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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둑
    수필/발표작 2021. 4. 24. 04:11

    오늘밤 25여 년 만에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요즘도 저는 돌멩이를 주워내고 밭을 일구는 게 취미입니다.

    우리 쪽 어르신들은 그렇게 밭을 일구는 걸 두고,

     '팔밭쪼기(기계가 아닌 팔로, 괭이나 쇠스랑으로 밭을 만든다는 뜻.)'라고 하셨어요.

    언제고 제가 주워낸 돌을 모아 행하는 '돌둑쌓기'는 아내의 몫이고요.

    아내의 돌둑쌓기는 거의 예술의 경지인 걸요.

    사실 제가 휴대전화로 사진찍기 등의 기술을 갖추었더라면,

    님들께 제 농막 둘레의 돌둑 또는 돌무더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텐데요.

    최근 뒤란의 돌무더기 작품명은 '구직 또는 실직'인 걸요.

    자신을 다스리고자 몇 몇 날 작업을(?) 하였으며,

    그렇게 해서 넓혀진 꽃밭의 크기는 20~30평은 될 걸요.

    이미 그 꽃밭 일부분에 더덕, 도라지 등의 씨앗을 갈기도 했고요.

    부디, 아름다운 꿈들 꾸세요.

     

    아래를 차례로 클릭해보세요.

     

     

     

    /윤근택

    201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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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27.

     

     

    * 이 글은 제 두 번째 수필집,<이슬아지>에 실려있고, 어느 문학잡지에도 발표되었습니다.

    * 이 작품은 98년 한국불교문인협회상 우수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 당시 이 작품을 읽으시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진권 교수 등 몇몇 분이 격려의 전화 주신 바도 있지요.

    * 오감(五感)으로 사물을 들여다 본, 제가 아끼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돌둑

                                                                

                                                                                                                                               윤근택

     

        한 곳에 머물러 살지 못하는 것도 병인가 보다. 이번엔, 첩첩산중 영양에서 바닷가 영덕으로 근무처를 옮겼다. 누군가 버렸던 농가(農家) 온돌방에서 회사가 준 아파트 보일러방으로 세간도 옮기게 되었다. 일구던 텃밭과 거기 가꾸던 갖가지 숙근초(宿根草)를 고스란히 남겨 둔 채.

     아파트 둘레가 말이 아니었다. 일어나면 전기밥솥에다 쌀을 안쳐 놓고, 목잡갑을 끼고 나서서 밭을 일구었다. 그리고는 상치, 배추, 열무, , 쑥갓, 호박, 오이, 들깨를 골고루 심었다. 제법 소일거리도 되지마는, 아파트 13세대한테도 채소를 나누어줄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했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만든 밭으로 나섰다. 매무새를 갖춘 널따란 텃밭, 싹들이 반겨준다. 밭 언저리엔 돌둑이 있고, 저만치 돌무더기도 있다. 그걸 바라보노라니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 그때 나는 괭이로 쪼다가, 박힌 돌멩이를 하나씩 하나씩 주워 밖으로 던져댔다. 돌멩이를 집어던질 때마다 저린 어깨가 펴졌고, 밭은 모양을 차츰차츰 갖추어 나갔던 것이다.

     지금은 한밤, 뒤척이다가 일어나 앉아 담배연기만 뿜어댄다. 이런 일이 부쩍 잦아졌다. 찌뿌드드하다. 많은 이들이 최신작을 보여줄 것을 고대했지만, 그때마다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고 쓰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문득, 아침에 바라보았던 돌무더기가 떠오른다. 이어서 또 다른 광경이 겹쳐진다.

     영양, 나는 읍내에서 시오리 떨어진 한갓진 마을에 살고 있었다. 돌너덜겅이 유난히 많았고, 농부들은 뙈기논과 뙈기밭을 부쳤다. 하루는 생각없이 들길을 걷다가 계단으로 펼쳐진 논둑 밭둑을 잔잔히 바라보게 되었다. 둑들은 대개가 돌멩이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들이었다. 어설픈 듯하면서도 돌둑들이 짜임새가 있음에 놀랐다. 가슴이 찡해 왔다. 그때 상상에 젖어 들었다.

