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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난로 앞에서- 아흔 아홉 번째, 일백 번째 이야기 -수필/신작 2020. 10. 13. 01:57
나무난로 앞에서
- 아흔 아홉 번째, 일백 번째 이야기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99.
조손은 또 다시 나무난롯가. 오늘따라 겨울바람이 유난히 드세다. 유리창은 바람에 ‘들들’거리고,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몸을 옹크리며 나무난로가 벌겋게 익을 정도로 장작을 더 태우자고 한다. 해서, 불문을 열어 불감이 좋은 떡갈나무 장작을 하나 더 넣는다.
맞은편 의자에 앉은 녀석은 유리창 밖을 가리키며 말한다.
“한아버지, 저기 감나무 꼭대기를 내다봐. 이제 몇 이파리만 가지를 떠나지 못하고 매달려 바람에 팔랑거려. 왠지 저 이파리들이 불쌍해. 글고(그리고) 한아버지가 곁에 있어도 오늘은 쓸쓸하기만 한 걸.”
고 녀석하고는! 이 할애비도 어린 날 그랬다. 부스스 낮잠에서 깨어나니 다들 들에 나가시었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내다본 앞밭 밭둑 뽕나무 가지에는 뽕잎이 몇 이파리만 남아 있었다. 해서, 슬퍼 마구 앙앙댔다. 머리가 깨질 정도로 울었다.
“으뜸아, 그러고 보니 네도 유전적으로 이 할애비를 닮아, 예술가 기질이 있는 거 같애. 저 감나무 이파리들이 가지 곁을 떠나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는 이따가 들려주기로 하고... . 음~ 명작 단편소설 줄거리를 먼저 들려줄 게.”
그러자 녀석은 귀를 쫑긋해서 들으려 한다.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오 헨리(O. Henry,1862~1910)’의 대표작인 ‘마지막 잎새’줄거리인 걸. 사실 그는 아주 어릴 적에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에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어. 오 헨리 역시 폐결핵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서 건강이 늘 나빴대. 그래서 48세 아까운 나이에 골골대다가 세상을 떠났지. 어쩌면 그 작품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 ‘존시’는 자기 자신이었을 수도 있어. ”
녀석은 이 할애비의 서두가 위와 같이 길어지자 줄거리를 곧바로 들려달라고 조른다,
해서, 내가 녀석한테 들려주는 줄거리다.
<가난한 ‘존시’와 ‘수’는 워싱턴 스퀘어의 서쪽에 있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구역에 살고 있었다. 특히, 존시와 수가 살고 있는 그리니치 빌리지는 가난하고 실험적인 지식인, 학생,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존시와 수는 한 식당에서 만나 서로가 비슷한 취향을 발견하고 공동 작업실을 내기로 하게 된다. 그 곳은 그 동네의 아주 납작한 벽돌집 꼭대기 방이었고, 그것은 6월이었다.
11월이 되자 폐렴이 예술가 부락에 퍼지게 된다. 폐렴은 존시를 강타하게 되고 존시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점점 더 쇠약해져 간다. 의사는 존시가 살 수 있는 가망이 열에 하나 정도라고 하고 그나마도 그녀가 살아갈 의욕이 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 날 부터인가 존시는 창밖에 있는 무언가를 세기 시작하였는데, 다만 거꾸로 셀뿐이었다. 그녀는 뿌리가 썩고 마디가 뒤틀어진 담쟁이덩굴에 있는 잎들을 세고 있었다. 그녀는 담쟁이덩굴에 붙어있는 마지막 이파리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한다. 수는 그런 그녀에게 바보처럼 굴지 말라며 삶의 의욕을 갖도록 위로하나, 존시는 그런 그녀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한편, 수는 실패한 늙은 예술가인 버먼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항상 걸작을 그리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결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약간의 돈을 벌 뿐이고 그 돈마저도 술을 사 마신다. 수의 이야기를 들은 버먼은 눈물을 흘리며 존시의 멍청함을 지탄한다. 그날 밤은 비가 몹시도 많이 내렸다. 한편 위로 올라간 수는 드디어 마지막 잎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던 가운데 존시는 다음날이 되어도, 또 다음날이 되어도 그 잎새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죽기를 원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드디어 존시는 점점 회복되어 가고 나중에는 완전히 회복된다.
그날, 수는 존시한테 버먼이 오늘 병원에서 죽었다는 말을 한다. 그는 당시 완전히 몸이 젖어있고 몸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상태였다. 아무도 그가 어디 있었는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사실 비가 몹시 내렸던 그날 밤, 버먼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것을 보고 그 잎새를 몰래 그려 놓은 것이다. 결국 버먼은 그렇게 걸작을 남기고 떠났다.>
이 할애비의 ‘마지막 잎새’ 줄거리를 듣고서는 녀석이 감동어린 목소리로 크게 소리친다.
