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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에 관해
    수필/신작 2014. 6. 5. 05:58

      

                       에움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곳 연수원은 경내(境內)가 너르고 조경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내가 몸담은 회사는 시설관리를 맡은 하청인지라, 이 여름날엔 몇 아니 되는 온 식구가 매달려 조경작업과 제초작업도 해야 한다. 오늘은 생울타리로 심긴 회양목과 광나무 등을 손보는 날이었다. 울타리이되, 이처럼 수목으로 에워싼 울타리를 생울타리 또는 산울타리라 한다. 호랑가시·차나무·탱자나무·꽝꽝나무·쥐똥나무·구골나무·화살나무·탱자나무· 조팝나무 등을 심는 예가 많다. 유행에 따라, 그 쓰임에 따라 생울타리로 심는 나무도 각각 다르다. 생울타리의 용도는 다양하다. 경계를 표시하고, 침입을 방지하고, 통풍과 일조량을 조절하고, 미관을 살리고 . 문득, 생울타리는 철책(鐵柵), 펜스(fence),헤지(hedge),철조망,담장 등과 더불어 안팎을 확연히 구분 짓는, 경계 표시의 몫이 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둘러치는 걸 일러, 에우다 또는 에워싸다고들 한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모양은 입口꼴이다. 높은 담장은 외계(外界)와 거의 완벽한 차단을 의미하지만, 생울타리는  이웃과 숨통을 그나마도 틔워 놓은 게 특징이다. 토끼장 안에다는 토끼를 가두고, 닭장 안에다는 닭을 가두고, 소 우리에다는 소를 가두고 울타리 안에다는 사람을 가둔다. 그런데 모기장 안에는 모기가 아닌 사람을 가둔다, 재미나게시리. 한 녘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울타리를 둘러치면, 외침(外侵)으로부터 보호받게 된다. 그러나 또 한 녘으로 생각하면, 달아나지 못하게 가두어 놓게 된다. , 스스로 갇히게 한다. 국경(國境)과 성채(城砦)도 이와 같은 양면성을 지닌다. 내가 사는 경산의 인근도시인 대구직할시 여러 관공서에서부터 시작된 담장 허물기. 관공서의 문턱을 낮추거나 허묾으로써 주민들과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듯 보인다. 그 담장 허물기는 관공서뿐만 아니라 방송국,아파트,가정집 등 여러 건물에서도 유행인양 이루어지고 있어, 친근감을 더해 준다. 참으로 의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가 울타리나 담장이나 짓게 된 데는, 내 것네 것을 확연히 가르기 위해서인 듯하다. 인류가 수렵시대를 지나 경작시대에 이르게 되고,어느 한 곳에 머물러 살게 되면서 토지의 사유(私有) 개념도 자연 생겨났으리라. 맨 처음에는 울타리나 담장으로 꽉꽉 틀어막지 않았을 것이다. 대충 눈 대중으로,작대기 등으로  네 모서리에 표시만 했을 법하다. 그러다가 세상인심이 각박하게 돌아가게 되었고, 감히 남들이 기웃거릴 수 없으리만치 높이 장벽을 쌓게 되었을 터. 이미 위에서도 밝힌 바 있으나, 에움보호라는 측면도 있지만, 곧잘 말 그대로 이웃과 담 쌓기도 되었다는 거. 그러다 보니 너무 숨막혀 더 이상은 아니 되겠다고 여겨 담장 허물기로 이어졌으니 . 사실 내 농장만 하더라도 그렇다. 본디는 오래도록 묵혀둔 토지였던 관계로, 온갖 산짐승들이 천방지축 자유롭게 뛰어 놀던 곳이다. 산새들의 놀이터이기도 하였다. 그랬던 곳을, 내가 어느 노인으로부터 비교적 싸게 사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그게 벌써 10여 전 일이다. 나는 산짐승들이 내 영토를 한 치도 범접(犯接)하지 못하도록 온갖 계략(?)을 다 꾸며 보았다. 산짐승들은 쇠 내음을 싫어한다기에 철조망도 둘러쳐 보았다. 녹슨 철근 등도 밭 둘레에다 던져 둔 적도 있었다. 헌 현수막을 얻어다가 둘러쳐 본 적도 있다. 그러다가 끝내는 그물망으로 마치 배구네트를 치듯 둘러치게 되었다. 심지어 전기울타리를 둘러쳐버릴까에 관해서도 생각해 본 적 없지 아니 하다. 내가 내 영토라고 우겨대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진정으로 나만의 것일까 싶다. 설혹 나의 주장이 맞다 손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내가 토지를 부치는 동안만 나의 것일 테지. 울타리든 담장이든 다 그런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여자는 나의 아내., 이 남자는 내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마저도 . 그런데 비해 우리네 옛 어른들은 꽤나 의미로운 호칭을 즐겨 썼던 거 같다. 바로 배우자를 임자!라고 부르던 말. 내 몸의 임자(주인)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내 성기(性器)의 임자는 당신 또는 내 성기는 당신의 전유물이란 의미를 지닌 성싶다. 어쨌든, 상대를 주체로 여겨 부른, 썩 좋은 호칭임에 틀림없다.

