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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23)
    수필/음악 이야기 2014. 5. 15. 23:03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23)                     

     

                                                    - 부친과 음악으로 겨뤘던 작곡가-

     

                                                                                                     윤근택 (수필가/수필평론가)

     

       그의 부친도 작곡가였으며 그의 동생도 작곡가였다. 음악은 그 댁의 집안내림이었다. 그의 부친은 자신이 작곡가였으면서도, 정작 아들이 돈 아니 되는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어린 그에게 매질까지 하였다. 그런데도 어린 그는 몰래 몰래 바이올린을 연습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재능을 알아, 후원해주었다고 한다.

       한편, 그의 부친은 바람이 나서 가정을 제대로 보살피지도 않고, 여자를 붙여(?) 집을 나가버렸다. 그 사이 그는 음악에 열중하게 된다. 19세가 되던 해 그는 연주단을 이끌고 자기 부친과 같은 무대에서 음악 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자 짓궂은 비엔나 언론이, ‘S(그의 부친 이름 이니셜) vs S(그의 이름 이니셜이며, 부친의 이름과 똑 같다.)’라는 기사를 적게 된다. 그러한 선동적 제목으로 부자간에 이간질을 하였다. 항간의 흥미거리였다. 심하게 열 받은 그의 부친은 아들이 섰던 무대에는 서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만다. 그의 부친이 열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뜨자, 그는 부친이 이끌던 악단의 멤버들을 자기 사람들로 받아들여 악단을 꾸린다. 후세사람들은 그의 부친을 두고 ‘왈츠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를 두고서는 ‘왈츠의 왕’이라고 부른다. 그가 대체 누굴까? 바로 ‘요한 스트라우스 2세(Johan StraussⅡ, 오스트리아, 1825~1899)’다. 그의 부친은 ‘요한 스트라우스 1세(Johan StraussⅠ,오스트리아,1804~1849)’다. 사실 위에서 소개했던 비엔나 언론의 짓궂은 기사는 ‘Strauss vs Strauss’로 되어 있었지만, 독자님들이 바로 위 문장까지 흥미롭게(?) 따라오시라고 그대로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음악세계에 관해 적기 전에, 장유유서(長幼有序)이니 그의 부친 요한 스트라우스 1세에 관해서부터 적는 게 순서겠다. 그의 아버지 대표작은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ch)’이다. 정말 신나는 곡이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장군 라데츠키의 이름을 딴 곡이다. 라데츠키 장군은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북부 이탈리아 영토의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정부에 편든 곡이라, 한 때는 잘 나갔지만, 세상이 바뀌자 그 곡으로 인해 반혁명적 작곡가라고 낙인 찍혀 비엔나()에서 살 수 없게 되었고, 한 때 런던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곡이 매년 정월 초하루 비엔나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에서 그의 아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독일어식 이름임. 영어식 이름은 다뉴브강임.)과 더불어 단골 앵콜곡으로 연주된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부자(父子)의 그 두 곡을 오스트리아의 제2 애국가처럼 여긴다고 한다. , 그 비엔나 신년음악회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둠이 좋겠다. 매년 11일 오전 11 45(비엔나 현지시각)에 열리며, 71개국에 실황이 위성중계된다. 그러한 비엔나 신년 음악회에 부친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아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하나의 전통인양 앵콜로 연주된다니! 그거야말로 가문의 영광 아니겠는가.

