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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아홉 번째, 일백 열 번째 이야기 -
    수필/신작 2020. 12. 28. 08:04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아홉 번째, 일백 열 번째 이야기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09.

    나무난로 뚜껑 위에다 아내가 만든 ‘모과청[木瓜淸;木果淸]’유리병을 얹어 잠시 미지근 덥히고 있다. 잠시 후 그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뚜껑을 연 후 한 숟갈씩 떠서 조손(祖孫)은 ‘너도 한 입 나도 한 입’ 한다. 마치 개구쟁이들처럼.

    “으뜸아, 참으로 달콤하고 향기롭지 않니? 네 외할머니는 해마다 이 ‘만돌이농장’의 뒷동산 모과나무에서 네 머리통 크기의 모과를 따서 이렇게 설탕에 쟁여 조청(造淸)을 담그곤 한단다. 너도 잘 알다시피, 네 외할머니는 기관지가 아니 좋아 모과와 도라지를 약으로 즐겨 먹곤 하지.”

    그러자 녀석은 금세 말한다.

    “한아버지, ‘모과’가 ‘목에 좋다’하여 ‘목과’에서 온 이름 같애. 지난 번(제 105화) ‘떼죽나무’이야기에서 그 열매를 으깨 물에 뿌리면 버들치 등 물고기가 ‘떼죽음’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듯.”

    하여간, 녀석의 유추력은 대단하다. 맞는 말이다. ‘목(기관지)에 좋다 하여 목과’. 거기서 온 이름이다. 한자로, 나무에 달리는 참외 비슷한 열매라 하여 ‘목과(木瓜)’ 또는 ‘목과(木果)’라 쓰기도 한다.

    모과의 효능에 관해서는, 세계 최초 백과사전으로 일컬어지는 중국의 《이아(爾雅)》가 이렇게 적고 있다.

    ‘ 모과는 백 가지 이익이 있고, 한 가지 손해가 있다.’

    모과는 비타민C가 풍부하여 감기를 다스리고, 피부를 아름답게 하며, 속에 좋고, 피로회복을 촉진한다. 나아가 그 은은한 향기가 고혹적(蠱惑的)이다. 그래서인지 꽃말은 ‘유혹’이다. 더러는 승용차 안에 하나씩 놓아두는 과일.

    “으뜸아, 그런데 말이다. 모과는 그 향기와 그 효능에 비해 과일 모양은 영 아니지 않던?”

    그러자 녀석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이 할애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혼자서 빙그레 웃는다.

    “한아버지, 언젠가 으뜸이한테 말해주었다? 한아버지가 어렸을 때에 그 많은 손위 형님들과 손위 누님들로부터 ‘모괴(모과의 사투리)’라고 늘 놀림 받았다고 했다?”

    ‘고 녀석 하고는... .’

    “으뜸아, 마태오 복음 5:3-5는 이렇게 전하지 않던?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말이야. 마찬가지인 걸. ‘못 생긴

    자에게 복이 있나니, 4년제 국립대학교를 열 남매 가운데에서 혼자 다녔고, 이쁜 색시까지 얻었으니... .”

    나무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이번에는 의외의 반응이다.

    “한아버지, 맞아. 맞아. 그 건 맞는 말이야.이번에는 참소리하네. 참말로 외할머니는 미인이지. 그래서 울 엄마도 외할머니 닮아 이쁘고, 으뜸이도 이렇게 이쁜 걸.”

    조손은 모과청을 경쟁적으로 한 숟갈씩 떠서 또 먹어댄다. 이번에도 녀석이 노변담화 마무리를 한다.

    “어찌 되었든, ‘모과’는 ‘목에 좋은 목과’. 그 생김새는 이름 그대로 모과이지만... .”

    녀석한테 ‘진달래’와 ‘목단’ 차시예고(此時預告)를 하고, 조손은 다시 농막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산골 농막에는 또 다시 어둠이 내리고.

     

    110.

    “으뜸아, 어제는 모과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모과는 어디에서 온 이름이라고 했지?”

    녀석이 모를 리 없다.

    “ ‘목’에 좋다하여 ‘목과’에서 온 이름.”

    이 외할애비의 수목학 강의는 이어진다.

    “으뜸아, 같은 나무인데도 그 쓰임에 따라 여러 이름을 지닌 나무들이 있다? 마치 같은 사람임에도 여러 이름을 지녔듯 말이야. 이 할애비는 본디 ‘윤근택’이지만, 지난 직장에서 마지막 직함이 ‘과장’이었기에, 이 골짝 어르신들은 ‘윤 과장’이라고 부르지 않던? 일종의 택호(宅號)처럼 말이야. 그리고 이 외할애비의 개인 블로그명 아이디는 ‘이슬아지’잖니? ‘이슬아지’는 필명(筆名)이기도 하면서 아호(雅號)인 셈이고. ”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궁급해 한다.

    “한아버지, 근데(그런데) 방금 ‘택호’라고 했는데 무슨 뜻?”

    아주 좋은 질문이다.

    “으뜸아, 택호란, ‘성명 대신 집주인의 벼슬 이름이나 처가나 본인의 고향 이름 등을 붙여 그 집을 가리키는 호칭’이란다. 네 외증조부이시자 내 아버지인 분께서는 처가(妻家)가 ‘청송읍 송생리(松生里)’였기에 마을 어르신들은 거기서‘松-’을 따고 , 사실 그곳에는 없지만 평온한 호수가 있는 듯‘-호(湖)’를 붙여, ‘송호’로 불렀단다. ”

    녀석은 고개를 “아하,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할애비는 아명(兒名)의 개념도 일러준다. 녀석 에미의 아명이 ‘윤초롱’이었던 사실도 알려준다. 이에 더해서 별명(別名)·태명(胎名)·애칭(愛稱)·시호(諡號)·예명(藝名) 등의 개념도 소상히 알려준다.

    “한아버지, 잘 알겠는데, 아까 같은 나무임에도 이름이 여러 가지인 나무가 있다고 했는데... .”

    아차, 내가 이야기의 동아줄을 놓치고 말았구나.

    “으뜸아, 진달래·참꽃·두견화(杜鵑花)는 같은 꽃나무를 일컫는 말이야. 꽃을 강조하면 진달래, 약재로서 강조하면 참꽃, 전설로 말미암아 두견화인 거란다. 두견화란, 본디 그 꽃은 하얀 꽃이었으나 봄날 밤새껏 슬피 울던 두견새(사실은 뻐꾸기류인 두견이가 아닌 소쩍새다.)가 새벽녘에 목에서 피를 토해 그 흰 꽃잎을 빨갛게 물들였다는 전설을 담고 있단다.”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매우 흥미롭다고 말한다.

    “한아버지, 그렇다면 목단(牧丹)과 모란[牡丹]은?”

    이에, 할애비는 아주 간결하게 알려준다.

    “으뜸아, 같은 꽃나무이되, 꽃을 중시하면 모란, 한약재로 부를 때에는 목단인 거란다. 한약재로서 그 줄기 껍질을 목단피[牧丹被]라 부르고 그 꽃을 목단화[牧丹花]라고 부른다는 거 아니니!”

    누군가가 녀석더러 수필작가의 외손주가 아니랄까봐서, 녀석은 이내 김영랑의 시를 읊어댄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 .”

    바깥은 여태 혹한(酷寒)의 바람인데, 참말로 나무난롯가에 앉은 조손은 모란과 진달래가 피게 될 봄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다음 호 예고)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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