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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적은 지 10여 년도 넘은 '요술난로'.
어제 어느 귀한 분께서,
나의 '만돌이농장' 주소는 어떻게 알아내시어,
택배로 '요술난로' 세 통이 든 한 박스를 부쳐주셨습니다.
고마움을 넘어... .
곧, '요술난로(2)'로 적어 헌정할 요량입니다.
다들 아름다운 하루 열어가세요.
요술난로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어느 꼬마 고객이 ‘요술난로’를 창구의 인터넷 시연장(試演場)에 두고 갔다. 파란 액체가 들어있는 비닐팩이다. 언젠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작은딸아이한테서 배운 대로 움켜잡고 흔들어 본다. 액체가 굳어지면서 따스해진다. 신기하다. 그때 딸아이는 그걸 ‘손난로’라고 가르쳐 주었다.
요술난로를 만지작거리다가 어느새 국-민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시오 리 학교길, 춥기는 왜 그리도 춥던지. 추위는 우리의 영양 상태와도 무관치 않았으리라. 검정 고무신, 볼받은 양말, 백프로(백 퍼센트 나이론을 그렇게 말했다.)점퍼, 산토끼 털 귀마개, 무명바지... . 우리의 겨울 복장은 대개 그러했다. 손가락, 발가락, 귀 따위가 몹시 시렸다. 친구들 가운데는 신발 바닥에 잎담배를 깔든지 고춧가루를 뿌리든지 하여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학교 중간쯤 가다가 보면, 상급생 형들이 삭정이나 고추대궁을 모아다가 불을 피워주는 일이 허다했다. 콧구멍이 새까맣게 되고, 불내음이 온 몸에 배여 교실까지 따라와 있었다. 어쩌다 언 발을 녹이려고 불을 쬐다보면 나이론양말 바닥이 송두리째 달아나기가 일쑤였다.
‘뚜꾸’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는 백프로점퍼의 등판을 다 태워먹고, 엉엉 울며 집으로 되돌아간 일도 있었다.
여태 요술난로를 만지작댄다. 생각해보니 나한테도 요술난로가 있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 소죽을 쑤고 있었다.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을 때는 늘 그 말씀이었다.
“야들아, 아궁이에다 묻어두었다. 꺼내서 들고 가거래이.”
우리는 다투어 아궁이 앞으로 갔다. 부지깽이로 뒤적여 돌멩이를 꺼내 양손에 하나씩 잡고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나의 난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둘째형님은 당시 10대 후반이었다. 그는 초동(樵童)이었고 나무장수였다. 그때 읍내 사람들은 땔감을 사서 쓰고 있었다. 햇볕에 말리려고 우물 ‘#’으로 높이 쌓아올린 장작더미가 눈에 선하다. 속히 말리려고 아궁이 앞에 세어두던 장작도 눈에 아른거린다. 긁어온 솔잎을 마당에 펴 말리던 기억도 새롭다. 솔잎을 ‘갈비’라고 불렀고, 불쏘시개로는 그저 그만이었다. 양달에서 긁어온 것이 윤기가 흐르고 화력이 좋다. 형님은 응달에서 긁어온 것이라도 이래저래 가공하여 상품가치를 한껏 높이고자 애썼다.
장날 등굣길에서 흔히 목격하던 일이다. 형님은 지게를 지고, 또래들보다 미리 집을 나섰다. 첫 번째 지게를 져다가 500미터쯤 앞에 괴어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두 번째 지게를 지고 1킬로미터 앞에다 괴어놓았다. 땀을 식히며 되돌아와서 첫 번째 지게를 다시 1킬로미터 앞에다 져다 놓았다. 이처럼 지게 둘을 교대로 지고 장으로 갔다. 마을 또래들과 결승점(?)에 함께 들어가자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읍내 초입에서 까다로운 아지매들한테 이런저런 논리로 흥정하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형님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임마들아, 느그들은 나무장수 되지말거래이. 어쨌든 공부 열심히 해야 된대이.”
가만히 눈감아본다. 까마득한 예전 같지만, 불과 4, 50년 전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대학에서 ‘임학(林學)’을 전공했다. 그렇더라도 형님의 분부대로 나무장수만은 되지 않았다. 우리 열 남매가 함께 자라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거부(巨富)가 되어 있다. 한겨울임에도 추위를 못 느낀다. 내의도 없이 지낸다. 실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부자가 되었다. 산골마을에도 집집이 기름보일러를 놓고 지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이지만, 산유국 못지않게 살아가고 있다.
꼬마 손님이 놓고 간 손난로를 다시 만지작거려 본다. 웬일로 가슴에까지 온기(溫氣)가 전해져 온다. 아버지와 형님이야말로 요술난로인가 보다. 50여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렇듯 내 가슴을 덥혀주고 있으니.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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