      이제부터 요한 스트라우스 2세에 관해 집중탐구다. 그는 왈츠와 폴카 전문작곡가였다. 그가 적은 곡은 500여 곡이 넘는데, 그 가운데는 왈츠곡이 100여 곡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궁정무도회 음악감독으로 지냈다.1866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7주간 전쟁에서 참패하게 된다. 국민은 의기소침해 있었고, 그렇게 왕성했던 합창단의 음악활동 등도 위축되었다. 당시 비엔나 남성 합창협회 지휘자는, 명성 있는 그에게 남성합창단이 부를 수 있는 곡을 의뢰하게 된다. 그는 덜렁 승낙은 했으되,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원고청탁서를 받아놓고 게으름을 피워대다가 원고마감일이 다가오던 기억들 떠올려 보시라. 그는 도나우강변을 거닐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바랐다. 그러자 무명시인 칼 베크(Jarl Beck)의 시가 떠올랐다. 바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었다. 나는 괴로움에 허덕이는 그대를 보았노라/ 나는 젊고 향기로운 그대를 보았노라/ 마치 금광의 황금처럼 도나우강 위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위에/ 진실이 되살아 나는 것을… .//’ 그는 그 시에다 곡을 붙였다. 그러나 그 작품이 초연(初演) 될 때까지도 그는 정작 작품명을 정하지 못하였다. 실제로 도나우강은 푸르지 않고 잿빛인 관계로, 더더욱 망설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자 합창단원 가운데 어떤 이가, 속된 말로 그냥 밀어붙이세요.”하는 바람에, 그 무명시인의 작품명 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사실 1867년 초연의 반응은 별로였단다. 후일 그는 관현악용 왈츠로 편곡하게 된다. 그랬던 것이,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희망을 주게 되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하면 비엔나, 비엔나 하면 왈츠, 왈츠 하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등이 떠오르게 한 인물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위에서 이미 밝혀두었지만, 비엔나 신년음악회 앵콜 연주곡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곡이다. 3박자의 경쾌한 리듬이다. 사실 도나우강은 오스트리아만의 강도 아니다. 알프스에서 발원(發源)하여 유럽의 많은 국가의 국경(國境)을 거쳐 무려 2,860km를 유유히 흘러 흑해로 들어가는 강이다. 오스트리아의 대평원을 경유할 따름이다. 그러함에도 그 곡은 오스트리아의 애국가 수준으로 대접받는 곡이다. 실은, 그 곡이 비엔나 신년음악회 단골 손님이며 유럽 전역에 위성중계되는 것도 그 음악성 자체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 강이 자기네 나라를 경유하기에 늘 자기네 강처럼 여겨진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그의 음악 예술성까지를 시비 삼을 일은 전혀 없다. 어쨌든, 대단히 훌륭한 곡이다.  이쯤에서 요한 스트라우스 2세에 관한 이야기는 맺도록 한다. 대신, 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 색 달리 매료되었던 이를 소개해 보려 한다. 그가 바로 루마니아왕국  군대 악장 이오시프 이바노비치( Ivanovich Josif, 1845~1902). 그는 군악대 연주곡으로 뭔가를 적어보려 하였다. 1880, 그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서 영감을 얻어 다뉴브강의 잔 물결이란 곡을 적게 된다. 사실 그렇게 한 것을 두고, ‘영감을 얻어서라고들 하지만, 내가 두 음악을 비교해서 듣다가 보면 표절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마찬가지로, 3박자의 경쾌한 왈츠곡이다. 중학교 시절, 음악책에도 그의 곡에 노랫말을 붙인 곡이 실려 있었으며, 우리는 곧잘 불러댔다.어스름 달빛에 안개는 끼고/ 고이 잠드는 깊은 밤 하늘에/ 물결 잔잔한 다뉴브 강물은 / 달을 띄우고 흘러만 가네.// 물결치는 작은 배 위에 등불만 흔들리고/ 새들은 잠 깨어 날아가네/ 갈대 잎 끝마다 반짝이는 저 잔잔한 물결/ 굽이 흐르는 다뉴브 강물은//’ 그 노래를 부르노라면, 흔히들 말하는 이국정취(異國情趣)를 느끼곤 하였다. 우리한테는 이바노비치의 그 곡이 오히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그 곡보다도 친숙하다. 위 번안 가곡 때문만은 아니리라. 배우 겸 성악가 겸 신여성이었던 역사 속 인물 윤심덕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일본 유학 중에 극작가 김우진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가 유부남임에도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귀국길에 오른 그녀는 뱃전에서 연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 푸른 물에 투신하고 만다. 사후 그녀가 취입해 두었던 번안 가요는 공전(空前)의 히트를 하게 된다. 그 노랫말은 그녀의 운명적인 사랑 그 자체였던 관계로. 바로 ()의 찬미가 그것이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이바노비치한테 가서 다뉴브강의 잔 물결이 되었고, 그 다뉴브강의 잔 물결은 다시 윤심덕이한테 가서 넘실대는 현해탄이 되었고, 그 넘실대는 현해탄은 사의 찬미가 되었다. 참으로 묘한 인연들이었다.  이제 내 이야기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자기 부친과 음악으로 겨뤘던 작곡가. 그의 이름은 자기 부친의 이름 못지 않게 세계만방을 떨치고 있다. 동서를 초월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문득, 내 선친(先親)과 다투었던 일이 떠오른다. 농사꾼이었던 내 아버지. 당신은 열 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국립 4년제 대학교를 다니는 이 아들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당신의 기대와는 달리, 일자리를 못 구하고 빌빌대자 나를 몹시 구박하였다. 우리 쪽 말로, 몹시 후지박았다’. 결국은 내가 집을 뛰쳐나와 남이 버려둔 산골 외딴집에 숨어 회한(悔恨)에 잠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천재일우(千載一遇) 국영기업체 공채에 300 1 경쟁을 뚫고 합격하게 되었다. 나는 그 길로 보란 듯이 작별인사도 않고 떠났다. 물론 꽤나 시간이 흐른 다음 사과도 드렸고, 용서도 받았고,화해도 하였지만, 새삼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당신의 그 말씀은 내 삶의 크나큰 재산이었다는 것을.  이 눔의 새끼,흐리멍텅 해 가지고서… .도대체 (한이) 맺힌 구석이 있어야지.”왜 느닷없이 나의 추억담을 이처럼 갖다다 붙이냐고?  요한 스트라우스 2세는 그의 부친이 음악 하지 말라며 매질을 해대고, 바람나서 집을 나간 통에 훌륭한 작곡가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잘 났다고 남들한테는 뻐겼을지라도, 부모 없는 자식 없다고 믿으며, 자신은 요한 스트라우스 1세가 아닌 2세로 알려지기를 진실로 원했을 거라는 것을.

     

      (다음 호 계속)

    (창작 후기)
    은근히 걱정됩니다.
    제가 쓰는 글이 재미가 있어야 할 텐데요.
    하나의 소재를 어디에다 갖다 붙이고,
    또 다른 소재를 또 어디에다 갖다 붙이고,
    또 다른 소재를 또 어디에다 갖다 붙이면 글이 될는지
    요즘은 미리 생각하지도 않는 편입니다.
    '온전한 한 덩어리'로 만든다는 거 매우 중요하지요.
    그리고 '변주곡 형태'로 만든다는 것도 중요하고요.
    가끔씩은 '수미상관(首尾相關)'도 구사해 봅니다.
    '이미 했던 이야기가 다시 나오되, 그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새로운 생명력을 갖는다는 거.'
    위와 같은 사항이 사실은 채 정리되지 않은, 제 수필이론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끊임없이 적어보렵니다.
    아름다운 꿈 꾸고 계시죠?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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