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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에 관해수필/신작 2014. 6. 17. 06:06
‘비(非)-‘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나는 어떠한 유행어나 어떠한 어휘나 어떠한 신조어(新造語) 등을 들을 적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예가 많다. ‘어린이대공원’, ’ 보여지다’,’저희 나라에서는’,’사랑愛 아파트’ , ‘시원海소주’, ‘비싸다’, ‘비장애인(非障碍人)’ 등속이 그러한 어휘들이다. 각각에 대한 나름의 알레르기 반응 이유는 이렇다. ‘어린이대공원’은, 말 그대로 어린이들한테 격에 맞지 않는 말이다. 아이들한테 꿈과 희망을 주자면, 아주 큰 것 즉, ‘大-’를 붙여서는 결코 아니 된다. ‘보여지다’는, 그 원형이 ‘보다’이고 피동형이되, 이중피동형이다. 그냥 ‘보이다’로 쓰면 될 텐데, 굳이 이중피동형으로 쓴 예다. 작고한 아동문학가이며 나와 동향(同鄕)인 경북 청송 출신의 이오덕 선생이 크게 지적한 사실이다. ‘저희 나라에서는’ 식의 표현은, 듣는 이가 외국인이 아닌 자국민인 경우에 결코 써서는 아니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이라고 하여야 한다. ’사랑愛 아파트’ 와 ‘시원海소주’ 류의 표현은, 요즘 부쩍 늘어난 언어습관인데, 글쎄다! 너무 흔해빠지면 헐값이 되지 않겠냐고? ‘비싸다’는, ‘싸다’ 앞에다 ‘비(非)-‘를 붙인 말인 듯하다. 즉 ‘아니 싸다’에서 비롯된 말인 듯하다. 무엇을 사는 이의 기준에서야 값이 지나치게 높으면 안 좋지만, 무엇을 파는 이의 기준에서는 이문(利文)이 적게 나는 것이니 분명 부정적 어휘인 셈이다. 사실 우리네가 자주 쓰는 ‘매매(賣買)’라는 말도 상업(商業) 개념의 언어라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선택 과목이었던 ‘상업’을 강의하던 선생님이 그 점을 일러주었다. 선생님은 ‘賣買’라는 어휘를 자세히 살펴보라고 하였다. ‘사고 팔고’가 아니라 ‘팔고 사고’ 내지는 ‘팔기 위해 산다’란 의미가 녹아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문인 듯 ‘士’가 얹혀진 ‘팔 매(賣)’가 ‘살 매(買)’ 앞에 놓여 있다. 그러니 ‘非싸다’는 상업 개념에서는 부정적 의미가 된다. 끝으로, ‘비장애인’에 관해서는 할 말이 참으로 많다. 사실 이 어휘에 관해 시비를 걸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하여, 단락을 바꾸어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려 한다.
비장애인, ‘장애인’의 반대말인양 덜렁덜렁 함부로 써댄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장애인들을 헐뜯고자 함이 아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로 정해 두었고, 그분들을 위한 각종 행사도 성대히 열어 주는 날이다. 장애인의 반대말이 비장애인이라고? 과연 온당한 말인가? 물론 그분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위로해주어야겠지만, 정말 그러한 어휘는 영 아니다. 우선, 장애인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 유의어(類義語)는 장애자, 불구자다. 온몸과 정신이 장애가 없거나 결함이 없는 이는 분명코 정상인이다. 그 정상인의 반대말이 장애인인 셈이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분명코 ‘비(非)-‘는 부정적 의미이다. 그 ‘비(非)-‘가 들어간 어휘가 기준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는 말이다. ‘비장애인’이라고 쓰면, 마땅히 장애인이어야 할 이가 장애인이 아닌 채로 지내는 이로 말하는 것이 된다. 어찌 세상에… .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내가 진정으로 무얼 말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어 써야겠냐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일찍이 ’어린이’란 어휘를 창출하였다. 그 이전에는 ‘소년’, ‘소녀’로 일컬어졌던 어휘다. 나는 모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크나큰 사랑도 없는 세태를 개탄한다. ‘장애인’이란 어휘 대신에 ‘편찮은 이’란 말을 쓰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 ‘편찮은 이’의 반대말로는 ‘편한 이’라고 하면 된다. 좀 더 격을 높이자면, ‘편찮은 분’,’편한 분’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부르면 화낼 이 아무도 없을 터. 사실 내 고향 청송과 안동을 포함한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는 ‘편찮다’는 말을 곧잘 쓴다. 특히, 어르신들이 병을 앓을 적엔, ‘편찮으시다’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서는 위 아래 없이 ‘아프다’, ‘아프시다’라고 한다. 그 말이 그렇게 천박하게 들릴 수가 없다. 심지어, 경상북도 북부권에 사시는 어르신들 가운데는 ‘ㅅ’과 ‘ㅆ’이 든 어휘조차도 쌍스럽다고 바꾸어 쓰는 예도 있다. ‘오셨습니까?’를 ‘오겼어요?’로 하는 등.
두서 없는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우리는 모국어에 관해 깊은 애정을 가져야 한다. 어휘 하나를 쓸 때도 이런 거 저런 거 충분히 생각해서,함부로 덜렁덜렁 써서는 아니 된다. 나아가서,부정적 이미지의 어휘가 주인공이 되는 말을 결코 써서는 곤란하다. 요컨대, ‘非-‘ 를 함부로 써서는 아니 된다. 어차피 공존동생(共存同生)하여야 하는 세상. 가급적이면, 서로 극단적이고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하여서도 아니 된다. ‘歪’와 ‘尖’처럼 서로 대립되는 어휘가 한 데 모여 전혀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는 낱말도 없지는 않지만… .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나의 이 글이 계기가 되어, 멀쩡한 이를 ‘비장애인’이라고 부정적으로 일컫는 불상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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