에 들어서면 더 상쾌해지는 이유를 알고 있니? 하기야 이 할애비의 외딴 농막에 있어도 공기는 그야말로 ‘상쾌· 유쾌· 통쾌’이지만... .”
그러자 녀석은 복습이라도 하듯, 어제(85화)에 들려주었던 ‘나무의 탄소동화작용’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즉, 나무는 잎의 뒷면 기공(氣孔)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들이쉬고 산소를 내쉬는 덕분이라고.
“으뜸아, 그 이유말고도,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나무가 내뿜는 ‘꽃다운 풀[芳]의 향기’ 즉 ‘방향(芳香)’이 있어서 그래.”
녀석은 그 ‘방향’이 뭐냐고 되묻는다.
“으뜸아, 자주자주 텔레비전에서 편백숲이니 편백나무니 ‘피톤치드(Phytoncide)’니 하는 말 들어보지 않았니? 나무가 내뿜는 방향물질이 바로 ‘피톤치드’라는 거야. ”
이 말을 듣던 녀석은 더 상세히 알고픈 표정이다. 이에 이 할애비는 보다 정확히 알려준다.
1937년 저 러시아 레닌그라드대학 생화학학자 토킨(Boris P. Tokin)박사가 최초 이름지어 부른 게 ‘Phytoncide’다. 그리스어로 ‘Phyto(파이토)’는 ‘식물’을, ‘-cide(사이드)’는 ‘죽이다’를 각각 뜻한다. 세계 공통어인 영어식 발음으로 ‘파이톤사이드’로 불러야 옳다. 그러함에도 안일하게도(?), 우리네 수목 관련 학자들이 일본어투로 ‘피톤치드’로 번역해놓았을 따름이다. 그러니 명색이 작가인 나와 작가의 외손주인 녀석 둘만이라도 앞으로 ‘파이톤사이드’로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는 ‘한민족정기’와도 관련된다고 보니까.
사실 태곳적부터 나무들한테는 140여 종‘방향물질’이 존재해왔다. 토킨 박사는 그 방향물질을‘파이톤사이드’라고 최초 불렀을 뿐이다. 나무들이 지닌 방향물질은 ‘테르펜(terpene)’이라고 부르는 휘발성 액체다. 정유(精油)·수지(樹脂) 형태이기도 하다.
“으뜸아, 그렇다면 나무들이 왜 그러한 휘발성물질을 지닐까?”
그러자 녀석은 다행스레(?) 고개를 연신 갸우뚱대기만 한다.
“으뜸아, 나무들은 생존본능으로, 그 휘발성 물질을 내뿜음으로써 기생충·박테리아·곰팡이 등을 얼씬대지 못하게 해.”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두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말한다.
“나무들, 참으로 영리해. 으뜸이도 똑똑하지만, 나무들 ‘짱’이야!”
나무난로에 방금 집어넣은 소나무장작과 노간주 장작에서 연기와 함께 그 진이 타는 내음이 물큰하다. 녀석은 타는 나무 진 내음에 양미간을 찌푸린다.
“으뜸아, 이 내음이 바로 방향물질이고 테르펜이며 파이톤사이드인 걸! 소나무는 ‘리그닌(lignin)’이란 물질, 노간주는 두송(杜松; Juniper), 두송의 열매 기름(juniper oil)으로 만든 술은 두송주[杜松酒; 註1)진(gin)]인 걸.”
녀석은, 애비에미와 떨어져 이 한갓진 숲속 외딴 농막에서 외할애비와 나무 이야기를 이처럼 끝없이 나누며 지내는 걸 전혀 지루하게 여기지 않는 기색이다.
註1)
‘진’은 노간주나무열매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genievre’에서 나왔는데,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genever’로 바뀌었고, 다시 영국인들이 ‘gin’으로 줄여서 썼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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