    사실 에우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지닌다. 사방을 둘러싸는 것도 일컫는다. 이 경우, 주로 에워싸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사방을 둘러침으로써 안온(安穩)함을 더해주는 점도 없지는 않다. 또 다른 길로 돌리는 것도 이른다. 주로 에움길로 표현한다. 둘레길의 유의어(類義語)이며 지름길의 반대말이 된다. 그리고 외상 장부 따위에서 더 이상 쓸데없는 부분을 지우는 것도 나타낸다. 위 어느 경우의 에움이든 견고하거나 숨통 막히는 뉘앙스를 풍기지는 않는다. 다소 여유로움을 나타내는 듯하다. 가장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에움 형태는 아마도 통나무 울타리가 아닐까 싶다. 얼기설기 통나무를 박고 걸쳐, 그 안에다 소 따위가 다소 자유롭게 노닐게 하는 통나무 울타리. 나는 그 숱한 울타리 가운데서도 그런 꼴의 울타리를 좋아한다. 이 연수원의 생울타리만 하더라도, 남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그걸 관리하는 우리한테는 성가시다. 나한테만은 통나무 울타리면 족할 성 싶다. 대나무 따위로만 둘러쳐도 된다는 거. 사실 식물의 잎 구조에서도 이른바 책상조직(柵狀組織)이라는 게 있다. 이를 울타리조직이라고도 한다. 입살[葉肉細胞]을 구성하며 표피조직과 해면조직 사이에 있는 조직을 일컫는데, 마치 울타리[]를 반듯반듯 세워둔 꼴이다. 의 형상이 여실히 보여주는 바, 통나무[]를 재료로 삼아 가로 세로 얽어맨[]  꼴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책상조직이 음지식물보다 양지식물한테 잘 발달되어 있다는 점.

    이제 어지러운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보아야겠다. 우리네는 울타리를,담장을 둘러치고 살아간다. 때로는 철옹성(鐵甕城)을 짓기도 한다. 그러면 안온해지는 점 없지 아니 하나, 그것이 장벽이 되어 이웃과 단절을 곧잘 초래하기도 한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불통(不通)에 이르기까지 한다. 나는 진실로 소통을 원한다. 그러자면 내 울타리를 낮추든지 아예 허물든지 할밖에. 수필작가인 나는 늘 내 것만, 내 작품만 중시하여 왔다. 사반 세기 내내 수필만을 고집하여 왔다. 과연 그게 옳은 처사였는지 이제야 고민하게 된다. 최근에 들어서야 미술이나 음악이나 여타 예술장르를 섭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였다. 장르의 벽마저 무너뜨려야겠다는 생각을 자주자주 하면서도 그 실천이 어렵다. 식물의 이파리마저도 담장이 아닌 울타리[책상조직]를 지녔으니, 특히 음지식물보다는 양지식물이 더 발달된 울타리를 지녔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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