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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품과 함께 읽는 작은 수필론문장이론/문장수련(문장이론) 2023. 7. 14. 08:58
수필작품과 함께 읽는 작은 수필론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칼럼니스트)
* 아래 글은 2017.8.에 적었습니다. 어렵게 어느 분의 카페에서 다시 퍼왔습니다.
님들께서는 제 조언을(?) 참고하시어, 다시 찬찬히 읽어보아주세요. 특히, 작가이시거나 작가지망생이신 분들은 뼈아프게 생각하시길.
1. 산문은 ‘단락의 문학’이다.
‘윌리엄 와트’가 제시한 단락의 원리는 완결성·일관성·통일성· 강조성 네 가지다. 대한민국 산문 작가들 십중팔구가 이 단락의 원리를 모른다. 단락간, 문장간 결합력을 보여야 한다. 달리 말해, 단락간 문장간 긴장을 주어야 한다.
단락의 원리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글을 적으면, 자칫 글이 누더기 옷처럼 될 수가 있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이 있다. ‘천사가 입는 옷은 솔기(재봉선)가 없다’는 뜻이다. 자동차 정비공장 판금부 기사는 용접을 하되, 사포 등으로 땜질 부위를 닦고 깎아서, 감쪽같이 매끈하게 한 몸체로 만들고 만다. 이질적(異質的) 요소 혹은 삽화(揷話)를 전체 한 덩어리로, 일체로서 질서로운 우주로 만드는 문장기술(文章技術). 위에서 소개한 ‘단락의 원리’ 네 가지를 완전히 익힌 다음에 가능해진다.
2. 서정적인 수필작품도 좋으나, ‘지적(知的) 수필’은 독자들로 하여금 토막지식을 전해준다.
수필작가는 하나의 제재를 낚아채면, 그 깊이 가늠할 길 없이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말 집요해야 한다. ‘진땡이’, 즉 앙금은 없고, 부유물 내지 웃물만 적어대서는 곤란하다. 대부분의 수필작가라고 하는 이들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을 빚어내지 않던가. ‘앎’이 바탕 된 글을 빚는 자세. 글을 적기에 앞서, 방대한 자료를 챙겨야 한다.
3. 현학적인 글이라고 외면당하지 않으려면
자료를 챙기되,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이를 두고, 오창익 박사(수필학 박사)는 ‘체화(體化)’라는 말을 썼다.
4. 기타사항
글의 알참과 웅숭깊음은 위 ‘1’ 사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요컨대, 오랜 기간 단락의 개념을 익혀야 한다. 이는 산문작가들 공히 고뇌해야 할 점이다.
약속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칼럼니스트)
내 농막에도 한여름 밤이 찾아들었다. 선풍기를 틀고 책상맡에 앉아 인터넷을 즐기는 한편, 농주(農酒)를 연거푸 대폿잔으로 따라 마신다. 오늘의 안주는 내 밭에서 딴 작디작은 수박이다. 볼품없는 겉모습과는 달리, 씨가 까맣게 박혀 있으리만치 잘 익었고, 달착지근하기만 하다. 얼마 전 같았으면, 수박의 그 까만 씨조차 어금니로 꼭꼭 씹어 먹을 텐데, 지금은 왼쪽 아래 어금니 하나, 오른쪽 위 어금니 둘이 세월에 겨워 빠져 달아났기에, 용을 써서 씹어도 그 까만 씨들 가운데 더러는 목구멍으로 그대로 넘어간다. 얼마 아니 지나, 또 내 눈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지려니.
어느새 술기운이 온몸에, 마취제 주사를 맞은 듯 쫘악 퍼지는데... .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혼잣말을 하게 될 줄이야!
‘그래, 그건 분명 약속이었어! 약속이되, 이 세상이 열리던 첫날부터 맺은 약속이었어!’
도대체 이 무슨 말이냐고? 내가 안주로 먹고 있는 이 수박에 모든 비밀이 숨겨 있다. 크게는 식물체인 수박과 동물체인 나와 약속. 작게는 수박의 까만 씨와 내 위장과 약속. 늦봄에 나는 어디에서, 누구한테서 얻어먹었는지조차 기억 못하나, 수박을 먹은 다음 내 고추밭 고랑에다 용변을 보았던 모양이다. 물론, 호미로 작은 구덩이를 파고 그리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어느 날 그 자리에서 수박 싹이 돋아났던 게다. 참으로 기특한 수박씨. 나는 그 수박 싹을 보다 너른 공간에다 옮겨 심어주었다. 그랬던 수박 덩굴에서 딴 수박이 바로 오늘 내 술안주다. 내 술안주인 수박에 촘촘 박힌 까만 수박씨는, 내 성긴 어금니 덕분에, 이번에는 더 많이 또다시 고추밭고랑에서 싹을 틔울 게 아닌가.
