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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ㅁㅁㅁ이다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오늘은 문제를 하나 내겠다.
“고객은 ☐☐☐다. 특히, 경상도 고객은 ☐☐☐다. 네모 안에 들어 갈 말은?”
저마다 답을 생각하는 동안, 계속 힌트를 적어나가고자 한다. 나는 어느 통신회사에 26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 기간 가운데 죄다 민원창구의 일선(一線), 이선(二線)에서 일해 온다. 직장에서 말년(末年)인 나는 지금 별실에서 지낸다. 이른바, 민원실장이다. 그 동안 별의별 고객들이 다 다녀갔다. 친구가 된 경우도 있고, 원수가 되어 회사 홈페이지에 나의 추문(?)이 올린 일도 있다. 심지어는 참다참다 뱉은 말 한마디, ‘대갈통을 깨부숴버릴까 보다.’ 때문에 합의금으로 생돈 일백만원을 건넨 사례도 있다. 어느 직장이든 민원실 근무를 스스로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는 고객의 입맛을 다 버려 놓았다. 그들의 입이 인플레가 되어 웬만해서는 맛을 못 느끼는가 보다. 어떤 머저리가 ‘고객은 왕이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던져놓고부터다. 정작, 자신은 일선에서 근무해 본 적도 없고, 곧바로 구중궁궐 회전의자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미명(美名)으로, 자고나면 만들어내는 서비스 종류도 문제다. 일례(一例)로, 휴대전화 기본료 종류도 한 아름 된다. ‘맞춤형’이라고는 하지만, 공급자도 소비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만든 이만 제대로 아는 경우다. 제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다. 독자 여러분도 경험했겠지만, 통신요금 청구서가 왜 그리 난해하던지. 조금 과장하면, 박사 학위 여러 개가 있어야 근무 할 수 있는 데가 민원실이다. 실은, 위에서 말한 ‘대갈통 사건(?)’도 그런 연유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중년 고객이 ‘00박사 아무개’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고 계속 깐죽거렸기에, 자기보다 많은 박사 학위를 가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경우라도 민원부서 직원은 약자인 까닭에, 후일 나만 상처를 받았다.
자, 이제 위의 문제를 풀어보자. 내가 근무하는 방의 간판 ‘VIP실’에서 힌트를 얻어 ‘VIP’라고? ‘땡!’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VIP’는 ‘very impossible person(매우 대책없는 인간)’이다. 하고많은 말 다 두고 부서명을 그렇게 국영혼용(國英混用)으로 지은 것도 못마땅한 판에, 작가인 내가 그런 답을 구하는 문제를 낼 리가 없다. ‘ten bird’일 거라고? 이 또한 세 칸을 채울 수 없으니 ‘땡!’이다. 실은, 내가 평소에 ‘ten bird’라는 은어를 자주 쓴다. 이는 ‘가문의 영광’이란 영화에서 배우 김수미가 맛깔스레 쓰던 대사, ‘씁새’의 변형이기도 하다.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답은 ‘개/새/끼’다.
경상도 고객은 대개가 개새끼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창구를 들어서자마자, 물어댄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물린다. 내 살점이 다 뜯겨 나가는 기분이다. 전화를 받을라치면 물어대는 강도가 더 세다. 다짜고짜 말한다.
“하나 물어보입시더.”
강아지도 아니면서 왜 사람을 그리도 물어대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나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듣기에 참으로 거북하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한 말이 ‘ask’가 아닌 ‘bite’인 경우가 많다. 다들 알다시피, 웬만한 일은 온라인으로, 또는 100번 상담사를 통해 처리하지만, 대부분 벼르고 창구를 찾는 고객들이다. 딴은, A4지에 그림도 그려가면서, PC 화면도 보여주면서, 나란히 앉아 커피도 마셔가며 매뉴얼 이상으로 설명해드리건만……. 억지를 부리는 예가 퍽이나 많다. 거듭거듭 죄송하다고 해도 ‘떼법(?)’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언(失言)을 유발해놓고, 그걸 물고 늘어질 적엔 아연실색한다. 거두절미하고 침소봉대하여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다반사다.
내가 몸담은 직장이 세계에서 인터넷을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많이 보급한 통신회사가 아닌가. 그런데 그 인터넷이 족쇄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자업자득은 이런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족들한테 돈을 듬뿍 벌어다 줄 요량으로 전기밥솥을 고안했겠지. 그러나 그 전기밥솥 때문에 자신은 가마솥밥을 먹지 못한다. 지금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남들한테 전기를 만들어 보내는 원자로이지만, 정작 자신은 전기를 공급받지 못해 속이 활활 타도록 냉각기를 돌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다가는 인터넷으로 일어 선 회사, 인터넷 때문에 자칫 망할지도 모르겠다.
고객은 끊임없이 물어대고(ask), 물어대고(bite) 한다. 나는 여러 유형으로 물어내야(pay) 한다. 경위서를 적거나, 합의금을 주거나, 통신요금 감액을 하거나……. 그 과정에서 내 영혼이 물어간다(decay). 고객들 가운데는 가관인 젊은 여성도 있다.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애비 같은 이한테, ‘아저씨, 물어보입시더.’로 시작해서 조곤조곤 따지는 경우다. 실은 짜릿짜릿하기도 하다. 그때마다 ‘어부지리(漁父之利)’의 고사를 떠올리게 된다. 무명조개는 도요새의 부리를 물고 좀체 놓아주지 않는다. 어부인 아내만 수가 난다. 힘들이지 않고, 매월 25일이면 통장에서 거액(?)을 인출하니까.
불평조로 글을 적긴 하였으나, 사실은 하나같이 고마운 분들이다. 이 억지춘향 노릇도 일 년여밖에 남지 않은 게 오히려 아쉽다. 무슨 이야기냐고? 다섯째 행에 힌트가 있다. 할배가 되었든, 할매가 되었든, 아제가 되었든, 아지매가 되었든, 총각이 되었든, 아가씨가 되었든 두고두고 찾아와서 잘근잘근 물어주었으면 좋으련만…….
작가의 말)
지난 직장생활 말년을 추억하며... .
* 이 글은 <<현대수필>> 2011년 가을호 기발표작이기도 합니다.
* 고객은 ㅁㅁㅁ다/<현대수필> 2011년 가을호 게재(예정)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