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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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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 명을 숙청한 황제(2)
    수필/신작 2025. 3. 4. 16:00

     

                            10만 명을 숙청한 황제(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이 글은 중국 명 태조(明 太祖, 1328 ~ 1398년)에 관한 내용, ‘10만 명을 숙청한 황제(1)’의 후속작이다. 그는 묘호로 홍무제(洪武帝, 朱元璋)로도 잘 알려지는 인물이다. 재위기간은 30년(1368~1398)이고, 셈해본즉 나이 40에, 몽고족이 세웠던 원나라를 완전 쓰러뜨리고 한족의 후예인 명나라를 세웠다.

       이번에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인생 굽이굽이에서 만났던 그의 은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곁들여 꾸밀 텐데... .

      그는 어느 고을 빈농(貧農)의 8형제 가운데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양친은 가뜩이나 가난한 터에, 입 하나만 더 늘어났다고 하여 그의 출생을 마뜩찮게 생각하였다. 당시 원나라 지배하에 있던 그는, 제대로 된 이름도 갖지 못하였다. 해서, 그의 양친은 둘의 나이와 견주어 이리저리 셈하고, 여덟 번째 아들이라는 뜻까지 보태고, 성(姓)인 ‘주(朱)’를 더해‘주중팔(朱仲八)’로 부르게 된다.

       때마침 흑사병 등 전염병이 창궐하고, 메뚜기떼 등으로 인하여 기근이 들자, 그의 양친과 형들은 죄다 죽고 만다.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그. 그때 그의 나이는 17세 안팎. 썩어문드러져 가는 양친과 형제들의 시신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

     

       첫 번째 의인 유계조(劉繼祖)

     

       그런 딱한 사정을 안 이웃의 유계조라는 이. 유계조는 자신의 밭 언저리를 묘터로 내어준다. 이에 힘입어 중팔은 관(棺)도 없이, 수의(壽衣)도 없이 장례를 치르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후일 대성한 중달은 유계조 집안을 대대손손 은혜를‘기워갚았을’ 것은 뻔하다.

     

       두 번째 의인들 서달(徐達), 탕허[湯和], 주덕흥(?)

     

       중팔은 서달, 탕허, 주덕흥와 더불어 어느 댁 ‘소치기 목동’으로 지내게 된다. 서달은 중팔보다 네 살 위, 탕허는 중팔보다 두 살 아래, 주덕흥은 잘 모르겠다? 넷은 친형제 이상으로 우애가 두터웠다. 어느 날 배고파서 뒈질 지경에 이르자, 주인댁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넷이서 게걸스레 구워먹고 만다. 주인한테 들켜 혼쭐이 나게 된다. 그 어린것들이 간도 크지. 바위 틈 사이에 송아지 꼬리를 끼워 넣고 시치미를 뚝 뗀다.

       “주인님, 송아지가 저 바위틈에 끼여, 아무리 꼬리를 잡아당겨도... .”

       그길로 주인으로부터 넷은 ‘뒈지게’ 얻어맞게 될 판이었는데, 중팔은 선뜻 손들고 나서서 자기가 주동했다며, 그야말로 죽을 정도로 얻어맞고 다들 모가지가 잘리게 된다. 그 의협심이야말로 후일 한 마리 송아지가 아니라 한 나라를 다 잡아먹을 수 있는... .

     

       세 번째 의인 황각사(皇覺寺) 노승 고빈(高彬)

     

       그는 가까운 황각사를 찾아가면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황각사에 들아가 행자 시절을 시작했다. 황각사에는 십여 명의 승려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 주지는 덕축(德祝)이었고, 사찰의 큰 어른인 조실(祖室)은 고빈(高彬) 이라는 노승이었다. 고빈은 주중팔의 관상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놀랐다. 장차 크게 될 인물이었다. 중팔은 황각사에 가장 서열이 낮은 행자였기에, 낮에는 정신없이 사찰 일을 해야 했다. 고빈 노승은 남들이 다 잠든 야반삼경(夜半三更)에 코고는 중팔을 깨워 은밀히 글을 가르쳤다. 무지렁이였던 중팔이는 그길로 학문을 깨치게 되고, 후일 명나라 초대황제에 오르게 되고, ‘문신(文臣) 우대 정책’에 밑거름이 된다.

       어느 날 밤, 고빈 스님은 중팔이한테 하산을 명령하게 된다.

       “너는 황각사 주지로 인생의 목표를 두어서는 아니 된다. 하산하여 탁발승(托鉢僧)으로서 전국의 민심을 살피고, 너의 뜻을 세울 곳에 몸을 투신하라.” 그때가 중팔의 나이 18세, 법명이 법해(法海).

     

       네 번째 은인 관상가

     

       그길로 탁발승이 된 중팔. 말이 탁발승이지, 당시 원나라 지배하의 탁발승은 '거지'의 다른 호칭이었단다. 그처럼 전국을 쏘다니며 거지행세를 하였으니, ‘민초(民草)의 삶’  등에 얼마나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그 동안 탐관오리들의 횡포 따위를 얼마나 보았겠는가. 이는 후일 그가 명 황제 재위 30년 동안 ‘탐관오리 숙청’ 따위로, 무려 10만 백성 숙청 피비린내와 맞닿아 있는 듯.

