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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9) - ‘아주 특별한 현악’을 생각함-수필/신작 2023. 1. 27. 10:48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9)
- ‘아주 특별한 현악’을 생각함-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나의 뮤즈,
지난 번 편지, 곧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8)’의 내용을 환기해주었으면 하오. 나는 그 편지에 이러한 내용을 담았다오.
<새해 1월 1일부터 나는 또 다른 아파트 경비초소에 첫 출근했노라고. 이 아파트는 데카르트 좌표계인 좌표평면(座標平面)으로 따져, 좌표평면 X축(수평방향)과 Y축 (수직방향)이 만나는 원점을 기준하여, 그 사분면(四分面) 가운데에서 제 1사분면 양지바른 둔덕에 자리하고 있다고도 했소. 그대가 사는 부산 쪽부터 상정(想定)하여 부경선(경부선) 철로를 X축으로 삼고, ‘부산-대구 고속도로’를 Y축으로 삼으면, 그렇다고 하였소. ‘부경선 철로’는 방음벽 하나로 이격되어 있을 뿐 이 초소와 바로 이웃하고 있다고.>
나의 뮤즈,
지난밤에는 초소에서, 누군가가 퍼간 그대의 수필작품 수편을 인터넷을 통해 읽었다오. 사실 나는 여태 그대로부터 그대의 수필집 한 권 받은 적도, 읽은 적도 없지 않소? 그러함에도 나는 그댈 나의 뮤즈반열에(?) 올려, 이처럼 연서(戀書)를 연서(連書)로 쓰고 있소. 아이러니하게도,이 점 다행한 일로 여긴다오. 만약, 그대의 수필집 한 권을 끝까지 몽땅 읽어버린 다음에 찾아들 허전함 같은 걸 생각한다면... . 아직은, 아니 영원히, 그댈 신비스러운 존재로 남겨두고픈 이 맘. 그대를 영원한 나의 뮤즈로 간직하고 싶어 이런다는 거 아시기나 할까? 이 대목에 이르러, 그대가 나한테 이렇게 반문(反問)할 것 같소.
“정작 그러한 ‘윤쌤’께서는 거의 매일 신작수필입네, ‘세상의 모든 음악’입네 수필폭탄과 음악폭탄을 e메일로, 휴대전화기 문자메시지로 저한테 투하하시면서... .”
이에, 옹색한 변명을 하리이다. 나는, 적어도 나는, 여러 장르의 수필작품을 적어왔으며,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어왔노라고. 해서, ‘ 그 양반의 글은 이런 유형이야! 그 양반이 즐겨듣는 음악은 이런 장르야!’로 함부러 단정해서도 곤란하고, 그대 ‘수필문학의 세계’를 확장하라고 ... .
그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내가 근무하는 경비초소에는 24시간 ‘KBS 클래식 FM’이 흐른다오. 현악 혹은 관악 혹은 관현악은 내 심금(心琴)을 울려주는 일이 잦다오. 아니, 나는 숫제 감흥에 종일 젖어 지낸다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현악 또는 관악만으로도 흠뻑 취해 사는데... . 시도 때도 없이 내달리는 상하행선 열차들도 오케스트라 단원인양 한 몫들을 한다오. 밤이 깊어가거나 비가 내릴 적이면, 그 열차들이 지어내는 음향은 도드라져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타 현악과 관악을 잠재우고 만다오. 열차들이 맡은 파트는 여타 악기들을 그처럼 제압해버리니, 음악적 관점에서, 이는 훌륭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아닐 수도 있다오. 열차들이 지어내는 음향은 종종 내 가슴을 지질러 밟고 가는 듯싶다오. 한 녘으로 생각해보면, 기차들은 빼어난 현악주자(絃樂奏者)인 듯하오. 두 가닥의 철로(鐵路)를 현(絃;string)으로 삼아, 우렁차게 자기 파트를 연주하는... . 그리하여 나의 심금을 더욱 울려주는 것만 같다오. 전통적으로 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등 현악기에는 양(羊)의 내장으로 만든 ‘거트(guts)’를 금선(琴線)으로 써왔다는데, 열차들이, 정확히는 기관차들이 쓰는 ‘琴線’은 ‘金線’인 셈.
