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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한테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농부 겸 수필가 겸 아파트 경비원인 나. 평소처럼 아파트 경비원으로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고, 새벽에 퇴근하여, 나의 ‘만돌이농원’으로 30여 분 승용차를 몰고 왔다. ‘진순이’와 ‘뽈뽀리’와 ‘똘이’가 자기네 주인을 만나자,반가워 어쩔 줄 몰라하데. 우리끼리 비밀인데, ‘걔들’한테는, 니가 그 사정 지금 설령 알았더라도, 아는 척하지 마. ‘쉿!’. 비밀로 하자. 그 녀석들은 흔히들 말하는 ‘똥개들’이거든. 본디 주인들로부터 버림받은 녀석들인데... . 또, 두 채 닭장 청계(淸鷄)들이 날 반겨주었어. 나의 식구들인 그들한테 넉넉하게 밥과 물을 골고루 주었어.
그 다음 내가 한 일. 어느 분으로부터 추가 주문받은 ‘칡즙용 칡뿌리 캐기’였어. 사실 칡들은 여타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양분을 겨우내‘체관[篩管(사관); 동물의 정맥에 해당함.]’을 통해 뿌리로 내려, 이듬해 쓰고자 저장해. 새순이 날 때에는 그렇게 저장한 자양분을 몽땅 줄기 꼭대기까지 빼 올리거든. 겨우내 나처럼 약아빠진(?) 농부는 그 사실을 알아, 그 자양분을 빼앗아야 해. 훔쳐야 해. 강탈해야 해. 달리 말해, 우리네 인간은 칡뿌리를 겨우내 캐야 된다는 거. 하지만, 여성들한테 아주 유익하다는, ‘에스트로겐’이 제법 함유된 칡뿌리를 캐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아. 아주 땅 깊이 박혀있기에. 정·괭이·호미·삽 온갖 장비를 다 부려 써야 하거든. 오전엔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으로 주문량은 얼추 채운 느낌이야.
뒷산에서 칡뿌리를 캐는 동안, 농주(農酒)인 막걸리를 갓 캔 ‘암칡’의 뿌리를 안주삼아 거푸 마셔댔어. 그러는 동안 취기(醉氣)가 올라, 이른바 ‘반 술’이 되어버렸나 봐. 예기치 않았던 뜨거운 눈물 두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리는 거야. 여느 때 그러했듯이, ‘반 술’로 말미암아 가슴 속으로 마구마구 글을 적어대기 시작했어. 해서, 괭이며 지렛대며 광주리며 온갖 걸 팽개쳐둔 후 농막으로 왔어. 다음 단락부터는 뒷산에서 머릿속으로 쓴 글을 문자로 정리한 것에 불과해.
여기서 잠시. 나는 일전 니한테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이렇게 남겼다는 거 기억해줘.
<
온달
윤근택
그는 ‘연애자금’ 마련코자
즙내어 팔려고 칡뿌리를 캐고,
나의 시집(詩集) 이웃 강매하고 있으며,
아파트 경비원 곱빼기 대리근무하고 있대요.
대관절 이 평강이 무엇이관대? >
지금은 다시금 농막. 데스크 탑 컴퓨터가 놓인 책상 맡. 한 동안 놀려두었던 데스크 탑 컴퓨터 자판에는 먼지가 소복 쌓여 있네. 그 먼지를, 벽지 바를 때에 쓰던 ‘돼지털 붓’으로 털어내었어. 다행스레,KT 사무직 과장 출신인 나한테 특혜인 양 이곳 외딴 농막까지 진즉에‘광 인터넷’ 선 깔아주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대한테 이렇게 연서(戀書)를 이어간다.