       중팔은 그날도 평소처럼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을 하고 있었다.

       그이 앞에 어떤 이가 길을 막고서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네 관상을 보아하니, 황제가 되거나 거지가 되거나 둘 가운데 하나야.”

        그길로 중팔은 기왕지사 내친걸음이니, 거지가 아닌 황제가 되기로 마음을 굳혀 먹게 된다. 이 대목에서, 나, 윤근택 수필가의 ‘찬드라 굽타의 발’이란 수필 한 문장이 겹쳐질밖에.

        그 수필작품 한 단락은 이렇게 되어있다.

     

        <(상략)아주 먼 옛날, 기원전 320년경 이곳 인도에는 찬드라굽타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마가다 난다’ 왕조의 난다왕자와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도 알려져 있다. 왕궁에서 어떤 연유로 궁궐 밖으로 쫓겨난다. 그는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공작새를 조련하는 이한테서 길러진다. 그러다가 영리한 힌두 사제 ‘카우틸리아’를 만난다. 카우틸리아는 ‘왕놀이’를 하는그의 비범함을 보고, 진짜 왕이 되는 비결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는 보병 60만, 기병 3만, 코끼리 9천 마리로 변방부터 공격해 들어가 왕궁을 뺏는다. 그는 인도 역사상 첫 통일국가 마우리아(공작)제국을 세워 광대한 영토를 확보한다. 그는 전쟁터에서, 어릴 적 어머니의 충고를 떠올린 덕분이다.

       “얘야, 접시 중앙의 음식은 뜨거워 입을 델 수 있으니, 음식이 식어가는 가장자리부터 떠먹으렴.”(하략)>

     

       다섯 번째 은인 ‘탕허[湯和]’

     

       사실 ‘탕허’는 위 ‘두 번째 위인들’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글 전편(前篇)인 ‘10만 명을 숙청한 황제(1)’ 말미에도 이렇게 소개한 바 있다.

     

       <“존엄하신 폐하, 저는 그 동안 너무 행복하게 살아왔나이다. 폐하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 이제 너무 늙어서 군대를 지휘할 힘도 없사옵니다. 하오니, 낙향하여 제가 묻힐 묏자리를 찾아볼 수 있도록 윤허(允許)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여 그는 자신을 포함해서 개국공신들 ‘서달’, ‘덕흥’ 3인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자연사한 이다.>

     

       탕허, 다시 더듬노나니, 그는 이 글 주인공인 ‘중팔’과 더불어 어릴 적 ‘소치기 친구’였던 ‘서달’과 ‘주덕흥’4인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다.

       어느 날 탕허는 탁발승으로 지내는 중팔한테 한 통의 서찰을 보내게 된다. 중팔이 펼쳐본즉, 이러한 요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친구야, 이 나라 원나라는 아주 개판이야! 말세야! 야만 족속인 몽고 유목민이 세운 이 나라, 거렁뱅이가 길거리에 넘쳐나. 해서, 나는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두른,‘한민족 후예 농민 시위대(?)’ ‘홍건족’에 참전했다네. 자네도 나와 뜻을 같이 했으면 참 좋겠네.”

       해서, 중팔은 나이 24세에 홍건족 말단 군사로 참여하게 되었고... . 나중에 죽음을 무릅쓰고 최전방에서 백전백승 활약한 어릴 적 ‘소치기 친구’‘서달’의 도움으로, 나이 40에 명나라를 거뜬히 열게 되었다.

       하지만, 중팔이는... 중팔이는... 중팔이는 ... 중팔이는 ‘앞면 몰수하고’ 재위기간 30년 동안 옛 친구들이었으며 개국공신이었던 ‘소치기 친구’였던 이들마저 차례차례 숙청해나갔으니... .

       나이 70에 이른 나는 또다시 탄식한다.

       ‘인생무상이여! 권력의 무참함이여! 인간의 비열함이여!’

     

       작가의 말)

       사실 이 글을 연작으로 지으려면, 내가 공부한 자료만으로도 끝이 없겠으나, 내가 가야 할 ‘역사 기행 길’은 너무도 멀어서... . 더군다나, 취권(醉拳)인 나한테 농주(農酒)가 아닌 ‘창작주(創作酒)’가 동이 났으니, 가족이 사는 시내 아파트로, 시내버스를 타고 하산할밖에.

       하오니,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중팔’에 과 관해, 부족한 부분은 인터넷 검색 등으로 마저 채워 읽어주시옵소서.

      그리고 여태 예술가라고 나부대는 양반들, 다들 이 점만은 절대 잊지마시길. 바로  '구도미 (structure)!  따라서, 문학작품을 기준하면, 한 편의 글은 머리, 어깨, 배, 다리 등으로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구도미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러한 원리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작가 아닌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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