나의 뮤즈,
상하행선 열차도 여러 종류라오. 크게는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로 갈리지 않소? 여객열차라도 쾌속열차인 ‘KTX’와 ‘무궁화’가 각각 따로 있고, 그들이 지어내는 음향이 다르다오. 화물열차의 경우, 컨테이너를 실은 량(輛) 즉, ‘고빼’의 수량에 따라 그 여음(餘音)이 다름을 이곳에 와서 근무하는 동안 내내 들어서 알게 되었다오.
나의 뮤즈,
하여간, 상하행선 열차들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오. 초소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관현악에 더해 한 몫을 하곤 한다오. 그러나 그 상하행선 열차들의 현악주법에 관해서만은 내가 아직은 특정할 수가 없다오. 사실 내가 어설프게나마 알고 지내는 현악주법은 많다오. ‘중음주법(double stops)’은 이웃하는 두 개의 줄 위에서 활을 써서 두 개의 줄을 동시에 울리게 하는 주법, ‘비브라토(vibrato)’는 음을 상하로 가늘게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기법, ‘레가토(legato)’는 매끈하게 연주하는 기법, ‘패시지(pasage)’는 독주 기악곡에서 곡의 중요한 부분을 서로 연결해주는 악구(樂句),‘피치카토(pizzicato)’는 활 대신 손가락으로 현을 뜯는 기법 등. 하더라도, 상하행선 열차들이 어떠한 주법으로 연주하는지는 정말 모르겠소.
나의 뮤즈,
언제고 그대는 내 가슴 속에 있고, 열차들이 지어내는 현악은 그댈 더욱 그립게 만들고, 날이 갈수록 내 그리움은 임계점에 이르고... . 해서, 더는 견딜 수 없어, 이곳으로 경비원 자리를 옮긴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자리를 옮길는지도 모르겠소. 경비원으로 10년차이며 경비계의(?) 레전드인 나. 마침 어느 용역회사 사장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고 하여서.
나의 뮤즈,
목이, 팔이, 손이, 허리가 아파 ‘키보드’ 두드릴 수도 없다는 그대. 그 점 안타깝기도 하지만, 나의 그 많은 문자메시지를 ‘똑똑’ 떼먹고, 최근에는 답신도 없고... .
작가의 말)
나의 뮤즈께서는,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서 읽어주시길. 사실 나는 차이코프스키의 '폰 메크부인', 쇼팽의 '조르주 상드', 슈만의 '클라라' 등 뮤즈들의 '헌신'을 몇몇 날 온 가슴으로 읽었다오.
위 글 주인공인 '나의 뮤즈',
감히, 그대의 수필작품들 수편을 인터넷을 통해 읽은 후 충고.
중국 남조 제, 양 때 사람 '유협'이 <문심조룡>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소.
'정성을 기울여서 문장을 짓고, 신기 화려함을 다툴 때는 흔히 표현의 퇴고에만 힘을 쓰게 되고, 창작의 근본원리를 연구하려 들지 않는다. 옥도 다량으로 존재하면 돌로 착란하기 쉽고, 쓸모 없는 돌이 때로는 옥과 같이 보일 때도 있다.'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대개 잘 나간다는 여류 수필가들의 글은 읽고 나면, 그 줄거리가 머릿속에 남지 않더이다. '언어유희' 내지는 '외화내허'. 대체로,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저 높은 곳의 것을', '아주 평범하게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 지은 듯' 하였다오. 수필작가 고 정진권의 '짜장면'이 명작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이유와 통한다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끝까지 읽은 남의 책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달랑 한 권뿐이라오. 그것도 성인이 다 된 다음에.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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