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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턴(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나 같은 늙은이들 방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과년(過年)한 딸년들 둘을 슬하에 두고 있다. 하나는 집의 나이로 서른여섯, 또 하나는 집의 나이로 서른 넷. 두 녀석은 이 애비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곧잘 “또 저 도돌이표!”하며 지겨워한다. 사실 우리네도 어렸을 적에 양친의 중언부언(重言復言)의 이르심을 녀석들처럼 받아들이곤 하였다. “두 번만 더 들으면 100번째에요.”하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차츰 늙어가는가 보다. 흔히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하는 심정에서 비롯된 말을 그렇게 자주 함으로써 녀석들한테 음악용어를 원용(援用)하여 도돌이표’ 운위(云謂)토록 것이겠거니.
문득, 교통표지판 ‘U턴’과 음악용어 ‘도돌이표’가 유사점을 지녔다는 데 흠칫 놀라게 된다. 어쨌든 둘 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도록 지시한다는 거. 교통 표지판 ‘U턴’에 관해서는 이미 전편(前篇) ‘U턴(1)’에서 다뤘으니, 이번에는 ‘도돌이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아야겠다.
도돌이표란, 다들 너무도 잘 알다시피, ‘악보에서, 어느 부분을 되풀이해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도록 지정하는 기호’를 일컫는다. 이 도돌이표 자체만으로도 악보상 꽤 의미있는 기호이다. 말 그대로 ‘반복연주’로 우리네 ‘음악 중독성을(?)’ 더해주는 까닭이다. (이하는 본인의 수필, ‘변주에 관해서’의 일부분이기도 함. 인터넷 검색창에서 ‘윤근택의 변주에 관해서’를 치면, 전문을 읽을 수 있음.)그런가 하면, 기악형식에는 ‘론도형식(Rondo form)’이란 게 있다. 이 또한 ‘되돌아감’내지 ‘되풀이(반복)’의 의미를 지닌 악곡 형식이다. 하나의 주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주제와 부주제가 교차적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17세기의 음악 형식을 론도 형식이라고 한다. 도해화하자면 이렇다. ABAC, ABCA ABCA. 여기서 A는 주제이고 B나 C는 에피소드다. 음악에서 론도형식은 위에서 이미 밝혔듯, 우리네 음악 중독성을 한층 드높여준다. ‘반복’ 내지 ‘되돌아감’의 묘미다.
문학작품에서도 음악에서 말하는 론도형식과 유사한 형태가 있다는 거.‘론도형식’과 관련이 깊은 변주. 특히 시(詩)에서 쓰이는 말이다. 이른바, ‘시어(詩語)의 변주’라고 하는 말. 요컨대, 시어를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시구를, 반복되는 과정에서 시어를 바꿔서 사용함으로써 운율적인 인상과 의미 강조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사구조(統辭構造)의 반복’ 또는 ‘문장구조의 반복’이라고도 한다. 이를 ‘U턴’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돌아감’이라는 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좋은 예에 해당한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관형어+ 부사어+서술어, 관형어+부사어+서술어 구조임.)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대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부사어+목적어+ 서술어, 부사어+목적어+ 서술어 구조임.)’
이밖에도 문학에서 말하는 ‘수미상관(首尾相關)’도 나는 ‘U턴’과 의미가 통한다고 이제금 말한다. (이상은 본인의 수필, ‘변주에 관해서’의 일부분이기도 함. 인터넷 검색창에서 ‘윤근택의 변주에 관해서’를 치면, 전문을 읽을 수 있음.)
위에서 차례차례 다뤘던 모든 사항들이 하나같이 ‘ 반복’내지 ‘되돌아감’과 통하는데... . 그러하더라도 안타깝고도 슬픈 일 하나. 내 피붙이, 살붙이들은 하나하나 ‘U턴’을 영원히 못한 채 내 곁을 떠나 그 어디론가 ‘쌩쌩’ 앞만 보고 달려가버렸다는... . 내 양친, 셋째누님, 다섯째누님이자 막내누님에 이어, 요 며칠 전에는 나의 백씨(伯氏)마저 끝끝내 U턴을 못한 채, U턴 신호를 잊은 채 차례차례 달아나버렸나니.
나는 이제 내 신실한 애독자들한테 탄식조로 말한다.
“우리네 인생은 U턴 표지판도 없는가 보아요. 도돌이표도 없는가 보아요. 그 중독성의 론도형식도 아닌가 보아요. 참말로, 쏜살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네요. 부메랑은 잘도 되돌아오던데요.”
아, 그리고 나의 여생도 그러할지니!
작가의 말)
이 ‘U턴(1)’과 ‘U턴(2)’는 어느 여류 수필가의 맹랑한(?)문자메시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러니 그이한테 머리 조아려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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