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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한 번째, 일백 두 번째 이야기 -
    수필/신작 2020. 12. 6. 01:55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한 번째, 일백 두 번째 이야기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01.

    잠시 창밖 뒤란을 내다보던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말한다.

    “한아버지, 저 밖 모퉁이를 한 번 내다봐. 여러 종류의 가랑잎들이 한 데 모여 서로 몸을 부비며 떨고 있어. 지난여름 이야기를 바스락대며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 글고(그리고) 샛노란 은행잎도 끼어있는 걸!”

    녀석은 일찌감치 문학인이 다 된 듯하다. 아니, 이 할애비와 녀석 가운데 누가 예술가인지 이젠 모르겠다.

    다시 제각각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으뜸아, 너는 이 겨울에 가랑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정처 없이 날려가는 것처럼 느끼니? 목적지도 없이 방황하는 이들처럼 말이야.”

    그러자 녀석은 이 할애비가 또 무슨 말을 이어가려고 그러는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한다.

    “으뜸아, 지난 번(제 99화 ‘마지막 잎새’) 이파리 이야기를 환기해 보렴. 사실 저렇게 홀가분하게 떠나는 잎들은 자기 몫을 다 한 거야. 자기가 자리했던 곳에 겨울눈을 하나씩 뒀으니까.”

    녀석은 용케도 그 겨울눈이‘후사(後嗣)’ 즉 ‘대를 잇는 아들’임을 기억해낸다.

    “으뜸아, 지금 우리가 구워먹는 이 고구마의 녹말은 누구가 만들었게? 줄기가? 잎이? ”

    녀석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 한 장 한 장의 잎들은 화학공장이야. 잎들은 배기가스도 하나 없이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으로 녹말을 만들어서 뿌리로 내려 보내. 그게 ‘탄소동화작용’이라는 거야. 우리네 인간들을 비롯하여 많은 동물들이 산소를 들이키고 대신 내뱉는 이산화탄소와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잎들이 마신다? 그 이산화탄소와 잎에 맺힌 이슬과 햇빛 세 성분을 섞어서 녹말을 만들거든.”

    녀석의 눈은 반짝인다.

    “한아버지, 이젠 알겠다. 잎들은 화학공장! 우리가 맛있게 먹는 과일들과 곡식은 모두 잎들이 만들어 준다?”

    “으뜸아, 네가 조금 전에 ‘가랑잎들이 지난여름 이야기를 바스락대며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어. 맞는 말이야. 잎들은 푸르던 날들을 저마다 추억하고 있어. 자기 몫들을 제대로 했음을, 자기 이웃들한테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나 가지에서 떨어진 다음에도 훌훌 정처 없이 떠날 생각은 전혀 않을 걸?”

    그러자 녀석은 더욱 궁금해 한다. 이에 이 할애비는 잎들이 가랑잎이 되어서까지 분명한 지향점 내지 목적지가 있음을 아래와 같은 요지로 들려준다.

    가랑잎들은 가더라도 기왕지사 자기가 키우고 열매 맺게 하고 알뿌리 맺게 한 바로 그 나무 아래에 머물기를 원한다. 그런 다음 눈[雪]과 비에 젖어 시나브로 썩어 온전한 흙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렇게 해서 몸이 변한 흙은 ‘부엽토(腐葉土, leaf mold)’. 배양토로서는 최적최고. 나무는 그 자양분으로 더욱 ‘쑥쑥’자라고 나뭇잎의 후예들인 새 잎들은 더욱 씩씩하게 자란다. 이러한 선순환(善循環)은 거듭되어 비옥한 토양, 울울창창한 숲이 된다.

    여기까지 엄숙한 자연현상을 듣고 있던 녀석이 환호한다.

    “한아버지, 잎들은 ‘짱’이야! 요즘 인기 있는 수목장(樹木葬, Natural Burials)도 그러한 이치네. 죽은 이의 재가 그 나무와 함께 상생한다는 자연회귀! 그 수목장은 1999년 스위스에서 처음 도입되었다고 텔레비전에서 본 거 같애.”