“ 한아버지, 버먼 할아버지는 참말로 훌륭한 화가셨어. 존시 생명의 은인이셨던 거야.”
“으뜸아, 사실 위에서도 언뜻 이야기하였지만, 작중인물 존시는, 폐결핵으로 한평생 골골댔던 작가 오 헨리 자신인 것 같지 않니? 그리고 그는 그 작품을 통해 죽는 그날까지 삶의 끈을 끝끝내 놓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지 않니?”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으뜸아, 저 창밖 감나무 꼭대기의 이파리들이 가지 곁을 떠나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는 진짜로 이따가 들려주기로 하고... . 또 다른 ‘마지막 잎새’ 이야기를 들려주련?”
녀석은 쾌히 승낙의 ‘고개 끄덕임’을 보여준다.
“으뜸아, 우리나라에 1960년 후반을 풍미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남자 트롯가수가 있었다? 그가 누구이게?”
녀석은 알 턱이 없다.
“ 그가 ‘배호(裵湖, 1942~1971)’ 가수였어. 만성 신장염으로 고생하다가 29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어. 그는 죽기 4개월 전에 자기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러한 노래를 불렀어. 유작(遺作) 즉, 죽은 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노랫말은 이렇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한아버지, 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자신을 ‘마지막 잎새’로 빗대 노래한 거네?”
고놈 참으로 영리하다. 이해력도 어른 못지않다.
“자, 이제 왜 한 겨울임에도 저 감나무 꼭대기 잎새 몇은 가지 곁을 못 떠나는지 알려주어야지. 그건 말이야...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생명 가진 이들이 부여받은 ‘미션(mission)’ 곧 ‘임무’를 저 잎들은 해내지 못했기 때문인 걸.”
그러자 녀석이 더욱 궁금해 한다.
“한아버지, 그 ‘미션’ 이 도대체 뭐길래?”
이처럼 ‘Q&A’즉 ‘질문과 응답’은 학습효과를 증진하게 된다.
“ 그 미션이란, 저 잎들이 후사(後嗣)를 두는 거. 후사란, 대를 잇는 아들을 일컬어. 저 말라비틀어진 잎들 겨드랑이에는 꽃눈이나 잎눈이 돋아나지 않았거든. 그래서 차마 가지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저렇게 말라가.”
“한아버지, 말 못하는 이파리들도 저처럼 영혼이 깃들어 있다니 놀랍기만 한 걸! 아, 그러고 보니, 으뜸이가 퍼뜩 떠오르는 게 있다? 지난 가을에 한아버지가 복숭아 눈접[芽椄]을 할 때에 눈[芽]만 똑 떼다가 복숭아 가지에 접을 하지 않았다? 글고(그리고) 며칠 후에 접이 되었는지 여부를 아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녀석은 용케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때 이 할애비는 잎자루와 반쯤 가위로 자른 잎을 다치지 않게 붙여둔 상태에서 눈[芽]을 떼서 접을 하곤 하였다. 그렇게 하면 생명활동을 연장시켜주는 효과도 있지만... . 그런 연후에 며칠 기간이 지난 다음 녀석과 함께 그 잎자루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려 보고 접의 활착(活着) 여부를 확인하곤 하였다. 그때 잎자루가 가볍게 떨어지는 놈은 활착이 된 것이고, 반대로 잎자루와 잎이 미련스럽게(?) 떨어지지 않는 놈은 접이 아닌 된 거라고 외손주녀석 으뜸이한테 일러주었다. 그 점이 위에서 이야기한 ‘후사를 봄’과 관련이 있다. 잎들은 저마다 자기가 떠나기 앞서 잎겨드랑이에 떨켜[離層]를 만든다. 잎들은 그처럼 후사를 두게 되면, 홀가분하게 겨울바람의 등쌀을 핑계삼아 떠난다.
“한아버지, 어떤 작은 생명체도 허투루 볼 게 없네. 자연은 알아갈수록 신비스러운 걸. 그래서 으뜸이는 유치원도 아니 가고 게임기도 아니 가지고 놀아도 이 산속 한아버지네 농장에서 함께 지내는 것만 해도 축복인 거야! ”
모르긴 하여도, 녀석은 뒷날 훌륭한 수목학 박사가 될 듯. 너무도 기특하여 나무난로 맞은편 녀석한테로 가서 녀석을 덜렁 안고 농막으로 향한다. 또 다시 산골 외딴 농막에는 어둠이 내리고.
100.
이제 이 시리즈물은 제 100화의 문턱까지 닿앗다. 몇몇 날 머리를 더 짜내어 의미로운 제100화를 이어갈 것이다.
작가의 말)
이 글 시리즈물을, 제 99화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분들에 대한 특별배려입니다. 나의 큰딸은 집의 나이 서른여섯임에도 아직 미혼입니다. 자연 작중인물 외손주 ‘으뜸’은 아직 이 농막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물은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갈 겁니다.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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