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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관한 기억 세 조각수필/신작 2014. 6. 15. 03:29
비에 관한 기억 두 조각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1. 빗속의 연인
역산(逆算)해보니 그게 벌써 40여 년 전의 일. 다시 살펴본 바, 1970년대 가수 정훈희가 ‘빗속의 연인’을 발표하였고, 히트를 하여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다. 내 나이 기껏 15~16세가 되던 무렵이다. 내가 살던 고향마을 어른들 가운데 그 노래를 무척이나 자주 부르던 두 어른이 있었다. 나의 또래 태운이 아버지 청호어른(그분 택호임.)과 내 진외가(陳外家) 증손자뻘인 원규의 아버지 박 이장(朴 里長; 평판이 좋아 이장을 오래도록 맡았음.)이었다. 당시 그 두 분을 두고 ‘어른’이라고 하였지만, 요즘 나이로 따져 보니, 40대 중반쯤 되어 젊은이 축에 든다. 하지만, 중늙이로 여기던 시절이다. 그러한 이들이 ‘빗속의 연인’을 함께 불러댔으니, 내 기억에 여태 남을밖에.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신세대 감각을 지닌 이들’이었다.
일단, 정훈희가 부른 그 노래를 소개해보도록 하자.
‘바람 부는데 (헤) 바람 부는데/비가 오는데 (헤) 비가 오는데/우산도 없이 거니는 연인들/사연이 무엇이길래 저토록 비를 맞으며/헤어질 줄 모르고 걸어가고 있을까/바람 부는데 (헤) 바람 부는데/비가 오는데 (헤) 비가 오는데/우산도 없이 거니는 연인들//’
노랫말이 간단한데다가 흥을 돋울 수 있는 후렴구(?) ‘헤’가 들어 있어서 위에서 소개한 두 중늙이가 부르기에도 적합했는지 모르겠다. 그분들 둘은 단짝이었으며, 마을에서 점잖고 예의 바른 분들로 호평(好評)을 받던 분들이다. 둘은 장에 가서 술볼일을 끝낸 후 어깨동무를 하고 신작로를 걸어오는 내내 그 노래를 불러댔다. 마을에 들어서서도 내내 그 노래를 불러댔다. 동민 가운데 그 누구도 그분들을 탓할 이가 없었다. 후줄근 비를 맞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대며 걸어오던 모습. 야속한 세월은 속절없이 우리들 곁으로 지나갔다. 그분들 양인(兩人)도 이젠 고향 마을엔 아니 계신다. 각각 자신의 유택(幽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둘은 저승에서 다시 만나 어깨동무를 하고 그 노래를 부르고 있으려나.
나는 장마철이면, 그분들의 어깨동무를 떠올리곤 한다.
2. 쉘부르의 우산
오줄없고,줏대없는,딸랑이들(?)이 한창 판을 치던 시절의 이야기다. 수필가 피천득의 수필로 모든 국어교과서에, 그것도 국정교과서인 국어교과서에 온통 도배를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무슨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듯 수필 하면 피천득을 금세 떠올리는, ‘피천득 세대(?)’가 이어져 왔다. 이미 아내와 자녀가 딸려 있던 피천득. 그는 일본 유학시절 알게 된 ‘아사코’아라는 일본 아가씨에 대한 추억을 ‘인연’이란 글로 적게 되었고, 학자 등 관계자들은 그걸 명작이라고 추켜 세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은 바 있다. 다행스레, 요즘은 어느 교과서에서도 그 글을 만날 수 없다. 청소년들한테 해로운 글인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듯하다. 그 글 가운데 ‘쉘부르의 우산’이란 영화를 그녀와 함께 본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하였던 나. ‘쉘부르의 우산’이 어떠한 영화인지도 모르면서도 이국정취에 마냥 젖어 들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된 이후, 그 영화를 두어 차례 보게 되었다. 피천득의 ‘인연’이 ‘인연’이 된 덕분이기는 하다. 그 점만은 고맙게 생각한다. 본디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뮤지컬 영화다. 그 영화의 O.S.T. ‘I will wait for you’는 아주 유명해서 요즘도 자주 라디오 등에서 여러 버전(version)으로 나온다. 우선, 그 노랫말부터 소개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하자.