    하여간 녀석은 천재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

    “으뜸아, 너 아까 뒤란 모퉁이에 모여 있는 가랑잎들 가운데 샛노란 은행잎도 섞여 있다고 말했지? 그 은행잎을 보는 순간, 이 할애비는 신라 임금들 왕관을 떠올렸지 뭐니? 왕관에 달랑거리는 그것을 ‘영락(瓔珞)’이라고 해. 그 영락은 놀랍게도 이파리 모양이다? 이파리를 본 딴 거다? 왕들은 스스로 천자(天子) 곧 ‘하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나뭇잎을 우러러봤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니? 어디 그뿐이겠어? 왕관의 모양이 ‘날 出’자로 되어 있어. 그 ‘出’이 아래로 거듭되는 모양의 왕관이었다? 그것은 가지 뻗은 나무 형상이야! 사실 ‘出’자체도 나무를 뜻해.”

    녀석은 신기한 걸 알게 되었다고 손뼉을 ‘짝짝’ 치며 환호한다.

    “오, 예. 나무는 왕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더욱 흥이 난 이 할애비는 또 다른 이야기를 녀석한테 들려준다.

    “으뜸아, 너 ‘아라베스크(arabesque)’란 말 들어본 적 있니?”

    그러자 이 할애비를 닮아 음악에도 관심 많은 녀석이 대답한다.

    “한아버지, 으뜸이는 작곡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한아버지랑 함께 들은 적 있어. 그런데 나무와 관련해서도 아라베스크?”

    이 할애비가 ‘아라베스크’가 담쟁이덩굴 등 이파리 문양임을 알려준다. 본디는 고대 그리스 공예가들한테서 유래했으나 1000년경 이슬람 공예가들이 종교적 이유로 사람·새·동물 등을 제외시켜 매우 정형화시킨 이슬람 장식 문화다. 보통 뒤틀렸거나 꾸불꾸불한 나뭇가지·잎사귀의 소용돌이무늬 또는 그러한 자연형태에서 추상한 장식적인 선 등으로 구성된다.

    녀석은 대단히 놀라워한다.

    “나무는 위대하다. 잎들은 우러러 뵌다. ”

    산골 외딴 농막에는 또 다시 어둠이 길손처럼 찾아들고, 나무난롯불은 사위어 가고... .

     

    102.

    나무난로를 끼고 맞은편 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유리창 밖을 가리키며 말한다.

    “한아버지, 농막 뜰에 서 있는 저 감나무가 아주 맘에 걸려. 죽은 것 같애. 당장 베서 장작을 만들어 난로에 때면 어때? 참나무류 ‘마루타(まるた;[丸太];maruta)’는 느타리버섯이라도 키울 수 있지만... .”

    저 어린 녀석이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나무’를 ‘마루타’로 표현하다니!

    “으뜸아, 네가‘마루타’를 어떻게 알아? ”

    그러자 녀석이 이내 대꾸한다.

    “에게, 한아버지, 으뜸이가 그걸 왜 몰라! 텔레비전에서 전쟁역사물을 본 적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패전에 앞서 일본 세균부대 가운데 하나인 731부대가, 산 사람들을 잔인하게 인체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때 인체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을 ‘마루타’로 불렀다? ‘마루타’는 그들 암호명이었다?”

    이 할애비는 새삼 녀석의 그 총기(聰氣)에 놀란다. 모르긴 하여도, 녀석은 저 감나무가 가지도 사라진 채 흉물스레 서 있어 통나무처럼 여겨지고, 그때 전쟁역사물에 나오던‘마루타’희생자들이 연상되기까지 하여 내심 얼른 베어서 땔감으로 쓰자고 하는 모양이다.

    “으뜸아, 네 말이 좋긴 한데, 저 감나무를 내년 봄까지만 잠자코 지켜보자꾸나. 다시 살아날 수도 있거든. 더군다나 20살도 넘은 나무인데 아깝잖니? 이 할애비가 경험상 아는 바이기도 하지만, 흔히 감나무는 죽은 듯싶어도 그 두꺼운 껍질을 뚫고 새로운 눈[芽]을 내어놓는 능력이 대단하거든. 정말로 감나무를 마루타처럼 둥치를 베어도 새싹이 돋던 걸.”

    이 할애비의 말을 듣던 녀석이 매우 놀라워 한다. 특별한 생명력을 지닌 감나무를 다시 보아야겠단다.

