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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2) - 자기의 장송곡을 적은 작곡가 -수필/음악 이야기 2023. 2. 8. 11:28
명색이 농부인 제가... .
오후에는 본업에 충실해야겠어요.
미루어둔 봄맞이를 해야겠어요.
과일나무 전정, 과일나무에 거름 주기 등.
(나무꾼이)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신선들 바둑두기를) 백발이 될 때까지 구경할(훈수할) 수는 없는 노릇.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2)
- 자기의 장송곡을 적은 작곡가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때는 1694년 12월 28일. 영국의 메리2세 여왕은 천연두를 앓아 32세로 요절했다. 이때 황실과 귀족들의 사랑을 받아, 궁중용 음악과 귀족 연회용 음악과 영국 교회 음악 등을 무수히 작곡해왔던 그의 장송곡이 연주되었다. <메리 2세 여왕을 위한 장례음악, 작품번호 z,860>이 그 곡이다. 그 곡 가운데에서 ‘March : Sounded Before Her Chariot’는 퍽 인상적이다. 여기서‘Chariot’는 ‘운구(運柩)’를 뜻한다. 검은 상복(喪服)을 입고 운구하는 상여꾼들 앞에서 수 명의 악단이 장중하게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나아가는 행진.
공교롭게도, 그 곡을 적은 작곡가도 그 이듬해인 1695년 11월 21일에 나이 36세로 세상을 뜨게 된다. 그때에도 그가 적은 장송곡이 연주되었다. 그는 이 농부 수필가처럼 술꾼이었던 모양이다. 하늘에 해 박힌 날 술을 아니 마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가 하도 열불이 터져, 술집에서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은 남편을 골려줄 요량으로, 그날따라 문을 굳게 잠가 두었던 모양. 이 글의 주인공은 방문을 열지 못하고, 계단에서 밤을 꼬박 지샜던 모양이다. 그길로 독감에 걸려 그 아까운 나이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모차르트(1756~1791)의 ‘레퀴엠’이야기를 다시 아니 할 수 없다. 그도 결국은 자신을 위한 ‘레퀴엠(requiem;진혼곡)’을 적었던 셈. 다들 본 연재물 제 84화에서 일부 자기표절함을 이해해주시길.
<(상략)
1791.7. 어느 날.
모차르트는 그 검은 옷을 입은 심부름꾼의 복장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였을 거라는 게 중론(衆論)이다. 사실 부인인 ‘콘스탄체’한테도 “아마 나의 레퀴엠이 될 것 같소.” 말했단다. 그는 그처럼 저승의 사자(使者)가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에서 그 곡을 작곡해 나갔다.
1791. 12.4.
그는 몇몇 친구를 불러들여 여태껏 작업한 부분까지 시연(試演)을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제 겨우 제 3곡 제6부 제 8마디‘ 라크리모사( Lacrimosa,‘슬픔의 나날’,‘눈물겨운 그날이 오면’ 등의 뜻을 지님.)까지밖에 짓지 못했는데... .”
(중략)
1791. 12.5.오전 1시 55분.
그는 눈을 감았다. 그가 이승에서 누린 나이는 35세.(끝.) >
다시 이 글 주인공 이야기다. 그가 바로 영국이 자랑하며 ‘영국 음악의 아버지’로 부르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이다. 그는 영국에서 초기 바로크음악을 연 작곡가다. 사실 그의 출현 이전에는 영국이 고전음악의 변방이었다. 하이든, 헨델이 영국 국적을 취득했으나, 실은 본디 그들은 각각 오스트리아와 독일 사람이었다. 특히, 오페라 분야에서는 헨리 퍼셀 이전에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러했는데 그가 30세가 되던 1689년, 그는 친구가 재직 중인 첼시의 어느 여학교로부터 학교 행사에 쓸 짧은 오페라를 청탁받게 된다. 그래서 쓴 유일한 그의 오페라가 <디도와 아이네아스(Dido and Aeneas), z.626>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영국 최초의 오페라라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카르타고 여왕 ‘디도’와 트로이 왕자 ‘아이네아스’의 비련(悲戀)을 다룬 작품이다. 나는 이 글의 완성도를 드높이기 위해, 벼락치기로 그 오페라의 서곡을 들어보았다. 현악으로 경쾌하게 시작된다. 아름답다. 그리고 ‘디도’가 비련을 감당치 못해 자살하면서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When I am laid in earth)’는 서양음악 가운데에서 가장 슬픈 비가(lament)라고들 하는데, 그 점만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 ‘마스네’의 <비가(悲歌, 엘레지>가 더했으면 더했지! 그래도 그 노랫말은 슬프기 그지없다.
‘[몸종인 여인한테 한바탕 레치타티보(recitativo;말)를 읊어댄 후] 내가 땅에 묻힐 때/ 내 잘못이 당신에게 더 이상 해가 되지 않기를./ 나를 기억해주오. 나를 기억해주오./ 아! 하지만 나의 이 운명만은 잊어주오.//’
그의 음악세계에 관해 많은 음악평론가들이 말한다.
