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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신발' 다시 읽기수필/신작 2022. 5. 24. 20:25
제 2신)
강원도 어느 곳에 사신다는 제 애독자님, '나무같은 삶'이시여!
님의 전화번호도 놓쳐버렸어요. 죄송해요.
제 엉터리같은 독자 관리를 다시 반성해요.
부디, 행복한 나날!
사실 님께서는 응답은 없으시되, 득달같이 제 신작을 e메일로 읽으시더군요.
사랑해요. 당시 님께 헌정한 글인 거 아시죠?
여기서도 읽으실 수 있어요.
‘간디’의 신발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가죽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나. 103동 필로티(pilotis) 벤치 옆에 놓인 담뱃재떨이와 보도블록 틈새에 낀 담배꽁초를, 청소하다가 깜박 빠뜨렸다기에, 도로 가서 줍다가 생긴 일이다. 마침 집게와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지 않고, 그야말로 비무장으로(?) 나섰다가 일이 생겼다. 털 내피(內皮)가 된 가죽장갑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낀 채 담배꽁초를 줍자니 우둔해서 오른짝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해서,왔던 길을 수차례 되돌아가서 찾아보았건만, 바람에 데굴데굴 굴러갔는지, 끝끝내 가죽장갑 한 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가죽장갑의 내력이다. 어느 낯모르는 애독자가 몇 종류의 월동의복과 함께 택배로 선물로 부쳐준 것이다. 그는 자기 친정부친도 예전에 어느 회사 경비원으로 지내셨다며, 경비원의 애환을 알아 겨우내 손 얼세라, 부쳤다고 나중에 e메일을 보내온 바 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선물인가? 남의 고마운 선물을 그처럼 소홀히 다뤘으니... . 이제 제 짝을 잃은 왼짝 가죽장갑은 빛을 잃고 말았다.
이 일을 당하고 보니, 문득 인도의 간디가 떠오를 게 뭐람?너무도 유명한 ‘간디의 신발 한짝’ 일화(逸話).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급히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잃어버린그 신발 옆에 던졌다. 동행하던 사람들이 놀라 묻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신발 한 짝만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신발 한 켤레를 제대로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사실 당시에는 인도에서 신발은 고가품(高價品)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순간적 판단을 한 간디. 그의 그릇이 얼마나 컸던지 이 한 사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하더라도, 나는 외톨박이가 된 가죽장갑을, 간디처럼 아파트 화단에 마저 던져버릴 수도 없다. 부득이 농사나 허드렛일을 할 적에 재활용할밖에. 그 애독자한테는 두고두고 미안해하겠지만.
내 생각은 어느새 ‘짝짝이’가 얼마나 불편하며 얼마나 보기에도 아니 좋은지에까지 닿고말았다. 농사꾼이기도 한 나는, 여러 켤레의 장화(長靴)도 지녔는데, 더러는 치수와 ‘뒤축 닳음’이 다른 걸 억지로 짝을 삼아 신을 적도 있다. 한 짝이 ‘펑크’나거나 할 적에 주로 그리한다. 한마디로 걸음이 불편하다.우리네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발만이 아니다. 담배도 늘 즐겨 태우는 ‘Simple classic’이 아니면, 혀가 금세 알게 된다. 짝짝이 신발을 신고 걸을 적마다 소아마비 등으로 불편한 이들의 고충을 생각해왔던 것도 사실. 우리가 즐겨 쓰는 말, “아픈 다리는 들수록 낫다.”도 겹쳐지고... .
내 생각은, 외톨이가 된 가죽장갑으로 말미암아 한층 비약(飛躍)하여,‘비익조(比翼鳥)’에까지 닿고 만다. 왼 날개 하나, 오른 날개 하나 각각 지녔다는 전설상의 새. 둘은 상하(上下) 겹쳐한 몸체를 이뤄 날아야 정상적으로 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왼 날개든 오른 날개든 한 쪽만 지닌 새나 비행기를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선풍기의 경우도 날개 하나가 부러지면,균형을 잃어 소리만 요란했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지낸다.
요컨대, 짝짝이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보수니 진보니, 좌익이니 우익이니 내 편 네 편 하며 편 갈라서 아옹다옹 할 일이 없다. 가죽장갑 한 짝을 잃은 나는, 각종 운동회에 ‘짝짝이 신발 신고 달리기’를 넣어보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이르렀다. 한 발에는 고무신을 신고 한 발에는 장화를 신고 달리기를 해보든가, 한 발에는 슬리퍼를 신고 한 발에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해보든가. 그러면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될 터이고, ‘온전한 짝’의 소중함도 알게 될 터이고, 운동경기에 참여한 이들과 관중들에게도 함께 웃음을 선사할 것도 같고.
이참에 국회법도 확 뜯어고치면 어떨까도 싶다. 그들로 하여금 양복저고리에‘금배지’를 달게 하는 대신, 등원(登院) 때에는 반드시 짝짝이 신발을 신도록 한다면? 그러면 여야가 서로 더는 트집 잡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일은 없으려나?