    “으뜸아, 네가 알아듣기에는 다소 어려울는지 모르겠으나, 식물의 눈[芽]은 크게 ‘정아(定芽)’와 ‘부정아 (不定芽)’두 종류로 가른단다. ‘정아’는 따로 설명할 것도 없이, 식물마다 평소 자기 습성대로 눈을 다는 걸 말해. 줄기 끝에 끝눈이 생기고 잎겨드랑이에 겨드랑눈이 생기는데, 이들 눈이 줄기의 일정한 위치에 나면 정아야.‘부정아’는 꼭지눈이나 곁눈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나는 눈이야. ‘부정아’는 보통 때에는 자라지 않고 있다가 가지나 줄기가 잘려 다치면, 비로소 자라기 시작하는 눈을 일컬어. 그래서 평소와 달리 규칙을(?) 따르지 않고 아무 데고 나기에‘막눈’이라고도 불러. 부정아는 상처 입은 식물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 비상수단인 셈이지. 감나무는 부정아 가운데에서도 ‘잠복아 (潛伏芽, latent bud)’를 취한단다. 그 두꺼운 껍질 어디엔가 눈을 감춰두고 있어서 ‘잠복아’ 또는 ‘휴면아(休眠芽)’로 불러.”

    이 할애비의 강의를(?) 듣고 있던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힘주어 말한다.

    “아, 참으로 신비스런 나무들의 자기치료능력!”

    녀석이 흥을 돋우어 주는 덕분에 덤으로 알려준다.

    “으뜸아, 부정아 가운데에는 ‘맹아(萌芽)’라는 것도 있다? ‘움돋이’ 혹은 ‘움’을 일컫는 말이야. 사과나무·석류나무·리기다소나무 등의 발치에 다북하게 새순이 나오는 걸 말해. 그 새순들은 저마다 뿌리를 내리기도 해. 그걸 조심스레 떼서 심으면 새로운 사과나무·석류나무·리기다소나무가 된다? 그렇게 엄마나무 뿌리에서 난 여러 개의 움을 뿌리와 함께 갈라 나누어 따로 옮겨 심는 방법을 ‘뿌리나무기[分株法]’라고 해.”

    녀석은 한 수를 더 둔다.

    “한아버지, 그렇다면 앞으로는 굳이 묘목상에 가서 으뜸이가 맛있어 하는 여름사과 ‘아오리’ 묘목을 더는 사올 필요 없겠네! 한아버지 농장에 이미 크고 있는 저 아오리사과 뿌리에서 퍽이나 많이 새 묘목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정말 누구 새끼인지 똑똑하기 그지없다.

    말귀가 밝은 녀석한테 아래와 같은 요지로 마저 들려준다.

    사실 이 할애비는 해마다 그렇게 하고 있다. 기왕의 병약한 한 그루 아오리사과나무의 뿌리에다 칼로 약간의 상처를 내고 흙을 되덮되, 작은 봉분(封墳)처럼 덮어두곤 한다. 나무는 특유의 자가치유 능력을 발휘하여, 그 상처가 속히 아물도록 옥신(auxin) 등 생장조절 호르몬을 그곳에 ‘삐오!삐오!삐오!’보냄으로써 발근촉진(發根促進)의 효과를 증진한다. 사실 나무는 자기 상처가 속히 아물기를 원했겠지만, 농부인 나는 새로운 개체를 얻고자 그렇듯 약간의 상처를 입혔다. 나무는 상처로 인하여 자칫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사(後嗣)’ 즉 ‘대를 잇는 아들’을 그렇듯 많이 낳게 되는 모양이다. 이 ‘후사’에 관한 이야기는 이 시리즈물 제 99화(마지막 잎새)에도 적고 있다. 나뭇잎도 그러한 메커니즘이 있다고. 참말로, 그 상처 난 사과나무의 발치에는 움들이 총생(叢生;모여나기; 더북나기)한다. 이 할애비는 그걸 하나하나 떼서 심음으로써 대량의 사과나무 접(接) 바탕나무[臺木]를 얻을 수 있다. 이 사실만은 어린 외손주녀석한테만 알려주는 비밀이다. 혹여 내 신실한 애독자들마저 이 사실 다 알게 되면, 묘목상들이 자칫 차례차례 폐업할 수도 있어서다.

    “ 한아버지, 더러는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한아버지한테서 난롯가에서 듣는 나무 이야기는 참말로 유익하다. 한아버지,파팅(파이팅)!”

    “으뜸아, 오늘은 여기까지.”

    조손(祖孫)은 또다시 농막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랫목이 유난히 따스하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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