‘영원토록 기다려야 한다 해도 /난 당신을 기다릴 거에요./수천 번의 여름을 지내도록/난 당신을 기다릴 거에요. /당신이 내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당신을 꼭 안을 때까지/여기 내 두 팔 안에서/당신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당신이 어디서 방황하든/어디를 가든지 매일 얼마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만 기억하세요.//내 가슴 속에 내가 알고 있듯/당신도 마음 속 깊이 믿으세요./영원토록 내가 당신을 기다릴 거란 걸.//시간마다 시계가 /똑딱 소리를 내며 흘러가겠죠./그러면 모든 기다림이 끝나는 날이 올 거에요.//당신이 돌아와서 여기 있는 날 찾으면/기다리던 내 두 팔 안으로/곧바로 달려올 순간이 올 거에요./영원토록 기다려야 한다 해도/난 당신을 기다릴 거에요./수천 번의 여름을 지내도록 /난 당신을 기다릴 거에요./당신이 내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내가 당신을 어루만질 수 있을 때까지 영원토록./언제나 영원히 난 당신을 기다릴 거에요//’
영화의 줄거리다. 가급적이면 아주 건조하게 요약하기로 한다. ‘쉘부르’라는 곳의 우산가게 ‘쉘부르의 우산’에 어머니와 그의 딸이 산다. 딸은 10대 소녀다. 이웃의 공장에 다니는 총각은 그녀와 서로 장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징집영장을 받고 전장에 가야 할 처지. 그가 떠나기 전날 밤 서로 모든 걸 허락한다. 아가씨의 뱃속에는 사랑의 징표인 아이가 자란다. 전장에 나선 남자와 편지 왕래는 한 차례로 끊기고 만다. 한편, 우산 가게 경영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세금 등도 제대로 낼 수가 없게 되자, 주인인 아주머니는 애지중지하던 패물을 팔러 보석상에 가게 되는데, 보석상 아들은 쉘부르 우산가게 아가씨한테 첫눈에 반해… . 아가씨는 사랑하는 이가 따로 있으며, 그의 아이도 몸 속에 자라고 있다고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나, 어찌어찌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상대는 남의 아이도 자기 아이처럼 받아주겠으며 잘 길러주겠다고 하며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전장에서 부상을 당해 ‘의병제대(依病除隊)’를 하게 된 남자. 그는 귀향하여 옛 애인네 우산가게에 가보게 되나, 폐업하여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애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는 주유원으로 일하게 된다. 주유소 상속녀와 결혼하게 된다. 밖에 눈이 하얗게 내리는 이브. 그는 주유소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자, 주유를 해주기 위해 밖에 나온다. 그는 그 승용차에 탄 이가 옛 애인과 그녀의 남편임을 알아차린다. 마침 그의 부인은 아들과 함께 외출한 상태. 그녀는 뒷좌석에 앉은 꼬맹이 딸이 둘의 사랑의 산물임을 말한다. “당신의 딸인데, 한번 보지 않겠어요?”라고.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둘은 쓸쓸한 눈빛을 서로 건네며 그렇게 헤어진다. 눈은 마구 내리는데,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주유소를 빠져 나가는데… .
강렬하지는 않지만, 왠지 눈물이 나는 뮤지컬 영화였다. 참말로, 잔잔한 슬픔이 배어 나오는 영화였다. 대개, 전쟁을 그 배경으로 삼은 영화들이 그러했다. 청춘 남녀를 생짜로 갈라놓아, 그들을 슬픔으로 몰아넣은 예가 많았다. 비와 우산, 첫눈[-雪] 등은 그러한 슬픔을 암시하는 사물들이었다. 내가 즐겨 수 차례 보았던 ‘워털루 브리지(‘哀愁’라고 번역하여 국내에 상영되었다.)’도 ‘워털루 다리’ 위에 홱 뒤집어진 우산으로 마감되었지 않던가. 나한텐들, 군인 시절 그러한 추억이 왜 없었겠는가. 첫 애인과 수원의 원천유원지에서… 오동나무 잎사귀를 우산 삼아 함께 썼던 기억. 아무튼, 비는 촉촉히 옛 추억을 더듬게 한다. 설사, 그 추억이 간접체험일지라도 그것마저도 자신의 것임이 분명하다.
사족을 붙인다. 1989년, 내가 30대 초반일 적에 적은 ‘우산’마저도 나의 수필문단 데뷔작이었다는 사실. 이래저래 나는 비와 우산과 인연이 깊은 이임에 틀림없다. 비가 내렸으면 참 좋겠다.
창자후기) 번호 1,2를통해 겉으로 나타난 이야기는 두 조각에 지나지 않음에도 굳이 제목에서는 '세 조각'이라고 하였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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