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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빈(孫矉)’과 ‘방연(龐涓)’수필/신작 2021. 11. 27. 23:49
‘손빈(孫矉)’과 ‘방연(龐涓)’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때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에는 정치가 겸 사상가인 ‘귀곡자(鬼谷子)’가 그야말로 ‘귀곡(鬼谷)’에 은둔하고 있었다. 그는 병법(兵法)에도 능했는데, 그는 성향이 아주 딴판인 두 제자를 두고 있었다. 바로 ‘손빈(孫矉)’과 ‘방연(龐涓)’이 그들이었다. 손빈은 어질고 지혜로워 스승으로부터 늘 귀여움을 받았으나, 방연은 다음과 같은 꾸지람을 가끔 듣게 된다.
“방연, 자네는 다 좋은데, 질투심이 많고 야심이 강해서 탈일세. ”
사실 방연은 늘 ‘병법 익힘’에 손빈한테서 열등감을 지니고 지냈다. 그러던 차에 그는 그 설익은 병법을 밑천으로, 아니 그 알량한 병법을 무기로, 위(魏) 나라로 가서 혜왕(惠王)의 장군이 되었다. 스승의 만류도 아랑곳 않고서.
방연은 위나라 장수로 지내는 동안, 왕으로부터, “제나라에는 ‘손 아무개’란 출중한 인물이 있다는데... .”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에 방연은 질투심이 한껏 돋쳐(?) 손빈을 천거하여 위나라로 오게 한다. 한때 절친했던 교우(敎友)였던 방연의 함정에 제대로 빠진 손빈. 손빈은 곧바로 방연의 계략에 의해 제나라 간자(間者)로 몰리게 된다. 방연은 자기가 적은 밀서(密書)를 손빈의 처소에 슬쩍 감추어 두고, 그걸 압수했노라고 왕에게 펼쳐보임으로써.
손빈은 절대권력인(?) 방연에게 애걸복걸하여 사형만은 겨우 면한다. 대신, 양 무릎뼈[臏,髕;슬개골]를 도려내고, 얼굴에 먹칠로 죄명 문신[墨刑]을 하는 이른바,‘臏刑(빈형)’과 ‘墨刑(묵형)’을 동시에 당하고 옥에 갇히게 된다. 사실 ‘손빈’의 본명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때 무릎뼈[빈;臏,髕]를 도려내는 형벌에 처해졌음에 기인한 이름이다. 그는 <<孫子兵法>>을 지은 손무(孫武)의 5대손이며 후일 <<孫臏兵法>>을 저술했다.
방연의 악행(惡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옥에 갇힌 손빈한테 은근슬쩍 꼬드긴다.
“너네 집안 내내 내려오는 <<孫子兵法>>만 필사(筆寫)해주면 너를 방면(放免)해 줄 터이니... .”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기며 손빈은 나날 부지런히 집안의 병법을 더듬어 적어나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옥문(獄門) 앞에 나타난 방연의 심복 옥지기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실토한다.
“제발 그 일을 천천히 하십시오. 그 일이 끝나면... . 참, 그리고 오늘은 무슨 글씨를 쓰신 겁니까?”
손빈이 자기가 쓴‘赤對’라는 글씨를 보여주면서 말한다.
“ ‘적대(赤對)’라는 낱말일세. ‘진정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한다.’는 뜻일세. ”
손빈은 옥지기한테 남의 속뜻도 모르고 지낸 게 모두 다 자기 어리석음 탓이라고 오히려 위로한다. 방연이 그 <<孫子兵法>>의 비서(祕書)를 손아귀에 넣는 순간, 손빈의 목은 곧바로 달아날 거라는 정보를 옥지기는 그야말로 진정한 맘으로 손빈한테 알려준 거. 손빈은 그날부터 일부러 미치광이가 된다. 그러면서 방연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병법을 더 이상 적지 않는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때마침 제나라 사절단이 위나라에 도착한다. 제나라 사절단은 야음(夜陰)을 틈타 커다란 소금독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감옥에서 손빈을 빼돌려 소금독에 숨기고 제나라로 돌아간다.