작가의 말)
연상(聯想)은 이어질수록 좋다. 모름지기, 작가는 연상작용이 빼어난 이. 생각은 깊이, 쓰기는 잠시 잠깐.제 1신)
결코, 글쓰기만은 관둘 수 없어요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더 이상 낙담하지는 않아요. 잠시잠깐 제 글짓기 작업은 ‘휴업’상태였으나, 결코‘폐업’은 없어요. 내 사랑하는 애독자님들, 두루두루 사랑해요.
바로 어제 그렇게 맘 다질 일이 있었어요.
어느 아파트 경비실에 근무하는 저한테, 저녁 무렵 아내가 휴대전화를 걸어왔어요.
“현지 아빠, 죄송해요. 오늘 당신 생신이군요. 깜빡 잊어버려서 죄송해요. 하기야 생선이나 육류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시니... .”
저는 대수롭지 않게, 장난스레 응답했어요.
“나이 66세가 되는 게 뭐 그리 대수에요? 아파트 경비원한테도 생일이 있나요? 그냥 나이 먹어가는 것일뿐.”
생일 챙겨주지 못함에 미안해하는 아내한테, 휴게시간인 저녁 여섯 시부터 일곱 시 반까지는 자유시간이니, 승용차로 7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가서, 된장찌개 반찬으로 저녁밥 먹고 오겠노라고 하였어요.
시간에 맞춰, 제 가족이 사는, 아니 아내가 혼자 살다시피하는 아파트로 승용차를 몰고 갔어요. 그 아파트 도로변에는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가 결혼도 미룬 채 11년차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이 있어요. 길가에 잠시 승용차를 세우고 ‘비상깜박이’를 켰어요. 녀석이 반갑게 맞아주데요.
“ 아빠, 귀빠진 날이라면서? ‘콩그리에이션, 해피 버스데이!’”
저는 또다시 장난기 섞인 대꾸를 하였어요.
“뭐 ‘벗어데이’라고? 하긴 맞는 말이야! 그때 이 애비는 ‘(발가) 벗었대이; 발가벗고 태어났다는 뜻임.)”
미역국을 반찬으로, 저녁밥을 그야말로 조촐하게 차린 생일상 저녁밥을 먹고, 승용차를 몰아 다시 제가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실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휴대전화기 벨이 울렸어요. 혹시나 염려되어 러시아워임에도 응답했어요.
“네, 정문 경비실입니다.”
상대는 여성의 목소리였어요.
“선생님, 그 동안 제 휴대전화번호 놓쳤어요? 오늘 선생님 생신이시죠? 축하해요. 두 따님들은요?”
이 무슨 감동? 그분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여인이시고, 친정이 내 고향 청송을 가기에 앞서 ‘노귀재’ 재를 넘기 전에 자리한 영천이라던 분. 그분은 연령적으로는 저보다 한, 두 살 아래라던데... . 그분은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타인이 퍼간 제 글, 그 옷자락을 잡고 찾아와 제 블로그에 댓글을 수없이 달았던 분. 서울의 어느 교회 목사님 부인이라던데... . 제 수필작품들을 읽으실 적마다 거기서 교훈이든 지식이든 교양이든 하나씩 꼭꼭 얻어가셨다는데... .
하필이면, 제가 너무너무 심적(心的)으로 힘들 때에, 제 음력 생일날을 맞추어 나타나시다니!
저는 울먹이며 불평을(?) 했어요.
“사모님, 아니 ‘정옥’, 나는 님이 저승가신 줄 알았어요? 그 숱한 e메일도 거의 한 해 동안 아니 읽으시고 하여서요. ”
그랬더니, 그분은 ‘저승’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정정해주며, 그 동안 기도에 열중하다보니, 제 그 많은 수필작품들을 읽지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다 읽고 계셨대요.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가족도 놓쳐버리기 쉬운 제 음력 생일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기억하고 계시다니! 어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제 작품, ‘유품’을 통해, 제 어머니의 기일(忌日)인 ‘윤 오월 초열흘’까지 기억하고 계시다니!
그분께서는 그 많은 제 수필작품들의 문장과 거기 쓰인 어휘까지도 죄다 기억하고 계신다는 뜻이 아닌가요?
더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뭣이 필요하겠어요?
저는 매양 징징댔지만, 낯을 드러내지 않고서라도, 숨어서 제 수필작품들을 온 가슴으로 읽고 계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요컨대, 저는 결코, 글쓰기만은 관둘 수 없어요. 더 고마운 점은요, 오늘 새벽 아파트 경비실에서 퇴근하여, 식탁에서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는 동안, 어제 저녁 스토리를 들려주었을 때 아내의 반응인 걸요.
“ 윤 작가님, 그러니 앞으로 제발 애독자님들 관리를 잘 하세요. 그분들 마음 다치지 않게, 완급(緩急) 속도를 조절하여 관리를 잘 하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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