     옛날 아주 옛날, 골짜기는 숫제 황무지였고, 농부는 그걸 정성스레 일구고 있었으리라. 모난 돌을 져다가, 주먹돌은 삼태기에 담아다가 둑으로 쌓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돌들은 한 곳에다 갖다 버렸을 것이다. 조금씩 밭의 모양이 되어 갔겠지. 마침내 농부는 괭이로 파고, 삽으로 갈았으리라. 허기는 좀 들었을까. 허리는 좀 뻣뻣했을까. 농부는 보이는 족족 돌멩이를 밭 가장자리로 집어 던졌을 것이다. 그 몸놀림이 허리를 펴보는 유일한 순간임을 알면서. 세세연년 밭갈이를 하면서 돌멩이를 그렇게 주워 버려댔을 것이다. 뙈기논과 뙈기밭은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움켜잡으면 손바닥에 기름이 묻어날 듯하고, 가는 체로 거르면 걸러 날 게 없을 듯한 양토(壤土). 실은 누대(累代)를 거친 매만짐의 산물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감동어린 눈으로 돌둑을 다시 바라보았다. 누가 뭐래도 그건 걸작이었다. 농부들은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둑을 짓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조형물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돌둑에는 흙과 땀에 절은 무명저고리, 해진 바소쿠리, 머리에 질끈 동여맨 수건, 굳은살 박인 손바닥, 벗겨져 피가 흐르는 소의 엉덩이, 날이 무디어진 삽, 부러진 괭이자루 등이 순차적으로 얼비쳐났다. 내가 바라본 돌둑에서는 구성진 격양가(擊壤歌) '휴우' 한숨이 들려왔다. 이따금씩 탄식도 들려왔다. 돌둑에서는 땀내음과 단내가 물큰 밀려왔다. 뙈기밭은 뙈기밭으로 뻐김없이 이어져 있고, 돌둑들은 돌둑으로 다툼없이 닿아 있었다. 살림살이가 고만고만한 이들끼리 살갗을 맞대며 오순도순 살았을 저들 주인들처럼. 돌둑들은 어지러이 계단을 이뤄, 그 작은 무질서가 커다란 조화로 통함을 보여주었다. 등이 휜 농부는 자신의 허리를 닮은 돌둑을 쌓는 데는 이골이 났던가 보다. 끊어질 듯 이어진, 목숨줄 같은 돌둑들. 세월에 문드러지면 문드러지는 대로, 돌둑의 형체로 남아 있었다.

     삶이란 때로는 돌두렁처럼 들쭉들쭉 굴곡도 많은 법이겠거니, 논두렁 밭두렁의 휘어진 수효와 살림살이는 반비례하겠거니······. , 저만치 돌무더기는 때때로 팽개친, 화풀이로 내팽개친 돌의 무덤일 거라고······. 예기치 않았던 눈물이 솟구쳤다.

     실은 내가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은 것은 그때부터다. 대신 돌두렁을 보러 들길을 곧잘 걷곤 했다. 돌둑이 역작(力作) 또는 노작(努作)이라면, 나의 수필은 태작(馬太作)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다. 나의 글은 거푸집을 만들어 레미콘을 갖다부어 만든 둑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work' '노고', '땀흘림'을 떠올리게 하는 낱말이라면, 'art' 'artificial(인공적인, 인위적인)' '손재주'를 자꾸 떠오르게 했다. 돌둑이 전자(前者)에 속한다면, 나의 수필은 후자(後者)임이 분명하다. 문장 가운데 돌멩이가 즐비했다. 뉘를 골라내는 일에도 참으로 소홀했다. 농부한테 돌둑과 뙈기논은 생업 자체였고, 나의 작업은 '관념적인 것' 또는 '탁상 맡의 것'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동안 수필가로 일컬어지려고 수필을 써 왔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내일 또다시 텃밭으로 나설 요량이다. 호미에 걸려드는 돌멩이를 알뜰히 주워낼 것이다. 큰 나무 밑 퇴적물(堆積物)도 긁어모아 열무 고랑에다 넣어야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13세대의 봄반찬만이라도 제대로 장만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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