제나라에 돌아간 손빈은 위왕(威王)의 책사(策士)가 된다. 얼마 뒤 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에서 제나라에 도움을 청해왔다. 제나라 위왕은 조나라를 돕기로 결정하고 손빈을 군사(軍士)로 삼았다. 불구가 된 손빈은 휘장을 친 수레 속에 있으면서 모든 계책을 세우고 있었다. 이때 손빈의 전략은 그 유명한 ‘위위구조((圍魏救趙)’이다. ‘위(魏)나라를 포위하여 조(趙)나라를 구하다.’란 전법이다. 정면충돌을 피하고 상대의 허점을 공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고대 중국의 병법인 《삼십육계비본병법(三十六計秘本兵法)》의 2번째 계책이기도 하다.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조나라로 가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겠지만, 손빈은 정예군사들이 수도(首都)를 비운 사이 그곳을 공략하였다. 제나라는 승리하였다. 손빈은 위나라 장수 방연한테 제대로 일격을 날린 셈.
이로부터 13년 후 이번에는 위나라와 조나라가 연합하여 한(漢)나라를 공격하였다. 한나라가 제나라에 위급함을 호소하여 구원을 요청해왔으므로 제나라에서는 손빈의 계책에 따라 위나라의 수도로 쳐들어갔다. 이때도 위나라의 장수는 방연이었다. 방연은 제나라 군사가 대량으로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나라 공격을 중지하고 돌아갔다. 제나라 군사가 방연보다 먼저 이미 위나라의 국경을 지나서 서쪽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이때 손빈의 전략은 ‘감조유적(減灶誘敵)’이다. ‘부뚜막[灶]을 줄이고 적을 유인한다.’는 뜻이다. 즉, 적이 두려워 후퇴하고 군사들이 탈영하는 등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거짓으로 보여주는 전략. 이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위나라 장수 방연은 3일 동안 행군한 후 매우 만족해하였다.
“내 본래부터 제나라의 군사들이 겁쟁이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병졸 가운데 도망간 자의 수가 이미 반을 넘는구나.”
손빈은 방연의 행군 속도를 계산하여 날이 저물면 틀림없이 ‘마릉(馬陵)’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릉이란 곳은 길이 아주 좁을 뿐 아니라 길옆이 아주 험난하고 막힌 데가 많아서 복병(伏兵)을 매복시키기에 알맞은 전략상의 요충지였다. 손빈은 큰 나무를 깎아서 희게 만든 후 거기에다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을 것이다.’라고 써놓았다. 그리고는 제나라 군사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골라 일만 개의 쇠뇌[弩]를 장치하고 길옆에 숨어 위나라 군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빈은 군사들한테 지시했다.
“밤에 불빛이 보이거든 모두 일제히 발사하라.”
밤이 되자 방연은 과연 마릉에 이르렀다. 컴컴한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유독 흰 나무에 글씨가 적힌 것이 보였다. 방연은 불을 켜 비춰보면서 그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채 다 읽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의 일만 개의 쇠뇌가 한꺼번에 강한 화살을 발사하였다.
방연은 자기의 지혜가 모자라 싸움에 패배한 것을 알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찌르면서 탄식한다.
“손빈, 결국 내가 또 네 놈의 명성을 드높이는구나.”
요즘 휠체어에 해당하는 수레에 탄 손빈은 죽어가는 방연을 향해 말한다.
“자네는 실력은 있지만, 질투와 탐욕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듯하네. 적의 정세를 살피지 못하면 그 싸움은 지는 거라네. 그리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승리라네.”
이제 다시금 수필작가로 엄연히 돌아와 정좌(正坐)한 이 한밤. 온 가슴으로 손빈과 방연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히, 옥에 갇힌 손빈이 방연의 심복 옥지기한테 보여준 그 글씨, 赤對(적대)’ 의 뜻,‘진정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한다.’를 곰곰 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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