자, 이제 내 이야기의 기본틀은 거의 다 갖춰진 셈이다. 우리는 ‘문강목과속종(門綱目科屬種)’ 생물체 분류를 하게 된다. 가장 크게는‘동물문’과 ‘식물문’으로 가른다.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는 동물이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이 심어[植]주어야하거나 옮겨 심어[移植]주어야 하는 생명체는 식물이다. 이들 두 그룹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 두 그룹은 태초(太初)에 서로 약속을 맺었다. 그 약속은 자신들의 생명유지와 종족보존에 관한 사항이었다. 이 약속에 관한 실증(實證)을 위해, 굳이 멀리에서 예를 가져올 일도 없다. 오늘 내가 먹는 수박과 나와 관계 설명만으로도 족한 듯하다. 동물인 나는 위장을 비롯한 각종 소화기관을 가졌다. 약산성을 띤 소화액을 지닌 나는, 게며 갈치며 고등어며 눈을 지그시 감고 껍질째, 가시째 ‘와작와작’ 씹어 잘도 먹어댄다. 그런데도 대변에는 그 형체가 없다. 그런데 정작 그 여리디 여린 수박의 씨앗들 가운데 더러는 대변에 그대로 섞여 나오지 않던가. 단순히 그 생명력만 찬탄할 게 못 된다. 내 위장을 비롯한 여러 소화기관은, 그 수박씨를 차마 녹일 수 없어 거의 원형에 가깝도록 돌려주고 있으니 갸륵하지 아니한가. 신비스럽지 아니한가. 거슬러, 태곳적부터 양측 선조들끼리 약속이 없었다면, 그런 일이 감히 어찌? 내가 믿는 주님의 섭리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사실 여러 종류의 식물 씨앗은, 동물의 체내를 통과해야 비로소 발아되는 예가 많다. 여러 종류의 식물은, 후손들만은 보다 비옥한 토양에 터전을 잡도록 하기 위해, 혹은 산지사방 흩이기 위해, 비교적 멀리 이동하는 동물을 이용코자 했을 터. 먹이가 되어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게 될 걸 미리 설계해서 씨앗을 여물게 한다. 씨앗이 파라핀 즉, 밀랍(蜜蠟)으로 코팅된 예다. 약산성이든 약알카리성이든 동물의 소화액에 의해 그 파라핀 성분이 녹아야 비로소 발아하는 씨앗들이 퍽이나 많다. 잘은 모르겠으나, 수박과 참외도 종족보존의 전략을 짜되, 그러한 메커니즘을 따르는 것 같다. 흔히 ‘똥수박’‘똥참외’라고 하는 것들이 의외로 발아율이 높다는 거. 이는‘종자학(種子學)’에서 이르는 ‘휴면타파’와 맞물린 사항이기도 하다. 바로 인위적인 ‘황산 침지(浸漬;담금)’인데, 식물들은 인간이 그 방법을 알아내기 이전에 이미 그 메커니즘을 몸소 실천해왔던 게다. 내가 경험해본바, 여름날 뽕오디를 잿가루에 하루쯤 묻어두었다가 파종해보니, 발아율이 꽤나 높았다. 그래서인지, 큰 나무 아래에 뽕나무 유목(幼木)이 의외로 많이 자라곤 했다. 산새들이 뽕오디를 냠냠 따먹고 가지에 앉아 배설한 데서 싹이 돋았으리라는 걸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새들의 모래주머니는, 자신들이 섭취한 음식물을 잘게잘게 부수는 역할도 하지만, 일부 씨앗들의 발아저해물질을 벗기는 효과를 거둔다. 이를 응용한 게 ‘종피파상법(種皮破傷法)’일 따름이다.
하여간, 나의 위장을 비롯한 여러 소화기관이 갸륵하기만 하다. 음식물로 먹은 온갖 뼈는 그렇게 잘도 녹이면서, 작고 까만 수박씨만은 은근슬쩍 눈감아주어 온전히 돌려주고, 그것으로 하여금 싹을 돋게 하지 않느냐고? 내 소화기관들이야말로 누가 일부러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그처럼 생명을 중시하는 듯싶다. 내 소화기관들은 서로 협력하여, 심지어 자기네 주인인 나한테까지 알리지 않고 그런 기특한 짓을 한다. 내 소화기관은, 이 성하(盛夏)의 계절에, 작열하는 태양의 기운을 받아 빨갛게 덴 수박의 속살과 물기만 흡수해도 족한데, 더 이상 욕심내어 그 작디작은 씨앗까지 녹일 수는 없다는 듯. 반대로, 수박은 자신의 정열적인 속살과 흥건하고 달착지근한 샘물까지 다 짜내어주었으니, 후사(後嗣)를 보려는데 씨앗만은 그처럼 되돌려 줄 거라고 굳게 믿었을 터.
참말로, 아름다운 약속이다. 신의 섭리다. 카오스(chaos) 즉 ‘혼돈’이 아니라 ‘코스모스(cosmos)’다. 곧‘질서롭고 조화로운 일체로서의 우주’다.
나는 오늘밤 다소 말하기조차 민망한 신분의(?) 수박을 술안주로 먹으며, 동물문에 속한 생명체들과 식물문에 속한 생명체들과 약속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그 약속은 상호간 영원히 저버리지 않을 약속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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