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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27) - ‘입도선매(立稻先賣) 전략’도 알았던 음악인-
    수필/신작 2023. 1. 23. 10:30

         다들 '빨간 날'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하기야, '백수님'이나 '백조님'들 한테는 무의미한 '빨간 날'이겠지만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차츰 슬기로워진다는 거겠죠?

        출판비 문제로 끙끙대는 어느 문우한테는 다시 이 글로 아이디어 드려요.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27)

                                         - ‘입도선매(立稻先賣) 전략’도 알았던 음악인-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미리 밝혀두건대, 이 글은 ‘ Musique de Table(식탁음악) 창시자’란 부제를 붙인 본 연재물 제94화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다. 그때 글은 너절하고 성의 없게 지은 듯하여 다시 간추려 적고자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 두고.

        새벽에 출퇴근하는 나. 승용차 시동을 걸면, ‘김지윤 아나’가 진행하는 <새 아침의 클래식(오전 6시~7시)>이 여지없이 흐른다.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클래식 전문 프로그램이다. 거의 1,000년 동안 계속되어온 르네상스음악 시기를 지나, 1600년 무렵부터 1750년 사이에 유럽 음악계에 유행했던 음악사조가 바로‘바로크 음악’. ‘baroque(바로크)’란, 포르투갈어로서, ‘일그러진 진주’를 뜻한다. 르네상스음악의 안정된 균형미를 떠나, 형식과 균형을 깨뜨리고서 강력한 표현을 한 것이 바로크음악의 특징이라고들 한다. 흔히들,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 독일)와 헨델(1685~1759, 독일 태생, 영국 귀화)을 ‘바로크 음악의 쌍벽(雙璧)’으로 부른다. 그들 양인(兩人)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빚어낸 작품들이 빼어났음에 기초한다고 보면 될 터. 하지만, 미안하게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이 글의 주인공보다 당대에는 인기가 낮았다. 사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그의 작품인 <마태수난곡>이, 그의 사후 79년 후인 1829년에 당시 20대에 불과했던 멘델스존이 악보를 연구하여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의 음악가로서 명성을 되찾아준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다. 바흐와 동갑내기인 헨델은 국내에서는 종교적으로 금하는오페라를 하고 싶어, 영국으로 도망가서(?) 귀화까지 해버렸고... . 반면, 그들 양인과 친구 사이로 지냈던 4살 위인 이 글 주인공은 당시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곡가였다. 그가 바로 ‘식탁음악’의 최고봉에 올랐던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1681~1767, 독일)’이다. 그는 아예 대어놓고 자기 음악을 ‘식탁음악’이라고 하였다.

        다시 나의 이야기를, ‘김지윤 아나’가 진행하는 <새 아침의 클래식(오전 6시~7시)>로 돌린다. ‘김지윤 아나’는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그 프로그램에서 텔레만의 음악을 소개하곤 한다. 그는 왕성한 작품 창작을 하였으며, 8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창작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바흐는 말년에 이르러 작곡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예리한 문장력도 지녔던 모양이다. 첫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자, 재혼을 하게 되는데, 그 재취(再娶)는 도박 빚을 당시 돈으로 3,000달러씩이나 남겨놓고, 스웨덴 장교와 붙어 달아났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음악출판의 경제적 가치를 인지한 그는, 음악 마케팅까지 통찰했던 그는, 그 많은 빚을 갚고자 잔꾀를(?) 낸다. 바로 입도선매(立稻先賣) 전략. 1732년 51세였던 그는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자기의 ‘식탁음악’에 관해 광고를 내곤 한다.

        ‘내년에 출판될 나의 <Musique De Table(식탁음악) 곧, <Tafel Musik(독일어로 ‘식탁음악’임.)> 악보를 사고자 하는 이들은 사전 예약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185명이 200부 이상 악보를 사전예약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는 헨델도 있었으며, 헨델은 그 악보를 구해 무려 18번이나 자신의 곡으로 썼다고 한다. 당시는 ‘표절’이니 따위가 문제가 아니 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는 1773년 그 유명한 선곡집 <식탁음악>을 세 권씩이나 발간하게 된다. 관현악모음곡 3곡, 협주곡 3곡, 4중주곡 3곡, 3중주곡 3곡, 소나타 3곡 등이 포함된 악보집. 아내가 남기고 간 그 많은 빚을 갚고자 그리하였을까. 그는 살아생전 수천 곡을 남긴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의 <식탁음악>은 바로크 음악의 대표작으로도 꼽힌다.‘ 바로크 음악의 종합전시장’으로 부를 만치.

