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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소금장수
    수필/신작 2021. 10. 12. 20:14

     

     

                                                               어느 소금장수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때는 서기 300년 무렵, 무대는 고구려. 당시 고구려는 제 14대 왕인 봉상왕(烽上王, 재위 292~300년)이 통치하고 있었다.

       어느 시골 부인으로부터 관아에 고발당한 젊은 사내 소금장수가 있었다. 고발 내용인즉, 자기의 고운 신발을, 소금장수가 지고 온 자기 소금 양동이에 슬쩍 묻어 훔쳐가려 했다는 거. 해서, 그 소금장수는 절도죄로 몰려 관아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 소금장수가 관졸들한테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 여인네는 혼잣말로 고소해 한다.

      ‘그러게, 진즉에 소금 값을 조금 깎아줄 것이지. 쯔쯔.’

      사실 그 여인이 소금장수 양동이에 자기 신발을 묻어두고서 그렇듯 무고(誣告)했던 것이다.

      형(刑)을 살고나온 소금장수는 굶주려 어느 댁 대문을 두드린다.

      “어르신, 이 옥가락지를 담보로 맡길 터이니, 한 끼만 주십시오.”

      그러자 그 주인은 소금장수의 행색을 보고, 내치는 한편 비렁뱅이가 그 값진 옥가락지를 어디서 훔쳤으리라 여기며 관아에 절도죄로 고발한다. 마찬가지로 무고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금장수는 관졸들한테 끝끝내 자기 이름 따위를 밝히지 않고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다. 기진맥진한 소금장수는 급기야 길가에 쓰러져 버린다.

      사흘만에 눈을 뜬 소금장수. 둘러보니 어느 아가씨가 그때까지 간호하고 있었음을. 착한 아가씨는 며칠 동안 더 자기네 집에 머무르며 기력을 회복하라고 권한다.

      한편, 그 착한 아가씨가 잠시 외출을 했을 적에 골목마다 몽타주까지 그려진 현상금 범인색출(?)에 관한 방(榜)이 붙어있음을 보게 된다. 아가씨는 그 방을 보이는족족 뜯어낸다. 그리고는 은밀히 어느 인물을 만나 정보사항을(?) 전해준다. 아가씨가 그렇게 은밀히 만난 이는 국상(國相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가 제 2인자), ‘창조리(倉助利)’. 사실 그 아가씨는 창조리의 사람이었다.

      대체, 그 소금장수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전국 수배령이 그렇게 떨어졌을까? 국상인 창조리와는 또 어떤 관계이길래?

      지금부터는 ‘DAUM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그대로 베껴다 붙이기로 한다. 이는 내가 틈만 나면 이야기하였던 ‘콜라주(collage)형태의 수필’.

     

      <봉상왕(烽上王) : 고구려 제 14대(재위 292∼300) 치갈왕(雉葛王)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상부(相夫) 또는 삽시루(臿矢婁). 서천왕의 아들로 부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어려서부터 교만하고 의심이 많았다.

      왕위에 오르자 곧 왕권 강화에 주력, 숙신(肅愼)을 격파해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던 숙부 달가(達賈)를 죽이고, 293년(봉상왕 2)에는 동생 돌고(咄固)를 죽였으며, 피신해 있던 돌고의 아들 을불(乙弗 : 뒤의 美川王)까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등 자신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세력들을 제거하였다.

      또한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계속된 흉년에도 불구하고 298년과 300년에 궁실을 대규모로 증축하였다.

      (중략)

      300년에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리는 가운데 왕이 궁실을 수리하려고 백성을 징발하려 하자, 국상(國相) 창조리(倉助利)가 부당함을 간했으나 왕은 듣지 않고 오히려 창조리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창조리는 다른 신하들과 왕을 폐위할 것을 모의하였다. 왕은 사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 두 아들과 함께 자살한 뒤 봉산원(烽山原)에 묻혔다.>

     

      위에 소개한 소금장수가 바로 봉상왕의 조카‘을불’이었다. 을불은 폭군 봉상왕으로부터 반역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 ‘돌고(咄固)’를 보고서 자기도 죽임을 당할세라, 그렇듯 신분을 숨기고 소금장수가 되어 숨어 지냈던 것이다.

      봉상왕은 틈만 나면, 후환을 없애고자 자기 동생 돌고의 아들 을불을 기어이 찾아내어 죽이고자 하였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차에 국상 창조리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건의하게 된 것. 그래서 전국에 방을 붙이게 되었다. 그러나 창조리의 속마음은 왕과 전혀 달랐다. 자기가 선수쳐서 을불을 찾아야겠다고 그렇게 기지(奇智)를 발휘한 거.

      을불을 찾아온 창조리. 그는 무릎을 꿇고서, “왕손(王孫)이신 분을 임금님으로 모시려 하오니, 궁으로 가시지요.”한다.

    한 녘으로 생각해 보면, 왕손 운위(云謂)하지 말고 창조리 자신이 ‘역성혁명(易姓革命)’ 따위를 감행했어도 되었거늘... .

      사실 창조리의 거사(擧事)는 치밀했다. 을불의 행방을 자기 사람인 그 아가씨를 통해 안 다음, 봉상왕을 꾀어 사냥을 가자면서 왕궁을 비운다. 아울러, 신료(臣僚)들한테는 자기와 뜻을 같이 하겠다면 관(冠)에 갈대잎을 꽂아줄 것을 일렀다. 관에 갈대잎을 꽂은 신료들이 많기도 하였다.

      사냥을 끝내고 환궁한 봉상왕. 어찌 된 일인지 용상에는 을불이 자기가 평소 입던 용포(龍袍)를 입고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봉상왕은 눈이 뒤집어진다.

      을불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백부님(伯父님), 제 아버지를 왜 죽이셨어요? 백부님을 베어 마땅하나 ... .”

      소금장수는, 돌고의 아들 을불은 그렇게 하여 고구려 제 15대 왕이 되었다. 그가 미천왕이다. 미천왕은 즉위 직후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302년 3만 명의 군사로 현도군(玄菟郡)을 공격하여 적군 8,000여 명을 사로잡고, 311년에는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했다. 또한 313년 낙랑군(樂浪郡), 314년에는 대방군(帶方郡)을 정벌하여 고구려의 영토로 삼았다.

    이처럼 역사 속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적고 끝내려니 괜스레 허전하다. 사실 무언가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메시지를 전해주어야겠는데... . 문득, 30대 후반인 나의 큰딸이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혼잣말처럼 내뱉던 말이 떠오를 줄이야!

       ‘하여간, 대한민국 대통령은 3D 직종이야! 자기네 집 강아지가 울어도 모두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마당에... .그런데도 왜들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저렇게 야단들일까?’

      녀석의 말이 옳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해서,왕이든 대통령이든 총리든 의원이든 그들 DNA 구조가 우리네 일반인의 그것과는 무척 다를 거라는 ...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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