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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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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턴(1)
    수필/신작 2020. 8. 28. 00:09

                                                                              U턴(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우리네는 승용차를 몰아 늘 달리던 길도 멈추어 서야 할 지점을 지나쳐버릴 때가 있다. 주로 잠시잠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빚어지는 일. 이러할 적에는, 특히 그 많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왕복 4차선 혹은 왕복 8차선에서는 도리 없이 순차적으로 차선을 안 차선으로 옮긴 후 최종적으로 제1차선을 택하고, 한참 동안 더 달려서 결국 찾게 되는 교통표지판이 바로 ‘U턴’. 오늘 새벽 출근길에서도 나는 그 고마운 ‘U턴 차선’의 도움으로, 목적지인 어느 아파트 경비실 앞에 지각 않고 승용차를 세울 수 있었다.

      지금은 홀로 앉은 경비실. 그 동안 태무심(殆無心)했던 ‘U턴 표지판’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내가 오늘 새벽, 그 표지판의 도움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따로 있다. 일전, 또 다른 어느 맹랑한(?) 여류 수필가가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내내 생각하다가 벌어진 일. 사실 나는 그가 부쳐온 수필집에 관해, 짧게 e메일로 독후감을 적어보냈으되, 이미 인터넷 매체에 발표한 나의‘수필로 쓰는 수필론 - 이기기론(-論)’으로 갈음했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여기를 인터넷 검색창에다 ‘윤근택의 이기기론’ 치면,그 원문을 읽을 수 있다.

    http://blog.daum.net/yoongt57/645

      그 글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적고 있다.

      < 사실 나의 위 ‘이기기론’은 윌리엄 와트, 리드,맥크리먼 등의 주장을 아울러서 달리 말했던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한 편의 수필작품은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이 있지 아니한가. ‘천사가 입는 옷은 솔기 즉 재봉선이 없다.’는 말이다. 한 편의 수필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또, 훌륭한 자동차 판금부 직원은 용접을 하되, 그 부위를 사포(砂布)로 문질러 매끈하게 한다. 한 편의 수필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누더기 같이 더덕더덕 이질적 문장들이 혼집되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처럼 그야말로 ‘변죽(邊죽)’을 울리는 데 그쳤건만, 그 독후감을 읽은 그는 이내 내 휴대폰에, 발끈해 하며 맹랑한 문자메시지를 남겼던 것이다. 자기는 수필쓰기가 구원을 받는 일일뿐. 시시콜콜한 문장기술론(文章技術論)이니 어법(語法) 이니 태클을 거는(?) 나의 태도가 몹시 역겹다는 내용이었다. 그 맹랑함이여! 그 낟알 많이 담을 수 없는, 작은 종지그릇이여! 평소 승용차를 손수 몬다는 그는, U턴의 매력을 참말로 모르는 성싶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길을 ‘어긋들었다’고 싶으면, 곧바로 U턴을 하면 된다.

      U턴, 참으로 유익한 교통표지판이다. 사실 U턴은 ‘코페르니쿠스적(-的) 대전환’이니 ‘발상의 대전환’이니 하는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나는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이제금 힘주어 말한다.

      “사고(四考)는 처녀의 젖가슴처럼, 애인의 젖가슴처럼 말랑말랑해야 한다.”

      참말로, 자기 틀에 갇힌 ‘땐땐무시’한테는 발전이 없다. 참, ‘땐땐무시’란, ‘땐땐한 무시고무’즉, ‘땐땐한 지렁이고무’의 일본어식 표현이다.

      이제 U턴과 관련한 나의 이야기는 한 걸음 성큼 나아가, 성인과 아이들의 뇌 용량의 차이점에까지 닿는다. 흔히들 말한다.

     “성인들 상대로 한 ‘(정신) 교육’은 ‘말짱 황’이다. 돌아서면 다 잊어버린다.”

    왜 그런고 하니, 그 동안 그 피교육생들인 성인들 뇌에 축적된 온갖 정보들은 고정되어, 새로운 정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라는 거. 쉽게 말해, 자기 방식으로 사물을 받아들인다는 거.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確證偏向)’이란 말을 쓴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성인들의 뇌와 달리, 아이들의 뇌는 축적된 정보가 적어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갈 틈이 충분하다. 해서,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피트모스(泥土이끼;床土)’가 물을 머금듯, 아이들은 이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성인들 가운데에서 ‘깨우침’ 내지 ‘깨기’를 제대로 행한 이는, 위에서 이미 소개한 ‘코페르니쿠스’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그는 그 동안 거의 온 인류가 줄기차게 믿어왔던 ‘천동설(天動說)’을 떨치고 ‘지동설(地動說)’을 밝혀냈으니까. 그는 부단한 천체연구로 그 진리를 얻었겠지만... 심하게 말하자면, 성인들의 그 확증편향은 전기고문 내지 날벼락으로만 뜯어고칠 수 있다. 실제로, 역사상 날벼락을 맞고 개심(改心)한 이가 있었다. 아래는 본인의 수필, ‘어떤 편지’의 일부분이다. 인터넷 검색창에다 ‘윤근택의 어떤 편지’ 치면, 원문을 읽을 수 있다.

      <그분의 본명은 ‘사울(Saul)’이었다. 유대인 명성가의 자제였고,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점령군마저도 함부로 체벌(體罰)하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고명한 율법학자 ‘가믈리엘’의 제자로 그리스 문화에 대한 교육도 받았으며, 열렬한 바리새이(Pharisee)였기도 하였다. 그러했던 그분은 ‘대제사장’의 명을 받들어,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리스도 교도들을 잡으러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향한다. 그런데 날벼락 아닌 날벼락을 맞게 된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맹인이 되어버린다. 그때 그분은 천상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 순간, 그분은 개심(改心)하게 되었고, 사흘만에 눈에 씐 비늘이 벗겨져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길로 그분은 ‘바오로(Paulus)’로 개명하고, 예수님의 증거자가 되어 3회에 걸쳐 총 20,000km ‘대전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실 그분의 며칠간 실명(失明)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날벼락’으로 인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흔히들, 성인(成人)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교육은 효과 ‘빵떡’이라고 한다. 즉, 성인의 사고(思考)는 굳어져 있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무슨 방법으로도 남이 근원적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 새벽 출근길에서 U턴을 하였다. 잠시잠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행할 수밖에 없었던 U턴. 하더라도, 그 U턴의 참맛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편, U턴과 유사한 ‘P턴’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다가 덤으로 알게 되었다. 영문자 ‘P’꼴로 그려진 표지판인데, 자동차 진행방향에서 우회전을 거듭함으로써 목적지로 방향을 틀도록 설계된 도로에 설치되어 있다. 서양인들은 이 ‘P턴’을 두고, ‘물병손잡이(Jug-handle)’라고 부른다는 것도 흥미롭고.

      힘주어 말하거니와, U턴은 우리네 삶에 퍽이나 유익하다. 다시금 말한다.

      “사고(四考)는 처녀의 젖가슴처럼, 애인의 젖가슴처럼 말랑말랑해야 한다.”

     

     

      작가의 말)

      이 ‘U턴(1)’은 어느 여류 수필가의 문자메시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러니 그이한테 감사를 드린다. 곧, ‘U턴(2)’, ‘U턴(3)’으로 연작물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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