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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둘기 수난 세태(1)
    수필/신작 2024. 8. 18. 13:22

     

     

           비둘기 수난 세태(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새벽 여섯 시 반. 본부석이나 진배없는 아파트 정문 경비실 앞에 다다랐다. 마침 그 부인이 와 있었고, 경비반장 ‘김 OO’ 성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가정과 교사님, 자매님(성당교우), 이 이른 새벽에 웬일이시죠?”

       그러자, 노회(老獪)한(?) 경비반장은 7,8개월 함께 근무하는 동안, 나의 근무태도를 알기에 내심 아주 잘 되었다 싶었던 모양이다.

       “성님,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1544에 바로 가’가 본디 제 대업자세(對業姿勢) 아니던가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철제집게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곧바로 그 부인의 뒤를 따랐다.

       105동 현관을 들어서면서, 부인은 약간의 불평을 하고 있었다. 어제 관리사무실에 가서 부탁을 해보았건만, ‘댁내 문제’는 본인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면서 핑퐁게임을 하더란다. 그러면서, 내일 새벽 경비실에 가서 부탁을 해보아라고 하더란다. 한마디로, 빌어먹을 ... . 사반세기 동안 통신사 서비스업에 종사해왔고, 그 이후로도 10여 년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내는 나. 정말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주둥이로만 말하면, 고객은 삐지기 마련이다. 일단, 되든 아니 되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1544에 바로 가’  실천이야말로 고객한테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 이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기본이다.

        그분은 지난 날 가정과 교사답게 살림살이를 요모조모 잘 가꾸고 있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문제의 창가에 침대도 바짝 붙여두고 있었다. 창밖의 그 문제를 해결하자면, 침대를 옮기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의해 왔으나, 나는 신문지나 보자기를 매트리스 위에 깔아주시는 게 낫겠다고 했다. 지난 날 내 동료 통신서비스 요원들이 특수 버선발로 남의 댁내에 방문하던 일을 상기하면서.

       창턱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며, 철제집게로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난간바닥을 긁어보려 하였으나, 난망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분은 슬리퍼며 쓰레받기며 빗자루며 온갖 걸 ‘앗아주었다’. 그것들 가운데에서 슬리퍼만은 사양했다. 자칫, 미끄러져 저 15층 아래 화단에 내가 떨어질 수도 있었기에.

       이제야 소상히 밝힐 차례. 비둘기가 그분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난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어린 비둘기를 키우는 등 똥을 누어 쌓인 게 10센티미터 두께. 그걸 어떻게라도 좀 치워주십사 이 부서, 저 부서, 이 사람, 저 사람  돌아다니며 부탁을 하다가 나 같은 은인을(?) 만나게 된 것. 명색이 수필작가인 내가, 수필작가라도 늘 체험을 중시하는 내가 그런 걸 놓칠 리 만무하다. 사실 비둘기 퇴치 전문업체도 생겨나 있다더라만... .

       사실 작업을 하는 동안 아래 내려다보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도 하였다. 아직 날아가지 못한 어린 비둘기 한 마리도 그곳에 있었다. 더 편한 곳으로 날아가라고 집게로, 빗자루로 밀쳐도 녀석은 요지부동이었다.

       작업은 그분 입주민이 원하는 수준으로 마감했다. 실외기 상판을 물걸레질하는 것까지. 굳이, 사양했음에도 그분은 나한테 남성용 새 양말을 내어주었다. 사례금이라면서 ‘신사임당’지폐를 건네려 애썼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자매님, 교적(敎籍)이 경산성당이라고요? 저는 경산 중방성당. 언제 손잡고 경산성당 미사참례나 합시더.”

        사실 우리네 크리스천들한테는 비둘기가 보통의 새가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낳은 성모 마리아님의 친척 엘리자벳의 아드님. 예수님은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았다. 그때 성령께서는 흰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한테 내려왔다. 그밖에도 성경 군데군데에서 성령께서 흰 비둘기 모양으로 오심을 적고 있다. 그러함에도, 그 누구도 아닌 주님의 자녀인 그분마저 자기네 에어컨 실외기 그 좁은 바닥에 세 들어 사는 비둘기 가족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작가의 말)

       ‘비둘기 수난 세태’ 연작 수필은 한 동안 이어질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 기대하시길.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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