‘ 예리한 음악적 감각으로 독특한 개인 양식을 이룩하였다, 당대 유럽과 영국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였다, 영국 음악의 자존심이다, 작곡가로 짧은 생애 동안 다양한 장르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곡을 남겼다 등.’
사실 그의 작품수가 얼마나 많았으면 작품번호를 ‘z’로까지 분류할까. 미국 음악학자 ‘짐머만(Franklin Zimmerman)’은 자기 이름을 따서 ‘z’로 붙여나갔다.
헨리 퍼셀, 그가 이 세상을 뜬 이후 제대로 된 영국의 음악가가 나오기까지 200여 년 걸렸다는 게 음악계 중론이다.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1857~1934)’와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1874~1934)’는 헨리 퍼셀 사후 200여 년 지난 다음에 나타난 영국의 음악인들이다. 각급학교 졸업식에서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고취코자, 반드시 연주되는 엘가의 < 위풍당당 행진곡>, 점성술까지 익혀 7개 행성을 모은 홀스트의 <행성 모음곡(The Planets>. 그 가운데서도 ‘목성’.
사실 나는 이 글을 적기에 앞서, 인터넷 ‘나무위키’가 친절하게 맛보여준 그의 음악 몇 곡을 거듭거듭 감상하였다.
이제 나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우리 쪽 말인 ‘맛뵈기(←맛보기)’로 그의 음악 감상문을, 농부 수필가 수준으로 옅게 소개코자 한다.
1) <아서왕(King Arthur, z.628)>
그가 30세가 되던 해 적었다. 세미오페라다. 3막 중 '겨울 신'의 아리아 , ‘너는 무슨 힘으로(What power Art Thou)’. 본디 ‘베이스’ 곧, ‘여러 성부로 된 음악 중 가장 낮은 성부’를 위한 곡이다. 성악이다. 정말 묵직하다. 영화음악으로도 여러 차례 사용되었다고 한다. ‘Cold Song’이란 이름으로도 부른다.
2)< 압델라자르(Abdelazer, z. 570)> 중 ‘론도(Rondeau)’
‘무어인의 복수’라는 별명을 지닌 곡이다.
그가 36세로 죽던 1695년 여름에 적은 곡이다.‘Voice of Music’의 연주가 일품. ‘구스타프 레온하르트(Gustav Leonhardt, 1928~2012, 네덜란드)’가 ‘시대연주’ 곧, 작곡 당시에 연주를 상정하였던 피아노 전신(前身)인 하프시코드 연주하는 버전으로 들으면 더욱 황홀하다. 하프시코드와 관현으로 악기가 편성되어 있다. 후일 이 곡은 ‘벤저민 브리톤’에 의해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으로 재탄생된다. 음악평론가들은 귀족적 우아함과 당당함을 보여주는 곡이라고들 한다.
많은 이들은 이 곡을 퍼셀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한다.
3) <테 데움과 유빌라테(Te Deum and Jubilate), z. 232>
‘테 데움’은 ‘오, 하느님이시여,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뜻. ‘유빌라테’는 ‘기뻐 날뛰어라’ 뜻. 그의 종교음악이며 성악곡이다. 남녀 혼성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는 들을수록 성스럽고 거룩하다.
4) 건반을 위한 < Music’s Handmaid> 중 ‘A New Ground,z.682’
위 ‘2)’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시대연주’의 본좌(本座)였던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으면 기가 막힌다. 사실 이 곡은 연주자들이 잠깐만 배워도 칠 수 있는 저난이도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헨리 퍼셀, 그가 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이후 후배 작곡가들은 찬사를 보냈다.
‘ 퍼셀의 음악은 움직임으로, 춤으로 가득하다. 세상 어디를 살펴보아도 그의 음악만큼 연기하기 쉬운 음악은 없다.’
- 구스타브 홀스트(‘행성’의 작곡가)
‘ 셰익스피어가 아무리 위대해도 퍼셀의 ‘세이렌의 노래(오페라 <아서왕>에 나오는 아리아)’가 없었다면, 대중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 퍼셀의 추도문 중(1695년)
‘ 우리가 마침내 찾아낸, 세계 최고에 필적할 만한 영국인의 가치를 지닌 퍼셀.’
- 존 드라이든(영국 시인이자 유명한 비평가)
그러했던 그는 그 눔의 술 때문에 그 젊은 나이에 가고 말았다. 이 농부 수필가도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술기운에 격렬해진 감정으로, 감성(感性)으로, 절제력 없이 남들을 힘들게 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 건강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남을 힘들게 해서야?
작가의 말)
어찌되었든, 나의 음악 공부는 죽는 그날까지 주욱. ‘ 리베르 탱고’의 창시자이며 반도네온으로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한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회고를 다시 떠올리면서... .
“음악은 여자 이상이지요. 여자와는 결혼을 한 다음 이혼할 수 있지만,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한번 결합하면 평생껏 사랑하고, 땅에 묻힐 때에도 같이 묻히게 됩니다.”
이 글 역시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께 공손히 바쳐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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