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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산속 외딴 농막.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잠자고, 시도 때도 없이 깨어나고 ... 이 한밤, 호젓하게 지내며 천정을 바라보다가 아주 엉뚱한 생각에 잠겨 독백할 줄이야!
‘그래, 그건 다 지나간 이야기야! 하더라도, 내 삶을 순간순간 바꾼 건 맞아! 나는 주관식 문제 내지 단답형 문제에는 비교적 강했던 거 같아! 바로 그것이 남들과 다소 달랐던 거 같아! 나는 참말로 빈 칸을 그대로 남겨두기는 싫었어.’
환갑 진갑을 다 지난 나. 국립대학교였으나, 흔히들 말하는 ‘따라지 학과’인 농과대학 임학과를 입학했던 나. 학과 동기생인 ‘김세용’은 어느 날 학사주점에서 제법 진지한 충고를 해주었다.
“니기미(니 에미), 따라지 학과. 어차피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디... . 근택이, 니는 언론계, 즉 기자가 되는 길밖에 없어. 내가 알아본즉, 언론계 시험은 국어·영어·상식·논문(작문) 네 과목이야. 니는 작가지망생이니 국어는 일단 해결. 영어는 어차피 남의 나라 말이니 너나 나나 일반. 상식은 그야말로 지식 위 의 지식이니 도대체 답이 없어. 말 그대로‘상식(上識)’이잖아. 그리고 한 시간 만에 적게 될 논문이 무슨 눔의 논문? 그건 글짓기일 따름.”
사실 그 친구의 충고 이전에, 대학입학시험에도 이미 재미를 톡톡히 보았던 나다. 가령 시험과목 가운데에서 ‘생물’ 시험과목에 ‘혈중 철분을 ~~ 하는 물질은?’하는 단답형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그 빈 공간을 ‘헤모글라빈’이라고 채웠던 터. 하여간 그러한 빈 공간 채우기가(?) 대학 8학기 동안 우수한 학점받기에 도움이 되고 장학금 받기에도 도움이 되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인자하신 교수님들께서는 나의 그러한 성의에(?) 괜찮은 학점을 주신 듯하고.
학우인 ‘세용’의 충고로, 나는 재학 중에 경향(京鄕) 각처 언론사 기자 및 프로듀서 시험에 십 수 차례 도전하였다. 내리 낙방을 하였다. 그러다가 사건 아닌 사건이 생겨났다. 그게 ‘안동문화방송’ 프로듀서 시험이었다.
‘바퀴달린 가방(나의 온 세간을 담고 취직방랑객 행세를 하던 가방)’을 끌고서, 무작정 서울을 향하다가, 그래도 미련이 남아 그곳 게시판 앞에 가보았더니... 1차 합격자 명단에 나의 수험번호가 있었다.
다시 귀향하여 용모를(?) 갖춘 다음에 이튿날 2차 면접시험장에 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분은 그 회사의 중역이었다.
“ 윤근택씨, 하여간 당신은 웃기는 사람이더군요. 나 당신의 작문 ‘나의 좌우명’을 감동스럽게 읽었어요. ‘취직방랑객’이라고요?”
하더라도, 나는 취업의 문턱을 끝내 넘지는 못하였다. 음성 테스트·카메라 테스트·기사문 적기 등.
그 이후 나는 ‘한국전기통신공사(KT의 전신)’초급사원 1기생으로, 영어와 상식 두 과목으로, 그것도 300:1의 공채에 합격했으며 4반세기 동안 잘 벌어먹었지마는... .
내가 다시 이 글의 제목으로 빼 올린 ‘다 지나다 간 이야기’에 충실하고자 한다. 하여간, 나는 객관식 문제보다는 주관식 문제가 늘 매력적이었다. 주관식 문제가 내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돌이켜, 그때 안동문화방송국 프로듀서 시험 과목 가운데에서 국어과목의 문제에는 이러한 게 있었다.
‘갈치가 갈치꼬리 문다’를 한자성어로 바꾸어 쓰되, 한자로 쓰시오.’ 사실 그 답은 ‘自繩自縛(자승자박)’이다. 하지만, 쓰기에는 어려운 글자다. 해서, 나는 유의어인(?) ‘同族相殘’이라고 적었다. 또,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를 한자성어로 적되, 한자로 쓰시오.’라는 문제도 있었다. 분명 ‘後生可畏’가 답이다. 그러함에도 ‘ 두려울 畏’가 도대체 떠오르지 않아 나는 ‘靑出於藍’이라고 적었다. ‘청색은 쪽풀에서 나오지만 쪽풀보다 푸르다’ 라는 뜻을 지닌 말. 거기서 어조사 ‘於(어)’는 ‘시발격조사(始發格助詞)’이면서 또한 ‘비교격조사’라는 걸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이미 익히 알고 있었던 터. 사실 그 출처까지 알고 있었다. 이 말은 《荀子(순자) 〈勸學(권학)〉》에 나오는데, ‘푸른색은 쪽에서 취한 것이지만 쪽보다 푸르다.’는 말에서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 나왔고, 이것이 다시 ‘청출어람’이 되었다. 채점관은 내가 적은 유의어 답들한테도 점수를 다 주었다는 이야기.
하여간, 그때 잘만 풀렸더라면, 내가 이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프로듀서 내지 대기자 내지 논설위원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
다시 돌이켜보아도, 그건 아주 옛날 옛적의 이야기. 나는 KT에 근무하는 동안 40대 중반에 벌써 현역에서 은퇴를 준비하여 농토를 장만했던 사람. 지금은 경산의 어느 골짝 외딴 농막에서 홀로이 지내는 처지. 그러하지만, 찬바람이 이는 9월 이후에는 다시금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코자 안달을 부리고 있다는 거 아닌가. 대한민국 수필계의 이단아 내지 아웃사이더인 것은 기본으로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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