        내 이야기 잠시 샛길로 빠져든다. 식탁음악에 관한 추가설명이다. 궁정이나 대부호의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에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편안한 식사를 위해 제공되었던 음악, 현대식으로 말해, ‘BMG(Background music)’ 같은 음악. 사실 그 기원은 거슬러 16세기 중반부터이고, 연회에 음악이 빠져서는 아니 된다는 관습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연회나 결혼식에서 가수와 음악연주자가 필수요건이 된 것은 17,18세기부터. 루트 연주자나 하프 연주자에게, “귀한 손님들이 점식식사를 하는 동안 아주 매력적이고 멋진 춤곡으로 그들 귀를 즐겁게 하여야 한다.”가 의무로 요구될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텔레만이 그 시대적 요구사항에 제대로 부응했다는 것만 하여도 음악사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실 음악회나 사교모임이나 유희의 장(場)을 벗어나 요즘과 같은, 정숙한 분위기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형태의 음악으로 탈바꿈하는 데에는 텔레만 사후 100년 이상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식탁음악은 ‘춤곡 모음곡’으로 바뀌었다. 18세기 후반에는 그러한 음악을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즉, ‘희유곡(嬉遊曲)’로 부르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다시 내 이야기 본류(本流)를 찾아 돌아간다그처럼 식탁음악으로 인기를 누렸던 그의 음악도 19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장르의 음악인 ‘디베르티멘토’의 출현 등으로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그 자리를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대신 차지하게 된다. 정작 그때는 이미 바흐와 헨델이 재평가되던 시기였다.

        텔레만을 많은 이들이 평가했다.

        ‘그는 다작이기는 하지만, 실속 없는 3류 작가 정도야!’

        그러나 당시 음악 평론가 겸 바로크 음악가였던 ‘요한 마테존(Johann Mattheson, 1681~ 1764)'만은 그에 관해 따로이 언급했다.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 ~ 1713년,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와 ‘장 바티스트 륄리,1632~1687, 프랑스의 작곡가)’는 단지 명예를 얻었지만, 텔레만은 모든 찬사 위에 있었다.”

        그랬던 그의 음악이 20세기에 와서 부활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미학적으로 정확한 견해가 성립된 덕분이다. 대부분은 ‘막스 슈나이더’와 ‘로맹 롤랑’의 연구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해서, 요즘 들어 그는 바흐와 헨델에 비견될 정도로 ‘바로크음악의 거장’으로 칭송받는다. 1930년대 이래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음반들이 출판되면서 연주자, 지휘자, 음악 출판업자들의 관심이 켜져 간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매일 새벽 출퇴근 때에 그 낭랑한 ‘김지윤 아나’가 <새 아침의 클래식>에서 소개하는 텔레만을 듣게 된다.   

        요즘 내가 그 프로그램에서 듣는 텔레만. 그 빈도로 따지면, 바흐나 헨델에 못지않다.

     

     

        작가의 말)

        텔레만에 관해서는 이 연재물 제 94화에도 이미 다뤘다. 해서, 이번에는 가볍게 터치하고 끝낸다.

        출판비 문제로 고민하는 문우(文友) ‘ㅅ’한테, 나는 이미 수차례 충고를 한 바 있다. 위 텔레만의 ‘입도선매(立稻先賣) 전략’을 응용하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는 그가 ‘total marketing 전략’도 병행하기를 주문한 바 있다.그러했음에도, 그는 ‘시골양반 같은 생각’이라고만 깎아내렸다.

         그리고 공히 작가인 나의 뮤즈들이 관심있게 들여다보라고, 위 글 문장들 가운데에서 군데군데 밑줄 친 부분도 있다는 것을. 나름대로 문장기술(文章技術)을 거기 다 녹여 놓았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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