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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눈물’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작가인 나는, 30년~40년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나는, 사물을 ‘뒤틀어보기’도 잘하는 편이다.사회통념상 어떤 눈물을, ‘거짓눈물’로 깎아내리는(?) 일이 있는데, 이는 정말 경산도말로, 모리는(모르는)소리다. 바로 ‘악어의 눈물’을 두고 하는 말. 진즉에, 나도 악어가 동물을 사냥하여 와작와작 씹어 삼킬 적에 눈물을 흘린다는 점을 알고 지내왔다. 그것이 자기의 그 억세고 수많게 가지런한 이빨에 씹혀 죽어가는 동물의 눈을 쳐다보기에 애처로워 흘리는 ‘연민의 눈물’인 듯 연출하기에 하는 말이기는 하다. 실은, 악어가 음식을 섭취할 적에 눈물샘을 자극하여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는 게 정설(正說)이다. 마치, 우리네가 하품을 할 적에 눈물이 절로 흐르듯. 다시 말하거니와, 이는 생리적 현상일 따름. 그러니 악어가 거짓눈물을 흘린다고 몰아붙여서는 결코 아니 된다. 악어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야말로 ‘진실의 순간’,즉 ‘MOT(Moments of Truth)’이다. 스페인 투우사가 투우의 덜미에다 창을 꽂는 순간을 이르는 말에서 비롯된 ‘마케팅학’의 용어 MOT. 그러나 누군들 그 순간의 악어 심정을 깊이 헤아려본 적 있냐고? 그 순간의 악어가 되어본 적 있냐고?
일찍이, 나는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을 통해, ‘탄자니아 세링게티국립공원’편을 두어 차례 연거푸 본 적 있다. 내레이터(narrator)가 설명을 보태고 있었다.
“악어는 건기(乾期)에 굶으며 1년을 지내고, 우기(雨期)가 되어 호수에 물이 고이기만을 기다립니다.”
내가 이 글의 완성도를 더하고자, 며칠 동안 인터넷을 통해, 악어를 공부해본즉,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악어는 변온동물이고, 신진대사가 매우 낮아 분당 40회 정도 심장박동을 지닌 동물이이라고 한다. 때로는 분당 4회의 심장박동만 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일단 한 번 먹이를 먹으면, 아주 오랫동안 사냥 않고도 견딜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니 그때 그 내레이터는 진실을 나한테 거의 다 알려준 셈이다. 그랬던 악어는 자기 동료들과 함께 세링게티국립공원 호소(湖沼)의 그 흙탕물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매복해 있었다. 때마침 초식동물인 누떼들은 황량한 들판에, 그 먼 길을, 풀이 자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그닥다그닥’ 달려오고... 꼭히, 그 위험한 곳을 지나야만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갈 수 있고... 노회한 누들은 물에 먼저 발을 절대 담그지 않고... 대신, 그 숙맥들은(?) 협력하여 악어떼를 발길질해서라도 물리칠 수 있건만, 어린 누 몇을 희생양으로, 제물로 악어떼한테 바쳤다. 악어는 어린 누를 기습하여 목을 문 다음, 온 몸으로 뒹굴고, 그 길고 힘찬 꼬리로 누를 후려쳐서 익사시킨 후 와작와작 씹어 삼켰다. 악어한테는 희열의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1년을 굶고 지내왔으니. 동시에, 슬픔의 순간 아니었겠는가. 눈이 말똥말똥한 어린 누를 잡아먹을 수밖에... 삶이란, 생업이란 그러할지니. 이미 나는 위에서 악어의 눈물이, 그저 식사 때 생겨나는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그게 정말일까? 우리네 인간 그 누구도 악어의 그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 그 누구도 악어가 되어 본 적 없으니. 악어는 그 순간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을 거라고. 한 녘으로는 일 년 내내 굶주리다가 한껏 배불리 먹었음에 대한 ‘ 행복한 눈물’, 또 한 녘으로는 그 틈을 이용해서 배신때리고(?), 철없는 어린 누를 제물로 내어주고, 저만치 달아나가거나 흙탕물을 헤치며 헤엄쳐서 자기네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가는 머저리 같은 누떼들이 참으로 한심해서 흘린‘슬픈 눈물’. 사실 악어는 흙탕물 속에서 그렇게 잠복하여 지내다보니, 눈물로 눈알을 면경처럼 닦아야하기도 했으리라. 그래서 제대로 사물을 보고자, 눈물로 자기 눈알을 수시로 닦았을 수도. 자신의 의식(意識)을 ... 사물을 정확히 꿰뚫어보고자.
자, 이제 명색이 수필작가인 내가, 30년 ~40년 수필작가로 지내오는 내가, 이 이야기를 여기서 감히 끝낼 성싶은가. 얼마나 속상하면 이런 이야기를... .이제 대한민국 유권자들한테 고언(苦言)을 할 차례. 유권자 절반 이상은 다시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왜? 조작설도 있긴 하지만, 거의 매일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게 사실 아닌가. 그리고 유권자 절반 이상은 초등학교에 재입학하여 차근차근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 ‘<바른생활(윤리)>’ 과목도 다시 공부하여야 한다. 특히, <바른생활>을 다시 공부하여야 한다. 우리 동양권에서 주요 덕목으로 삼는 삼강오륜(三綱五倫).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부강(夫爲婦綱))·군신유의(君臣有義))·부자유친(父子有親)·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등. 거의 다 무너져버렸다. 특히, 나는 이들 덕목들 가운데에서 ‘君爲臣綱’과 ‘君臣有義’로 말미암아 늘 가슴 아파한다. 이성계가, 박정희가... 전두환이가... ?가 과연 삼강오륜의 위 두 덕목을 제대로 알아 실천했더냐고? 단, 고려를 세운 왕건(王建)만은 그 과정이 달랐다. 그는 모시던 궁예한테 할 도리 다하면서 나라를 새로 세웠으니까. 이는 얕은 나의 역사인식. 꼭히, 내가 ‘참여문학인’은 아닐지라도, 아닌 것은 결코 아닌 것. 그 어떤, 화려한 말보다는 내가 중시하는 덕목은 삼강오륜. 적어도 등 뒤에서, 믿었던 이를, ‘비수’를 꽂아서는 아니 된다고 믿고 지낸다.
시이저가 죽어가면서 한 말.
“브루투스, 너마저도... .”
바보들은, 우민(愚民)은 앞으로 수 년 앞을 내다볼 줄 모른다. 자신들의 흐린 판단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줄을 모른다. 또 하나의 바보가 있다. 내 고등학교 선배이자 지난 직장의 선배. 그는 맹추다.
그러니 부디, 다들 앞으로 더 이상은‘악어의 눈물’을, ‘거짓눈물’이라고 폄훼하지 마시길. 내 신실한 애독자님만이라도. 나한테 그런 일로 시비 걸어온다면, 당신은 의리도 없는, 한낱 노회한 야생 소 ‘누우’일 따름. 아주 기막힌 사실은, 내가 최근에 새삼 깨달은 사실은, 악어야말로 진실된 눈물을, 단 한 치 거짓도 없이 흘리고 있다는 것을.
요컨대, 거짓 아닌, 진실된 악어의 눈물을, ‘MOT’를, 더 이상 헐뜯지 마시길. 비유적으로도 더 이상 쓰지 마시길.
나는 탄식한다.
‘오, 식자우환(識字憂患)이여! 내가 차라리 일찍이 삼강오륜의 덕목도 익히지 못한, ‘무지렁이’였더라면...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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