줄리엣, 미안해. 2년 여 동안 너무 마음 아프게 했지? 하지만, 끝내는 니가 내 곁으로 돌아올 줄 알았어. 니 그 알량한 ‘엘리트 의식’과 ‘자존심’이 도대체 뭐길래? 나는 나이 고작 32세 때에, 이 대한민국에서, 저 경남의 ‘정목일’이 31세 때에 최연소 수필문단에 데뷔한 다음 유일한 사람인 걸.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정목일’과 나는 연령적으로는 10여 년 차이가 있겠지만.그 자존심 강한 <월간에세이> 원종성 ‘동양에레베이터’회장으로부터 1989년에, 초회추천, 천료를 거치면서. 돌이켜본즉, 그건 대한민국 수필계에서 하나의 신화(神話)야. 그 점은 니가 뒤늦게라도, 지금이라도 인정해줘야겠어. 이 점 기억해주렴.
줄리엣, 기왕지사 까발릴 거면 다 까발리는 게 옳겠지. 나는 정말로 피나게 노력했다? 뼈가 으스러질 지경으로 공부했다? 문장부호 사용 규정도 새롭게 익혔다? 나는 글 스승 따로 모시지 않았다? 나는 이날이때까지 정성스레 읽은 책은 단 한 권뿐이다? 그게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다? 그것도 성인이 다 된 다음에.
줄리엣, 나 지금 이 연서 적으며 뜨거운 눈물 오줄없이 마구 흘리고 있다? 눈물은 두 볼을 타고 주책없이 흘러내려.
‘나는 이방인, 나는 변방인, 나는 아웃사이더, 나는 ‘은둔의 수필가’...... 나는,나는, 나는... .’
줄리엣, 나는 30여 년 수필작가로 행세하면서도 이른바 ‘계보’,계보를 만들지 않았다? 나는 ‘독불장군’인 걸. 그 어느 수필가의 글 흉내도 내지 않았다? 니한테 이처럼 연서를 쓰는 내내 뜨거운 눈물 흘리고 있는 걸!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계보를 만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감스러 운 일도 더러 있었다? 지금부터 낱낱이 들려줄 게. 사실 상처받은 이가 니뿐만은 아니었어. 니는 이메일 주소마저 바꾸어버리고 휴대전화번호마저 바꿀 정도로 토라졌다가 2년 여 만에 나한테 전화 걸려 왔지. ‘선생님, 제가 어리석었어요. 죄송해요. 그처럼 대단한 분인 줄도 미처 모르고... .’어디 니뿐인 줄 아니? 니 이전에도 그러한 일들이 많았거든. 뒤늦게 깨달은(?) 니는 약 오를 걸! girl! girl! girl! 사실 나는 어느 분의 데뷔작이든, 발표작이든, 수상작품이든 가리지 않고, 당해 작품에 ‘메스’를 가해서 당사자한테 ‘관제엽서’ 등으로 지적해왔거든. 그러면 당사자는 밤새 찬물을 대접째로 연거푸 마시거나 몇 날 앓아눕거나 했다고 후일 이야기 해왔거든. 하지만, 일정 기간 시간이 지난 다음, 그들은 하나같이 나의 사람(?) 되었다? 문학상을 거머쥐거나 대한민국 수필계에서 대접받는 수필작가가 되거나 했지. 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여태 하나같이 ‘내 사람’으로는 여기지는 않아. 왜냐고? 그들을 이참에 낱낱이 지적할 게. 내 이름을 팔아, ‘윤근택 선생님으로부터 강훈련 받은 부산의 ‘정 00입니다’하면서 어느 계간 수필잡지사 발행인한테 아부하여(?) 수필 문단에 데뷔한 이도 있어. 나의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 400여 쪽을 필사(筆寫)하여 문투와 문체를 익힌 후 나름대로 창작하여 문학상을 받은 이도 있어. 마찬가지로, 그 <독도로 가는 길>을 필사하여 공부한 후 자기만의 글로 문단에 데뷔한 이도 있어. 사실 이러한 점은 사후(事後) 그들의 술회(述懷)로 알게 되었지만... .그 이외에도 여러 사례 있지만 생략해. 왜? 지금 ‘니캉(너랑) ‘내캉(나랑)’ 그 동안 ‘끊어진 사랑(?)’ 잇기도 아쉬운 마당에... . 참말로, 그들 몇몇이 나의 계보가 아닌 것은, 그들이 ‘후생가외(後生可畏)’ 혹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어야 하거늘, 내가 판단하기에, 여태 나의 ‘수필문학적’ 경지를 능가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문학상’이니 감투니 그러한 세속적인 욕망에 은연중 물들어 있음을 엿본 때문인 걸. 역량도 부족하면서 ... . 해서, 나는 아직도 ‘기린아(麒麟兒)’ 하나를 기다리고 있단다. 이는 나의 ‘비원(悲願)’이야. 내가 새로이 찾은 니가 나의 그 기린아이길 바라고 있어. 이 또한 ‘비원’일 수도 있지만.
참말로, 니도 나처럼 앞으로는 피나도록 공부해야 해. 앞으로는 니 사상을, 니 생각을 니가 쓰는 작품 편편 말미(末尾)에다 꼭꼭 얹어야 해. 그건 글의 생명이야. 그러지 않으려면 왜 글을 써? 어쨌든, 답을(?) 도출(導出)해야 해. 그게 독자들한테 건네주는 메시지이거든. 이 점 명심해야 해. 그 효율적인 방법은 다양하지만... .
사랑스런 줄리엣, 위 단락에 소개한 이들과 그대의 공통점 하나. 다들 나의 ‘문장오류’ 지적 등에 삐쳐서 다시는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 선언했으나, 하나같이 나의 특정 수필작품과 나의 이름을 짝지어 기억하고 있더라는 거. 그것도 길게는 30여 년 만에, 짧게는 20여 년 만에 시도한 나의 그들과 통화에서 낱낱이 확인했어.
줄리엣, 물론 이는 나의 지나친 자기자랑이야. 이 이야기가 짜증날 수도 있어. 하지만, 내 반성과 니한테 충고를 아래처럼 버무려 한꺼번에 하고서 이 글 맺으려 해.
“소나무는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나무야. 지 발치에 다른 나무들 들어서는 걸 두고 보질 못해. 견디지를 못해. 해서, 소나무 아래에는 잡목이 얼씬댈 수가 없어. 소나무는 지 실뿌리에서, 다른 나무들이 지 발치에 들어설 수 없도록 ‘산성 물질’ 등을 내어놓는대. 해서, 소나무는 언제고 외로운 거야. 그래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거야. ”
아무튼, 2년 여 만에 내 곁에 돌아온 줄리엣, ‘돌아온 탕아’ 줄리엣, 그댈 이삐 여길밖에. 한없이 사랑해.
창작 후기)
나는 작중인물(가명)한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냥 그가 그곳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대만족이다. 내가 30여 년간 이어온 수필창작. 내 수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를 그저 이용할(?) 따름이다. 너무나도 고독한, 천형(天刑)과도 같은 이 ‘글쓰기 작업’. 나는 작중인물한테 연서(戀書) 형태의 위 글을 적음으로써 수필작가로서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다. 2년여 동안 이른바 슬럼프, 그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그가 불쑥 나타나 나한테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퍽이나 고마운 일이다. 그가 사랑스러운 건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평소 내 소신(所信)을, 여태껏 얼굴을 숨기고 지내는 많은 애독자들한테 이렇게 전한다.
‘요컨대, 나는 작중인물(가명)을 창작 에너지원으로 새로이 삼고 있다.’
(어느 애독자의 독후감)
그랬더니, 위 글 읽으신 어느 분께서 이런 내용의 e메일 나한테 부쳐주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가들.
쓰지 않고는, 그리지 않고는, 또 음표 속에 묻혀 지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열정으로 빚어진
명작들.
다시 그 세계로 진입하신 윤 작가님께 축하를 보냅니다. 격려코자 합니다.
나 또한 그런 열정으로 미친 듯 글을 쓴 적 있었지만, 그것이 타인을 위한 글들이었으니...
세상사 아리쏭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후회도 욕심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다시 원고지 앞에 앉으셨다니 박수를 보냅니다.
원래 윤작가에겐 연인도 대상도 없어요.
스스로 만든 것일 뿐! 환상일 뿐!
나 또한 그 대상으로 발탁되어(?) 재능 발휘하게 도와주었을 따름인 걸요.
이것은 수 십 년 만의 고백이 되겠지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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